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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Oct 06. 2020

내 방에서 존재감 최강인 물건

내 방구석 100일 표류기 6/100





6번째 글이 꽤 늦어져버렸다. 매일은 안되더라도 내 방구석 물건을 하나하나 살피는 100일짜리 여행기를 꾸준히 쓰고 싶었었는데. 사실은 일주일이 다 되어가면서부터는 긴 글로 인증하는 것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고, 약 20일 차부터 카카오 프로젝트 100을 통해 참여한 프로젝트들에 대한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시차 때문이다. 해외 시차까지 고려하는 챌린저스와는 달리 카카오 프로젝트 100은 해외 시차를 고려하지 않는다.

모든 인증 마감 시간이 한국을 기준으로 한다는 의미이다. 신경을 쓰다가도 한 두 번 놓치면, 성취감을 잃어가면서 인증을 잊어버리는 날이 늘어간다. 알람 설정을 해놔도 무의미하다.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유튜브 100일 프로젝트(1주 1 영상), 하루 철학 1 문장, 내 방구석 100일 표류기, 이렇게 3개.

이미 모든 프로젝트가 100% 달성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내 물건을 돌아보는 내 방구석 100일 표류기만큼은 브런치와 병행해서 조금 더 기록으로 잘 남겨두고 싶다. (사실 그림으로도 그리고 싶었는데!)




어쨌든 이번 내 방구석 여행의 주제는 ‘내 방에서 존재감 최강인 물건’이다. 이 주제는 내게 크게 어렵지 않았다. 바로 떠오르는 물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내가 좋아하는 민조킹 작가님의 2020년 달력이다. 2019년에는 품절이 되어 구매하지 못했지만, 올해 초 한국에 갔을 때 2020년 달력을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힘들게 구했다며 자랑하듯 여동생에게 달력을 보여줬고, 여동생은 ‘헐’ 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조킹 작가님의 일러스트 달력은 주제가 ‘19금’이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나누는 12가지 다양한 모습들을 오직 흑백으로 표현한 작품집 개념의 달력이랄까. 평소 인스타에서 팔로우하는 분의 굿즈를 사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그만큼 나는 이 그림들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작가님 저작권 보호 및 선정성 순화를 위해 이미지를 약간 편집하였습니다. 원본은 더 예뻐요.






심지어 나는 동생에게 “너무 예쁘지 않아? 너무 과하지도 않고.”라고 했는데, 동생은 “이게 과하지 않다고?”라고 반문했다. 역시 모든 미의 기준은 개인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물론 정말 과하지 않은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이 달력을 본인의 회사 사무실 책상 위에 두려면 상당한 각오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내 방을 위해서는 안성맞춤인 것 같았다. 과감하지만 적당히 절제된 과감함이랄까. 난 평소에는 민조킹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딱히 누드 일러스트를 따로 본다거나 사진을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민조킹님의 작품은 썩 마음에 들고 눈길이 머문다. 그래, 눈길이 머문다. 어쩌다 19금 이미지를 보게 되면 좋든(?) 싫든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고 쳐다보기가 부끄럽다. 함부르크의 술집 거리에 있던 성인용품 가게를 화장품 가게인 줄 착각하고 잘못 들어갔을 때도 그랬다. 너무 놀라서 100m도 걷지 못하고 뒤로 돌아서 밖으로 나왔더랬다. 그런데 민조킹님의 그림들은 눈길이 머문다. 그녀의 그림 안에 깃든 절제된 아름다움 속에서 크고 작게 터져 나오는 자유분방함이 좋다.



회사에 다니면서 새빨간 매니큐어를 바르는 사람들의 심리는 단정하게 입어야만 하고 쉬이 흐트러질 수 없는 회사의 규칙에 대놓고 싫다고 할 수는 없지만 조용히 반항하는(?) 소소한 일탈을 즐기는 심리라고 하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그 날 정말로 새빨간 매니큐어를 발랐던 회사 선배의 말이었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의중을 내게 조용히 전달하는 듯 했다. 나는 그 때 새빨간 매니큐어를 바르진 않았다. 하지만 민조킹님의 달력이 지금 내게는 새빨간 매니큐어인 것 같다. 대놓고 이야기하기는 꺼려지지만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이기 때문일까. (라고 해도 별로 아는 것은 없다는 것이 현실)




아무튼 1월부터 하나하나 독일 집 곳곳에 붙어있는 이 달력 한 장 한 장은 그 존재감이 정말 엄청나다. 어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구매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의미가 있기도 하다. 2020년이 지나도 오래오래 보관할 것이다. 아마 내년이 되어도 이만한 존재감을 가진 물건이 내 방에 새로 들어오지는 않을 것 같다.





#광고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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