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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r 11. 2022

베트남 사람들이 독일에서 한식당을 열기 시작했다



내일은 조별과제 마감일이다.

지금은 새벽 한 시.

아직 내가 써야 할 분량이 남았지만, 30대 대학생의 나는 20대 대학생이던 나와 달라서 밤을 새지 못한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남은 분량을 써야 한다.

하지만 오늘, 아주 오랜만에 그분이 찾아왔다.


내 머릿속에는 타자기가 있다.

쓰고 싶은 게 생기면 이미 머릿속에서 타닥타닥 타자기가 움직인다.

‘이런 내용을 써볼까?’라고 먼저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미 문장의 앞부분부터 쓰고 있다.

머릿속으로 몇 문장을 쓰고 나서야 (어차피 머릿속에선 저장이 안 되니까) ‘이걸 써봐야겠다’ 하는 식이다.

이 타자기가 항상 일을 하는 것은 아닌데, 한 번씩 열정을 불태울 때가 있다.

그것이 하필 오늘 밤이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내일 과제를 마감해야 하는,

그런 오늘 밤.


그냥 참고 잘까 하다가 결국 아이패드를 열었다.

메모를 해두고 잘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게으른 내가 나중에 다시 쓸 리가 없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써보는 오늘의 일기.




Chingu


오전에는 자주 가는 카페에서 과제를 했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밖으로 나왔다.

일부러 누군가와 약속을 잡는 게 아니고서야 밖에서 먹는 밥은 저렴한 걸로 대충 먹는 습관이 생겼다.

왜냐면 독일의 외식은 대부분이 비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제대로 된 밥이 먹고 싶었고, 한식이 먹고 싶었다.

가고 싶은 한식당은 조금 거리가 있어서 고민하던 찰나, 100m 앞에 있는 커다란 간판이 눈에 띄었다.

‘Chingu‘라고 작게, ‘친구’라고 크게 쓰인 간판.

자세히 보니 한식당이라고 적혀 있었다.

정확히는 한국 치킨집이었다.

독일은 한국식 치킨이 귀하다.

맛있는 치킨은 ‘더’ 귀하다.

‘드디어 치킨 전문집이 생긴 것인가?’

설레며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바로 들어가지는 않고 밖에서 안을 관찰했다.


가장 첫 번째 드는 생각은 ‘한국인이 하는 곳인가?’였다.

아시아인처럼 보이는 직원  명이 눈에 띄었는데 한국인 같기도 하고 아닌  같기도 했다.

긴가민가 하던 찰나에 메뉴판에서 ‘chicken MU‘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치킨… 무…?’




메뉴가 흥미롭다 치킨집에서 비빔밥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게에는 케이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묘하게 한국스러우면서도 위화감이 있었지만, 치킨무를 아는 사람이라면(!).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게 정말 이런 사소한 디테일에서 결정되는 거다.

나를 맞이하는 다른 직원을 보고서야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여기서 먹기로 결정했고, 또 새로 생긴 한식당은 경험해 볼 만하다.








점심부터 치킨을 먹기는 부담스러워서 비빔밥을 주문했다.

소고기 비빔밥이 9.90유로. 한화로 약 만 삼천 원.

이렇다. 한식당은 대체로 비싸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구글 리뷰를 봤다.

생긴 지 오래되지 않은 식당이라 리뷰는 많지 않았고, 평은 갈렸다.

많은 사람들이 맛은 그럭저럭 먹어줄 만 한데, 한국 정통 맛이 아니라는 것에 불만을 표했다.

주인이 한국 사람이 아니다, 맛이 한국 오리지널이 아니다, 등등.

주인도 직원도 모두 베트남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꼭 한국사람이 한식당을, 터키 사람이 케밥집을 열어야 할까?

한국에서는 이탈리아 식당의 주인이 이탈리아 사람이든 말든 신경 안 썼지만, 왜 때문인지 여기서는 매우 신경을 쓰게 된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현지인들도 자주 그렇다.

물론 오리지널 국가 출신인 사장이나 셰프가 있다면 더 맛있는 건 맞다.

그동안 교묘하게 한국의 이미지를 이용해 온 타국가 식당도 많이 봤다.

딱히 한국 음식을 제대로 파는 것도 아닌데 식당 이름에 한글을 쓰는 곳도 있었다.

어떤 곳은 그냥 아시아 음식이라고 하면 다 취급한다.

물론 맛은 보장할 수 없다.


하지만 꼭 한국 사람만 한식당을 열라는 법은 없다.

일본 식당에서 조용히 자기네 사이드 메뉴에 소리 없이 '김치'가 들어가 있는 것보다 차라리 이 식당이 낫다.

적어도 한국음식을 베트남 음식인 척 교묘한 수작은 부리지 않으니까.

적어도 코리아라는 단어를 쓰고, 좀 생뚱맞아도 한국어를 쓰니까.

또 내가 좋아하는 라멘집 중 하나는 사장이 독일 사람이다.

라멘을 정말 좋아해서 일본에서 연구해 왔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주인이 누구든 상관없다.

문제는 베트남 사람들의 '한식 이미지' 이용에는 대부분 상업적인 마케팅 목적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 방문한 식당은 한국의 맛을 살리려 애쓴 노력이 보였다.

중요한 건 외국인이 한식 문화에 손을 뻗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이 원하고 있고, 거기에 반응하는 것일 테다.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 대기업이 두 팔을 걷고 이 콘셉트로 프랜차이즈를 미친 듯이 낸다면 문제가 될 것 같다.

하지만 한 지점 정도는 흥미롭다.

나는 해외의 한식당들이 조금 더 긴장하고, 자기 계발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요식업에 소질이 있었다면 정말로 한식당이나 카페를 여기서 오픈했을지도 모른다.









비빔밥은 의외로 돌솥비빔밥이 나왔다.

뜨거운 걸 잘 못 먹어서 돌솥은 안 좋아하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먹으니 반가웠다.

나름 훌륭한 퀄리티였다.

오히려 다른 한식당에서 먹었던 비빔밥보다 더 나았다.

한국인 직영의 한식당에서 비빔밥을 시켰다가 맨 위에 땅콩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기겁한 적이 있어서일까.

리뷰들처럼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근데, 이게 고추장이 아니라 그러니까 초장 맛이 더 나는 고추장...

엄마한테 이야기했더니 "다음엔 초장 말고 고추장을 달라고 하렴"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다음엔 치킨무를 먹어볼 것이라고 속으로 다짐했다.





점심도 잘 먹고 과제도 열심히 한 내게 주는 보상, 노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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