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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r 08. 2022

30대 유학생이 지켜본 독일 Z세대

네일을 바르고, 앤티크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남학생들




아주아주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 그동안은 코로나 상황이 계속 심해졌기 때문에, 학교를 가지 않을 수 있는 옵션이 있다면 늘 집에 있기를 택했다. 학교 동급생들이 모이는 자리에도 일부러 나가지 않았다. 그들과 친해지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중 일부는 자유 분방하게 사람들과 어울리고 다니는 것을 알기에 코로나 걱정이 되어 일부러 거리를 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과 친해져도 관리를 못하는 내 성격을 알기에 요즘은 쉽게 사람들과 가까워지려 하지 않는다. 어쨌든 거의 자진 아싸로 지내던 내가 오늘 어쩌다보니 10명 가까이 되는 스무살 동급생들과 함께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것도 전혀 친하게 지낸 적 없는, 말 한 번도 섞어본 적 없는 이들이 대부분인 무리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가 갈수록 내향성이 강해지는 나로서는 이 시간이 매우 매우 어색했고, 동시에 공부는 매우 잘 됐다. 옆에서 다른 동급생들은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시끄러웠지만, (유난스러워 보일까봐 이어폰도 못 꽂았다) 어차피 나는 그 대화를 다 알아듣지도 못했고 그래서 뻘쭘해져서 오히려 더 열심히 과제를 집중해서 하게 되는 묘한 효과가 있었다. 처음부터 이들을 만나려던 계획은 아니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었던 점도 없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인원은 당시에도 부담스러웠다. 원래는 같은 조인 동급생 2명을 만나 조별 과제를 하기 위해 학교에서 만나기로 했다. 학교 밖에서 셋이 만나서 다같이 스터디룸으로 이동했고, 별 생각 없이 자리 잡은 테이블 바로 옆이 같은 학과 동급생 무리였다. 그 때는 4명 정도였고 테이블도 떨어져 있어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나와 같은 조원인 친구들이 그들과 친해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우리는 서로 금방 공부에 집중했다. 말 한 번 섞어본적 없는 내게도 웃으며 인사를 해주는 게 참 고마웠다. 그런데 그러던 것이 1명, 2명 점점 늦게 도착한 새로운 친구들이 늘어나 10명 정도가 되었고, 밥도 다같이 먹으러 가고 나중에는 아예 테이블도 합쳐서 다같이 앉아서 공부를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같이 수업만 들어봤지 따로 공부해 본 적은 없어서 신선한 경험이었다.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소소한 수다를 듣는 것도 재밌었다.




