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Mar 21. 2022

혼란스러운 일상 속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우크라이나가 독일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



봄이 오고 있다.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독일의 봄, 여름이 온다. 한국에서도 화창한 날씨를 보면 기분이 좋았지만, 독일에 거주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소중함이 더 크다. 해가 뜨고 하늘이 파란 날에는 그 무뚝뚝한 북독일 사람들도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일요일 아침 10시 30분 근처 카페로 가벼운 산책을 나갔다. 매일 보다시피 하는 풍경인데 날씨 하나에 그림이 된다. 기분 좋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카페들이 모인 거리 초입구에 들어섰는데 앞에서 '위이이잉'하는 소리가 났다. 30-40대 쯤 되어보이는 남자가 (외국 사람들 나이 가늠하는 건 여전히 너무 어렵다) 전동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폼이 어색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다리 사이에 작은 꼬마 아이를 태우고 있었다. 



어때, 완전 쿨하지 그치? Na? Es ist so cool, oder? 



남자가 아이에게 다정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고, 남자의 팔을 꼭 잡은 아이의 얼굴에는 신이 나서 함박웃음이 폈다. 그 웃음꽃이 날아와서 내 얼굴에도 같이 폈다. 일요일 아침부터 아들과 놀아주는 훈훈한 아빠의 모습인가 생각하며 발걸음을 계속 옮기는데, 전동킥보드 부자가 다시 뒤로 돌아 나를 앞질러 갔다. 그러더니 남자가 아이를 한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 내려주고 유유히 사라졌다. 알고보니 이 남자는 지나가던 사람이었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는 남녀가 아이의 진짜 부모 같았다. 앞의 정황은 모르겠지만, 아이가 부러워 하자 지나가던 사람이 잠깐 태워준 모양이었다. 부모와 남자가 아는 사이 같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그냥 떠나지 않고 분명 대화를 더 나눴을 것이다. 



한마디로 여유가 흘러넘치는 풍경이었다. 저 아이는 저 순간이 얼마나 신이 났을까. 저렇게 해맑고 기쁜 표정도 정말 오랜만에 봤다. 그 벅찬 설레임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 했다. 한편으로는 왜 모든 어린이들이 저렇게 행복하게 자랄 수 없는 건지 복잡한 심경이었다. 요즘은 무슨 일을 하든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마음에 걸린다. 열심히 과제를 하다가도, 지금 내가 과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게 맞나 싶다. 그렇다고 독일이 마냥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러시아의 저 말도 안되는 행보로 인해, 기름값이 미친 듯이 폭등하고 있다. 식용유를 사서 자동차 연료에 섞어 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식용유가 지금 품절이다. 밀가루도 품절이고, 그 다음은 소금이다. 얼마 전 김치전을 해먹고 싶어서 밀가루를 사러 갔는데 기본 밀가루가 죄다 품절이었다. 1인당 2개까지만 살 수 있다는 공지 사항이 무색해 보였다. 어차피 없는 걸. 겨우 하나 남은 유기농 통밀가루를 살 수 있었다. 기본 밀가루보다 3배는 비싼 가격.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이거라도 살 수 있는 게 어디냐며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특히나 난민이 많이 몰리는 대도시에는 일반인들이 자신의 남는 방을 내어주면서 난민들을 돕고 있다. 난민의 수가 너무 많아 임시 숙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베를린에 사는 지인도 자신들이 시골 별장에 가있는 동안 난민들에게 선뜻 집을 내어주었다. 아무리 난민이라도 집 전체를 모르는 사람에게 무료로 내어준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과연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코로나는 이제 더 이상 인간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듯 보인다. 마스크 착용 해제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인지는 그냥 정말로 아무도 알 수가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누가 21세기에 세계적인 전염병 확산, 전쟁을 다시 겪을 줄 알았을까? 이 혼란한 상황 속에서 오늘 아침 만난 한 남자의 작은 선행과 아이의 미소로 잠시라도 복잡한 마음을 달래었다. 어쩌면 힘들수록 더 필요한 게 웃음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베트남 사람들이 독일에서 한식당을 열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