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내가
게으른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인프피의 땡땡이

by 노이의 유럽일기


어제는 조금 웃긴 하루였다. 기분좋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샤워하고, 옷 단장하고, 화장하고 건물 밖으로 나가기까지 했는데, 비가 부슬부슬 오는 것이다. 헉, 오늘 비가 오나? 날씨앱을 확인해보니 한시간 뒤부터 비올 확률이 90%였다. 우산을 가지러 다시 집으로 올라갔다.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춰나온거라 우산을 가지러 올라가기로 한 순간, 지각은 확정이었다. ‘그래, 지각 그거 좀 할 수도 있지.’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웃긴 게 계단을 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수업에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러고보니 오늘 수업 내용은 별로 어려워보이지 않던데 (재수강이라 작년에 들었던 게 기억남...)'




"그냥 학교 가지 말고 집에서 쉴까..."




그리고 나는 정말 그 길로 외투를 벗고 다시 집에 눌러앉았다. 스스로도 '갑자기?'라는 생각이 들법한 상황이라 웃음이 났다. 사실 최근 나의 일정은 제법 부지런히 학교를 오갔고, 온라인 수업인 날도 더 집중하기 위해 학교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번 주는 몸이 좀 피곤해지면서 요며칠 내내 집에 있긴 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라도 나가고 싶었는데, 이런 갑작스러운 변덕에 나는 또 굴복하고 만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도 머릿 속이 아주 혼란스러웠다. 수업 갈 준비를 잘 하고 나와서 별것도 아닌 일로 모든 일정을 취소해버리는 것이 오늘의 계획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타임라인별로 하루 계획도 세우고 나옴) 그럴때면 '나는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의지박약이지?'라는 생각들로 스스로를 자책하기 바빴다. 하지만 이 날은 달랐다. 어차피 내릴 결정, 고민은 덜 하고 빠르게 땡땡이를 선택했다. 그리고 어렴풋이 내 심경의 변화가 생긴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내가 게으른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라는 것이 내가 꼭 뭐 대단한 걸 완벽하게 하고자 한다 해서 완벽주의자가 아니다. 오늘은 이런 경우였다. 아침까지 분명히 수업에 대한 의욕이 있었지만, 우산을 가지러 돌아가자고 결정하는 순간 이미 지각이 확정되었을 때, 이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의욕은 심해 2000m 정도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왜냐면 ‘지각’을 함으로써 이미 완벽이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수업 앞부분 15분 정도 조금 놓쳐도 큰 영향 없고, 출석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수업이라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깨진 건 깨진 거다. 사실 평소 같으면 이 때 잘 참고 넘어가야 하는데, 이 날은 어쩐지 그러기엔 몸도 마음도 지쳤었구나 싶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에도 그렇게 모범생이 아니었던 내가, 독일에 와서 부단히 완벽한 모범생이 ‘되고 싶어하는’ 나를 보게 된다. 늦게 유학을 시작했으니까, 외국인이니까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그 압박감이 마음 아주 깊은 곳에 깔려서 나를 조종한다. 나는 그 압박감에 손을 뻗기 어려울 만큼 작은데, 그 압박감은 손가락 하나로 나를 요리조리 튕겨대는 기분이다. 좋게 생각해서 그런 압박감이라 하더라도 단순한 완벽주의자와 만난다면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앞에서도 말했듯 ‘게으른 완벽주의자’ 이다. 그 압박감 아래에서 쉽사리 항복을 외치고 드러눕게 되버린다.




그래서 결국은 2개의 수업을 모두 안 가버렸다. 유학을 시작하고 수업을 빠지는 일이 완전 처음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수업은 안빠지겠다는 각오를 했었건만, 이번 달부터 수업을 하나둘씩 빠지기 시작했다. (역시 각오는 깨라고 있는 건가) 하지만 심신이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해서 수업을 들으러 간다고 하더라도 제정신으로 들어도 알아듣기 힘든 독일어 수업이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한참을 하고 싶던 게임을 하고 예능을 보며 쉬고 있는데 어째 마음 한 켠이 찝찝했다. 계획이 약간 틀어졌다는 이유로 모든 계획을 다 ‘Fuck it!’ 해버리고 놀 정도의 각오라면, 기왕 이렇게 된 거 일탈이라는 기분에 한껏 젖어 신나게 놀면 될텐데 놀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나를 보고있자니 정말 답답한 고구마가 따로 없었다. 돌아보니 10대의 학창 시절에도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회에 학교에 크게 반항할 만한 배짱은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것이 몸에 베이고 마음에 베여 30대 중반이 된 지금도 어쩌다 한 번 마음 편히 땡땡이도 못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니. 그렇게 사는 것도 오늘까지로 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소리내어 말해주었다.





괜찮아, 쉬어야 할 때를 알고 잘 쉬는 것도 능력이야.
내가 기계도 아니고 어떻게 주말에만 맞춰서 쉬겠어?
제 때 잘 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
나는 지금 잘 쉬는 연습을 하고 있는거야.
















커버 이미지 출처: Photo by Zhang Kenn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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