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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y 08. 2021

잔디밭을 달리는 달팽이


지난 주 이야기 하나.

일요일 아침이지만 공원 산책을 나섰다.

챌린저스로 주5일 아침 운동하는 습관 만들기에 도전하고 있는데, 금요일과 토요일 아침에 너-무 피곤해서 마지막 도전을 일요일까지 미뤘더랬다. 그렇게 나온거다보니 발걸음도 가벼웁게 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손에 등떠밀려 나오는 기분에 어깨가 축 늘어졌다.

하지만 막상 나오니 일요일 아침이라 사람도 적고 공기도 훨씬 상쾌했다.

독일 사람들도 주말 아침에 늘어지는 것은 비슷한 모양이다. 


그렇게 매일 가는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땅바닥에서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하고 멈춰섰다.

달팽이였다.

날이 따뜻해질 즈음 비 온 뒤 산책을 하면 공원 바닥에서 달팽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집 주위에서 자주 본 건 집이 없는 민달팽이었고, 한국에서 자주 보던 집있는 달팽이를 독일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독일에 집달팽이가 많이 없어서가 아니라 집달팽이가 사람이 걷는 길가에 나와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집 무늬가 독특하고 예뻤다.















아직 독일은 꽤 춥지만 이 날은 날이 조금 따뜻했고, 공기도 바닥도 제법 말라있었다.

그래서인지 촉촉한 잔디밭이 코앞인데도 (내 기준 코앞이겠지만) 지친 듯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렇게 작고 느린 달팽이들은 공원의 아스팔트 길 위를 건너다 뒤쳐져서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미처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기도 하고 특히 빠르게 달리는 자전거에 치여 죽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작년에도 민달팽이들을 나뭇가지에 태워 건너편 잔디밭까지 이동시켜주는 달팽이 전용 택시기사도 했었다. 

이 아이의 경우 집달팽이라 잔디밭으로 옮겨주는 건 민달팽이보다 더 쉬웠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갈 수 있게 두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내가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하는 행동이 사실은 달팽이가 원하는게 아닐 수도 있으니 말이다.

대신 힘내라고 잔디밭에서 아직 물기를 머금고 있는 콩껍질 같이 생긴 낙엽을 주워서 달팽이 앞에 놓아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달팽이의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그 콩껍질에 찰싹 붙어서는 물을 쭈욱쭈욱 빨아먹었다. 귀엽고 신기했다.






갑자기 이 달팽이를 집에 데려가 반려동물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독일에서 야생 달팽이를 잡아다 키워도 되는지 확신이 들지않아 검색을 해보았다.

정말 혹시나 해서 찾아본 것인데, 찾아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몇몇 달팽이는 멸종 위기라 독일의 동물보호법으로 엄격히 보호받고 있는데, 이런 보호종을 고의로 상처입히거나 죽이거나 잡아가는 등등의 행동은 독일에서 불법이다.

벌금도 어마무시했다.

주마다 다르지만 최대 약 6천 7백만원 ~ 8천 7백만원까지 낼 수 있었다.

보호종이라고 하는 달팽이종의 이름을 찾아 검색해 보았지만, 내 앞에 있는 달팽이의 집무늬와 비슷한 사진은 찾을 수 없었다. 애초에 달팽이가 무늬로 구분이 되는 건지, 집 모양에 따라 구분이 되는 건지도 나는 잘 몰랐다. 달팽이 옆에 계속 쭈그려 앉아있기가 힘들어 달팽이로부터 3~4미터 정도 떨어진 벤치에 앉아 계속 검색을 했다. 달팽이에게는 그 동안 햇빛에 지치지 말라고 단풍잎을 양산 삼아 덮어주었다.



벤치에 앉아 계속 검색에 몰두하고 있는데, 내 앞으로 커다란 대형견 한마리와 개주인인 듯한 여자가 지나갔다. 순간 '개가 달팽이를 괴롭히면 어쩌지?' 걱정이 되어 달팽이 쪽을 바라보았다.

개는 잠시 냄새를 맡는가 싶더니 그냥 지나쳤다.

'휴, 다행이다' 라고 안심하고 다시 폰을 보려던 순간,

개의 뒤를 따라 핸드폰을 보며 걷던 여자가 그 낙엽을 밟았다.

'탁-'하는 둔탁한 소리도 들렸다.










"아..."








나는 그 곳을 바라본 채 한참을 굳어있었다.

달팽이가 저 여자의 발에 밟혀 죽은 줄로만 생각했다.

그냥 잔디밭에 바로 옮겨줄 걸.

왜, 저기에 두었을까.

지나다니는 사람이 너무 없다고 방심했구나.

이 후회, 저 후회를 하며 용기내 다가갔다.

죽었겠지, 생각하며

시체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더 밟히기 전에 지금이라도 잔디로 옮겨주어야겠다 싶어 용기를 냈다.

내가 상상한 모습은 달팽이집이 으깨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달팽이는 그대로였다.
그저 낙엽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튕겨나가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집은 깨지지 않았다.

그저 너무 놀라서 집안으로 움푹 숨어들어가 있었다.

다행히 숨은 붙어있는지 약간은 움직이는게 보였다.

얼마나 다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살았으니 다행이다 싶어 늦게라도 잔디밭에 올려주었다.

위에 낙엽을 놓아둔 내 잘못일까.

미안한 마음이 컸다.



결국 나는 그 달팽이를 가까운 잔디밭에 놓아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그 달팽이가 신경이 쓰임과 동시에 달팽이를 데려와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휘저었다.

하루 일정을 마친 저녁, 결국 다시 그 공원으로 나갔다.

그 달팽이가 있었던 곳을 찾아갔지만 달팽이는 보이지 않았다. 다친 곳 없이 건강하게 살던 곳으로 돌아갔다면 다행이지만, 그 주위 잔디밭을 콕콕 쑤시며 맴도는 까치의 먹이가 된 건 아닌지 신경이 쓰였다. 



밖은 이렇게 위험하고, 느리고 약한 그들을 지켜줄 것은 저 예쁘고 작은 집 하나가 전부이다. 민달팽이는 그 집마저 없다. 그래도 달팽이들은 살아간다. 달팽이의 천적은 벌레나 새 뿐만 아니라 인간이기도 하다. 그냥 이렇게 길에서 밟혀 죽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식용으로 먹기 위해 잡아가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래서 저렇게 쎈 벌금이 붙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풀밭의 달팽이를 우리집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마음이 영 불편했다. 여기가 평생 이 달팽이의 집이고, 놀이터고, 맛집이고, 삶의 터전이었는데 갑자기 우리집에서 사육장에서 살 수 있을까 싶었다. 내가 이 달팽이의 천적으로부터 안전하게 이들을 지켜준다고 한들, 이렇게 자유롭게 살던 달팽이가 우리집 작은 사육장 안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인간의 눈엔 한없이 느려보일 지언정, 달팽이는 자기만의 최고 속도로, 자유롭게 풀밭을 내달리며 살아왔을 터. 내게 그 자유를 빼앗을 권리는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렇게 달팽이를 우리집으로 초대하는 대신 앞으로 달팽이가 보고싶을 때는 내가 공원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달팽이의 자유를 담보로 자연의 천적으로부터 지켜주기보다는, 그들이 건너다 밟혀죽지 않을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는 것이 진짜 달팽이를 위한 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동물도 모두가 안전한 도시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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