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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봐, 아가씨

by 노이의 유럽일기



독일의 대학교 수업은 대부분 비대면이다. 특수한 경우에는 종종 학교에 나가기도 하는 것 같지만, 어쨌든 우리 학교는 지금까지 100%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애초에 독일은 대학교 캠퍼스라고 할 것도 별로 없긴 하지만, 그래도 학교를 너무 못 가니 독일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실감이 별로 나지 않던 즈음, 학교에 갈 일이 생겼다. 학생증을 들고 '인증'을 하러 오라고 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오라고 하니까 가기로 했다.



월요일 오전 시간이라 지하철은 제법 한산했다. 워낙 외출을 안 한 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다음 정차역을 알리는 안내방송 소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몇 명 되지 않던 사람들도 센터에서 내려서 지하철은 텅 비었다. 15분쯤 달려 학교에 도착하니 학생증을 정체 모를 기계에 넣으라고 했다. '지이이잉' 하는 익숙한 기계음과 함께 내 학생증은 한참을 기계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물으니 학생증의 유효 기간을 업데이트하는 것이라 했다. 알고 보니 내 학생증에 적혀있는 유효 기간은 끝나가고 있었다. '지이이잉'하는 소리가 끝나고 다시 튀어나온 내 학생증에는 다음 학기가 끝나는 올해 9월까지로 유효 기간이 연장되어 있었다. (독일은 학기 시작과 종료 기준이 한국과 전혀 다르다.) 입학할 때 한번 만들면 졸업 때까지 쓰던 한국 학생증과는 사뭇 달랐다. 좀 번거롭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학교에 올 수 있다는 게 기뻤다. (그래 봤자 학생증만 업데이트하고 나와야 했지만)





새롭게 더 반짝반짝 해진 것 같은 학생증을 챙겨서 다시 집으로 가려고 지하철역으로 돌아왔다. 우리 학교 앞 지하철역은 유동 인구가 많지 않아서 코로나와 상관없이 학생들이 다니지 않는 시간대의 역 안은 대부분 텅 빈 경우가 많다. 조명은 또 워낙 컬러풀해서 음악만 틀어놓으면 클럽으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곳이다. 그런데 저 멀리 벤치에 앉아있는 노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첫 번째로 눈에 띈 이유는 할머니가 마스크를 쓰지 않아서였다. 마스크를 귀에 걸치고는 있었지만, 마스크는 턱 아래까지 끌어내려져 있었다. 마스크에 대한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눈에 들어온 것은 할머니의 입에 물려있는 길쭉한 모양의 익숙하지만 낯선 무언가였다.




'설마... 담배?'




라는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스크를 뚫고 담배 냄새가 콧 속으로 들어왔다. 지하철 대기 공간이 아예 지상이라 밖이 뻥 뚫린 공간이면 그래도 이해할만했는데, 사방이 꽉 막히고 정말 '지하'에 있는 플랫폼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러니까 저 할머니는 담배를 여기서 마스크를 내리고 피우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담배를 많이 태우시는 애연가로 추정되었다. 흡연으로 보나 외관상 나이로 보나 고위험군인데,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는 하지만 지하철역에서 마스크를 내리는 것도 모자라 흡연이라니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정말 내가 잘못 본건가 싶어 두 눈을 꿈뻑이며 할머니를 바라보았고, 할머니는 마치 '뭘 봐, 아가씨.' 하는 도도한 눈빛으로 내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았다. 좀 뻘쭘해졌지만 할머니가 앉아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던 중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멈추는 것도 뭐했다. 나는 그대로 할머니가 앉은 벤치를 지나쳐 걸었다. 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할머니 옆에 앉은 할아버지는 뭐라고 할머니에게 중얼거리며 내 눈치를 봤다. (할머니와는 달리 할아버지는 착실히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가 내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내 표정이 100% 전해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너무 놀라서 입 벌리고 토끼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연히 저 할머니의 행동이 독일 노인을 모두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친절하고 매너 있고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을 더 많이 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저 쿨한 할머니의 반항 아닌 반항(?)이 더 충격적이었다. 어차피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어서 냄새를 피할 수 있었기에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그저 정말 어지간히도 피우시고 싶으셨나 보다 생각이 들었다. 그 주체가 할머니라서 내 마음이 관대 해지는 것도 같았다. 걱정도 되었다. 저러다 코로나라도 걸리면 어쩌시려고. 하지만 이미 할머니의 태도와 표정이 나는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답하고 있었다.




만약 지하철역에서 담배를 핀 것이 할머니가 아니라 젊은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불쾌해하며 계속 그 사람을 노려보았을 것도 같다. 그런데 할머니가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조금만 내리고 있어도 노려보며 눈치 주는 내가 왜 마스크도 내리고 담배도 피우던 그 할머니에게는 관대해졌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묵묵히 버텨내야 했던 그녀의 삶이 그 당당한 눈빛에서 조금은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지금의 이 도시의 모습이 모든 사람이 똑같이 바라던 모습은 아니었으리라. 나를 당당하게 바라보던 할머니는 정거장에서 마음껏 담배 피우던 시절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몇 달째 계속되는 코로나 락다운에 대한 반항인 걸까.








할머니, 그래도 건강하시길 바래요.












글&사진: 노이

커버 사진: Photo by Alex Harvey ��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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