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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Sep 11. 2020

면접관님, 제 특기는 타로입니다

내 방구석 100일 표류기 4/100



방구석 표류기 4  아이템 - 타로카드


우리 집에서 볼 수 있는 물건 중에 늘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타로카드이다.
사진에 나온 건 그리스 로마 신화 타로 카드, 내가 제일 처음 구입했던 카드이다. 처음으로 타로 카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어릴 때 아주 좋아했던 만화 카드캡터 체리 때문이었다. 체리가 모으던 크로우 카드가 타로 카드를 모티브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체리의 크로우 카드를 굿즈로 사고 싶었지만, 1990년대 지방에 살던 중학생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그러다 진짜 타로 카드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타로카드도 오프라인으로 보기는 어려웠는데, 딱 하나 시내에 있는 서점에서 파는 그리스 로마 신화 타로카드만이 유일하게 내가 오프라인으로 살 수 있는 타로카드였다. 이 타로카드의 해설집이 진짜 한 권의 책으로 출판이 돼서 서점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그 뒤에도 몇 개의 타로카드를 더 구입했지만 오래 쓰고 또  가장 자주 쓰는 것은 결국 처음 샀던 이 그리스 로마 신화 카드이다.

타로는 미신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어떻게 미래를 맞출 수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줄 안다. 하지만 종종 내 타로점이 들어맞을 때면 신기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좋아하던 가수의 공연 연기나 친구의 이사, 친구의 이별 또 나의 이별 등을 몇 번인가 맞춘 적이 있다.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상대에게 타로의 결과를 알리지 않았고 혼자서만 알고 있던 것이 정말 그렇게 된 경우들이었어서 스스로도 참 신기했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내가 아닌 다른 이의 고민에 대해 타로를 봐주는 일은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좋은 일이야 얼마든지 이야기해줄 수 있겠지만 아끼는 사람들에게 슬픈 일이 일어날 것을 말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나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 뒤로 나는 다른 사람을 봐주기보다는 주로 내 고민에 대해서만 타로를 보았다. 그리고 타로를 공부할수록 타로를 대하는 마음도 바뀌었다. 타로는 단순히 미래를 보는 도구가 아니라는 게 그 결론이었다. 그 내용을 설명해줄 만한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난다.


취준생 시절 모 대기업의 면접에서 “특기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타로카드를 볼 줄 압니다.”라고 대답했다. 학교에서 모의면접할 때에도 이 얘기를 했다가 자칫 미신을 믿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으니 가능하면 그 대답을 하지 말라는 조언을 받았었는데, 결국은 실제 면접에서 이 말이 튀어나와 버리고 말았다. 준비했던 특기가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미 앞에서 공개를 해버렸고, 똑같은 걸 또 특기라고 말할 수 없어 번뜩 생각난 것이 타로카드였다. 면접관이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나왔어요? 이 면접 붙는다고 나왔어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훅 들어왔지만, 의외로 나는 담담하게 거짓말을 했다.
“네, 붙는다고 나왔습니다.” (지금에야 고백하지만 사실은 붙을지 떨어질지 아예 보지 않았었다.)

내 당돌한 대답에 면접관들은 허허허 웃었다.

면접 결과는 어떻게 되었냐고?
의외로(?) 당당하게 합격을 했다.
아마 타로카드에 대해 저기까지만 대답을 했다면 나는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뒤에 이런 설명을 덧붙였었다.



“저는 타로 카드를 미래를 점치는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정해진 답이라는 건 없죠. 그래서 늘 각 상황의 장단점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타로 카드는 그렇게 내 앞에 놓인 여러 가지 길에 대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입니다.”


지금도 나는 종종 혼자 고민해서는 해결이 나지 않는 일들이 생길 땐 타로를 본다. 이렇게 내 고민을 한 장의 그림이 그려진 카드 위로 옮겨놓으면 내 문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긴다. 이 고민이 단순히 두려움에 의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내가 정말 해결해야 할 상황이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짜 나를 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 단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타로는 나 자신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명상 중에는 내 안의 나와 대화를 하는 상상을 하는 명상 기법도 있는데, 타로카드로 시도해 보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다. 지금 내게 정말 힘든 게 무엇인지, 내 무의식 속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흘려보내야 하는 것인지, 다른 이에게 속시원히 털어놓기 어려운 고민도 나 스스로에게는 아무 거리낌 없이 상담할 수가 있다.


나는 타로는 특별한 사람들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미래를 진지하게 상담해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스스로를 위해서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유익한 명상 도구이자 생각을 도와주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소중한 친구들의 연애 상담 추억부터 나의 연애들, 인생 첫 대기업 면접, 또 지금의 독일 생활까지 나의 가장 큰 고민들을 다 알고 있고 그 추억을 모두 함께 하고 있는 내 타로 카드. 어쩌면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이 카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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