사실 이 친구들은 나와 완전히 똑같은 동급생이 아니다. 한국으로 치면 나는 2학년이고, 이들은 1학년인데, 독일은 학년의 개념이 아니라 학기의 개념으로 나누기 때문에 딱히 한국의 대학에서처럼 계급 같은 느낌은 없다. 우리 학과의 경우 그저 몇 학기 더 다녀본 사람이 덜 다녀본 사람을 도와주는 느낌이고, 이래저래 다 친구도 섞여있기 때문에 다 친구처럼 지내는 분위기. 하지만 편의상 1학년이라고 부르겠다. 나는 이번 학기에 첫 학기에 드롭시킨 수업을 재수강해야해서 절반 정도 되는 수업을 이 1학년 동급생들과 함께 들었는데 2학년 친구들과 1학년 친구들은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 친구로 대하기에는 1학년 친구들이 더 불편한데, 관찰하기에는 1학년 친구들이 더 흥미롭다. 2학년이 좀 특이하게 평균 연령이 약간 높은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1학년과 2학년은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고 느낀다. 2학년들과는 정말 큰 어려움 없이 친해졌는데, 이 다름 때문인지 1학년들에게 선뜻 다가가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날만 해도 그랬다.  친구가 늦게 와서 서로 인사를 나눴다. 그러다가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늦게  친구가 하고 있는 귀걸이에 대해 칭찬을 했다. 그냥 들으면 평범한 여자끼리의 대화 같지만,  대화의 주인공들의 신체적 성별은 남자와 여자였다. 그리고 귀걸이를  사람이 남자였다.  친구가 특별한 케이스 같지도 않다. 예쁜 귀걸이를  남자가  친구 하나는 아니기 때문이다.  옆에 앉은 친구는 앞서 다른 여학생의 귀걸이도 칭찬했었다. 그냥  친구는 귀걸이에 관심이 많거나 눈썰미가 좋은  같고,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사람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 분위기다.  귀걸이도 피어싱같이  붙는게 아니라 약간은 치렁치렁한 다소 화려하다면 화려할  있는 그런 앤티크 스타일의 귀걸이였다. (튀고 화려한 귀걸이가 요즘  주위 독일 20 사이에서 유행하는  같다) 물론 모든 남학생들이  그렇게 꾸미진 않지만, 스타일들이 정말 자유롭다고 매번 느낀다. 사실 아무리 머리로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남자가 꾸밀 권리 또한 인정할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것을 눈으로 목격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어쩌면 내가 오늘 마무리한 과제보다 오늘의  사소한 경험이 미래의 내게  양분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느낌의 보헤미안 스타일 귀걸이였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같은 수업을 듣던 어떤 남학생은 손톱에 곱게 네일을 바르고 왔다. 옆자리라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처음엔 놀랐다. 적어도 내 삶에서는 손톱에 네일을 한 남자를 일상에서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게 이상한게 아니라 분위기 있고 예뻤다. 그냥 튀려고 바른 게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코디에 신경을 쓴 게 느껴지고, 네일 컬러도 가방이나 신발 등의 소품과 깔맞춤이었다. 심지어 다음 주에 다시 만날 때마다 네일 컬러가 바꼈다. 어떤 날은 베이지색 컬러와 비슷한 컬러의 귀걸이, 반지를 세트로 차고 와서 패션 센스를 뽐냈다. 소심한 성격에 이쁘다고 말해주는 것까지는 못했지만, 속으로는 매주 감탄을 했다. 다음 주에는 어떤 컬러를 바르고 올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독일의 모든 남자들이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반대다. 내가 주로 마주치는 독일의 30대 남자들은 마인드는 남녀평등을 지양하더라도 외모는 더 남자다워 보이려고 수염을 기르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이 친구들은 독일의 Z세대. 사실 학교가 아니라면 내가 그들을 마주칠 일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관찰하는 일이 더 흥미로운 것 같다. (특히나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서 더더욱.) 그들은 통통 튀고, 자유롭고, 자신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다. 패션 취향들도 비슷한 듯 다 달라서 각자의 코디를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실용성을 중시하는 독일 사람들의 성향 때문인지 독일인들이 패션 센스가 없기로 유명하고 그것은 일부 사실이지만, Z세대는 다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맘먹고 패션에 신경쓰는 사람들은 그 매력이 또 주체할 수 없이 뿜뿜 뿜어져 나온다. 한국 아이돌처럼 ‘예쁜’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 엣지있고 쏘울이 살아있달까. 절제된 아름다움만 봐오다가 이런 자유로운 아름다움을 마주하고 있자니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니면 이것이 글로벌 Z세대의 트렌드일까?




전혀 계획에 없었던 독일 Z세대들과의 스터디… 흥미로웠지만, 역시 어쩔 수 없는 인프피인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가 빨렸다. 아무리 친한 사람을 만나도 독일어를 쓰거나 들어야 하는 만남이면, 나는 매우 빠르게 에너지와 집중력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찬 바람을 맞으면서 발코니에서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그들은 너무 유쾌해 보였지만, 나는 잠깐 문 열려서 바람 들어오는 것도 추워서 싫다.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독일 20대와의 묘한 세대 차이. 문화 차이, 언어 차이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 나이에 유학하려니 세대 차이까지 추가다. 오늘도 다같이 모여서 공부하자고 내일 보자고 인사까지 다 하고 헤어졌었는데, 이틀 연속은 너무 기빨릴 것 같아서 혼자 공부하겠다고 했다. 일단은 발등에 떨어진 과제부터 마무리 하자. 인연이면 더 가까워지고, 아니면 스쳐가겠지.





+) 어제 하루 담은 풍경을 짧게 영상 기록으로 남겼다. 자막도 없고, 사운드도 없지만 이 풍경이 그리운 날이 반드시 올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만든 영상.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의 공유입니다. 성급한 일반화는 지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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