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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y 11. 2021

짜증내도 괜찮아 아빠

오늘 아침은 일어나는 것이 더 힘겨웠다. 어제 자면서 틀어놓은 영상이 너무 재밌는 영상이었던 게 화근인 것 같다. 유튜브는 안 볼 때는 한창 안보다가도 한 번 빠져들면 빠져나오기가 힘이 든다. 아무튼 어제는 5시 정각에 가볍게 몸을 일으켰는데, 오늘은 20분 정도 더 기절했다가 일어날 수 있었다. 다시 자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이 아침 루틴에는 20만원이 걸려있다. 사실 6시에 일어나도 되는 챌린지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스스로 5시를 선택했다. 이틀째인 오늘까지는 제법 생각한 만큼은 해내고 있다. 돈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다시 망가져버린 삶의 루틴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 천생이 집순이이긴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정말로 잠깐의 장보는 시간과 산책 시간을 빼면, 준자가격리급으로 집에 있다 보니 내게 지금 너무나도 익숙한 이 환경에서 내 생활 패턴을 바꾸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피곤에 찌들어서 딱 지각하지 않을 정도만큼만 자고 - 때로는 지각도 하고 - 그렇게 부랴부랴 하루 일정에 뒤쳐지지 않으려 마치 떠나간 버스를 뒤쫓듯 사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물을 몇 모금 마셔 밤새 건조해진 입 안을 축인 뒤, 이를 닦고 얼굴도 닦고 마음도 닦아준다. 갑자기 108배는 부담스러워서 30배를 했다. 어제 서른 번 절한 것보다 오늘 서른 번 절하는 것이 더 힘들다. 모든 게 다 할수록 점점 꾸준히 나아진다는 큰 착각을 하고 살았구나 싶다. 어제 잘한 것도 오늘은 헤맬 수도 있다. 그래도 된다.


그래도 장점은 일단 절을 하는 것부터가 힘들면 절을 하는 동안 머릿속에 생각이 훨씬 줄어든다. 몸을 움직일 뿐 아니라 일종의 명상 효과까지 얻는 셈이다. 겨우겨우 서른 번을 채우고 나니, 가장 좋은 건 몸이 따뜻해졌다. 독일은 어제와 그제 정말 초여름에 가까운 후끈한 날씨를 보이다가 오늘 아침부터 또 갑자기 비가 내리고 기온이 떨어졌다.  덩달아 떨어진 아침 기온에 몸이 조금 으슬했는데, 너무 힘들이지 않고 적당히 체온을 올리는데에 절만한게 없다.


절을 마치고 책상에 앉아 습관적으로 아이폰의 알림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대부분은 광고 메시지나 이메일 알림이 대부분인데, 오늘은 가족단톡방에 평소와 다른 메시지가 와있었다. 아버지가 "고마워~ 노력해야지~"라고 하시고 동생은 "힘내세용~"하며 하트를 보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가족단톡방에 들어갔다.



"어쩌노. 요즘 아빠가 인내심의 한계가 왔나봐.
쪼금만 뒤틀리면 짜증이 나고 성질이 나네.
인내라는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



평소에 이런 말씀을 자주 하는 분이 아니시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잠은 푹 주무시는 걸까. 어딘가 몸이 불편해서 그러신 건 아닐까. 어떤 말씀을 해드려야 할까. 오늘 아침은 다른 일을 다 제쳐두고 아빠에게 보낼 답장을 고민했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고 살펴보니 엄마가 매일 한결같이 가족을 위해 보내주시는 부처님의 말씀 중에 '인내'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고, 그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이 드신 듯 했다. 카톡 메시지만으로는 상황의 심각성을 짐작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크든 작든 가족끼리 자신의 감정 한 부분을 꺼내어 공유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게 농담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작게 꺼내었을 때 주위의 반응이 괜찮아야 나중에 더 큰 마음이 생겼을 때도 더 편하게 꺼낼 수 있는 법이니까.


우선은 아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려 했다.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요즘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지 모르겠다. 내가 노력해서 인내해야지-' 라는 말 뒤에는 '내가 나를 좀 뜯어고쳐야겠다.'라는 배경이 깔려있다. 나도 흔히 반복하는 패턴이다. 마음이 조금 힘들어질 때, 종종 내 성격의 문제라고 스스로 진단하고, 그걸 바꾸려고 노력하다가 잘 되지 않아 다시 자책을 하는 악순환. 하지만 평소와 달리 갑자기 기분이 업다운되거나 짜증이 나는 경우는 나이가 들어 내 성격이 변해서일 가능성은 낮다. (사람의 성격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1차적으로 요즘 내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이는지를 체크해 봐야 한다고 한다. 감정은 내 몸의 신호이다. 짜증나는 대상이 문제가 아니라 내 몸이나 마음 어딘가가 평소와 달리 불편하다고 알리는 경고음 같은 것이다. 그러니 나를 바꾸려 노력할 것이 아니라 나를 돌봐야 할 때인 것이다. 그래서 사실 부정적인 감정도 감정 그 자체는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알림' 메시지 같은 것이다. 바꾸거나 고치려 할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어야 한다. (물론 너무 심한 경우는 빼고

그래서 아빠의 짜증을 인정해드렸다.



다음으로는 내 사례를 공유하면서 아빠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려 했다. 아빠의 큰딸은 사실 매월 한달에 한 번 일주일씩 심사가 매우 뒤틀리고 짜증이 폭발하는 시기를 거친다고 처음으로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그것은 호르몬의 작용이지 내가 아니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금은 웃으시라고 한 말인데, 진짜 웃으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이런 마음을 나누어준 아빠를 칭찬해 드렸다. 늘 가족을 위해 강하고 씩씩한 모습만을 보이려 애써오시던 아빠가 온 가족이 보는 단톡방에서 본인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나는 오히려 멋져보였다. 술이나 밤 분위기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맑은 정신으로 덤덤하게 공유하는 나의 마음 깊은 한 구석. 우리 가족은 늘 서로가 걱정할 것을 또 걱정해서 밝고 괜찮은 모습만 보이려고 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던지라, 혼자 고민하지 않고 이렇게 가족과 함께 나누고 이야기해준 아빠가 고맙고 멋있었고 그 마음을 그대로 담아 전해드렸다.



아빠의 마음이 출렁일 때는 항상 거기에 가족 걱정, 특히 내 걱정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그 마음을 비워드릴 수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걱정만 주는  딸이 아니라 사랑과 위로와 행복을 더 많이 안겨드릴 수 있는 딸이고 싶다. 비록 지금 딸은 멀리 있지만, 오늘 내가 아빠의 마음을 꼬옥 안아드린 것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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