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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Nov 06. 2020

코로나와 독일 지하철


오늘은 오전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 집에만 있으면 팽팽 놀기만 할 것 같아 학교 도서관 자리를 예약했다. 또다시 시작된 락다운 때문에 학교 수업은 온라인으로만 진행되지만, 도서관은 문을 열었다. 도서관에서 앉아있을 수 있는 최대 자리는 8 자리. 그마저도 한 번에 2시간 45분. 그렇게 일주일에 2번만 앉아있을 수 있다고 했다. 예약자가 너무 많아 자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해서 들어가 봤다. 자리가 있었다. 아니, 많았다. (그래 봤자 8자리지만.) 다들 코로나를 조심하느라 그런 걸까? 아니면 어차피 2시간 반 밖에 못 있을 바에야 안 오는 걸까. 아님 오리엔테이션 기간이라서일까. 어쨌든 10시에서 12시 45분까지 앉아있겠노라고 예약을 마쳤다.




10시까지 가려면 늦어도 9시 30분에는 나가야 하는데 9시 즈음부터 허리가 묘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점점 허리를 숙이는 각도가 심해질수록 다시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특별히 무리한 것도 다친 기억도 없는데 갑자기 아프니 당황스러웠다. ‘밖에 나가지 말라는 신호인가?’ 하지만 락다운이 시작되기 전부터 가능한 바깥출입을 삼가고 있던 터라 많이 갑갑했다. 학교 도서관도 처음으로 구경해 보고 싶고, 바깥공기도 좀 쐬고 싶은데.




침실에서 현관까지 2번을 왔다 갔다 해보고 못 걸을 정도면 나가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다행히 걷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걱정은 되었다. 그래서 원래 계획이었던 자전거를 타는 대신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요즘은 지하철역에 가면 괜히 긴장을 하게 된다. 일단 역 안에 들어가면 주위 사람들이 마스크를 코까지 잘 덮어서 썼는지 스캔한다. 오늘은 내 마스크도 점검했다. 예전에 정말 깊이 딴생각에 빠져있다가 어떤 가게에 들어갈 때 마스크를 깜빡한 적이 있었다. 금방 깨닫고 후다닥 쓰긴 했지만, 언제든 정신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에는 마스크를 썼지만 코를 안 덮어서 7만원 가까이 되는 벌금을 냈다는 사람의 후기(?) 글도 보았다. 코만 안 쓰든, 마스크를 아예 안 쓰든 매겨지는 벌금은 똑같은 듯했다.




마스크 스캔이 끝나면 사람들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조용히 서있을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서로의 안전을 위한 일이지만, 별생각 없이 있다 보면 그 거리가 마음의 거리처럼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어차피 모르는 사람들인데 가까이 서든, 멀리 서든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그렇지가 않다. 어쩐지 지하철 역 안이 더 추운 기분이 들었다.




지하철이 들어온다. 예전에는 버튼을 눌러야만 열렸던 지하철 문도 자동 개폐로 바뀐 지 오래다. 버튼을 미처 못 눌러서 못 내린 적도 있었는데, 이젠 그런 걱정은 없어졌다. 진작에 이렇게 할 수 있으면서 왜 번거롭게 버튼을 누르도록 만들었을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혼자 추측해 본 바로는 ‘에너지 절약’이었다. 문을 열고 닫는 데에는 적더라도 에너지가 쓰일 것이고, 내릴 사람이 없는데도 문이 열리는 건 확실히 낭비이긴 하다. 혹시나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구글에서 검색을 했다. 그러다 재밌는 트위터를 발견했다. 누군가가 한 베를린 지하철 회사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 이런 질문을 남겼다.





“이런 시기에는 모든 문이 자동으로 열고 닫히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답변이 달렸다.





“저희 지하철의 자동문 개폐는 불가능합니다.
첫째로는 기술적으로 구현이 가능하지 않으며,
둘째로는 그렇게 할 경우 지하철 내의 전체 온도가
내려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이유 모두 흥미로웠다. 독일 지하철 회사에서 ‘우리 그거 기술적으로 못해요.’라는 답변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하철 온도는 코로나가 아니라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춥더라도 자주 공기의 순환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아니, 그러니까 결국 기술적으로 못한다고 해버리니 할 말이 없어지는 상황이었다. 아이러니한 건 버스도 되고, 베를린의 또 다른 지하철인 S반은 자동으로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데(독일은 S반과 U반, 2가지 종류의 지하철이 있다) 베를린 U반 지하철만 못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납득을 못하는 웃픈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처음부터도 느낀 거지만, 이럴 때 보면 독일은 참 이상하다. 기술력이 없지 않은데 어딘가 ‘응? 이걸 이렇게 한다고?’ 하고 의아해질 때가 있다. 함부르크만 해도 버스가 전부 친환경 버스다. 지하철을 운행할 때의 소음도 한국보다 훨씬 적다. 소음 차이는 한국에 가면 정말 엄청 크게 느껴진다. (한국 지하철 진짜 시끄러움) 지하철 문도 평소에는 수동 개폐였지만, 코로나 이후 자동 개폐로 바뀌었다. 기술이 없는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의 지하철 문을 자동 시스템으로 열고 닫을 수가 없다니.






나는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잠시 혼란이 온다.










트위터 출처

https://twitter.com/BVG_Ubahn/status/1237399277078487040?s=20

커버 이미지 출처

unsplash @Samuel-Elias Nad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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