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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Aug 25. 2022

쇼핑백에 장을 보면
기분이 더 좋아질까?


이번 주말, 처음으로 가게 될 마요르카 여행에 대비하려고 옷을 사러 나갔다. 수영복 겉에 걸칠 얇은 가디건이 하나 필요했는데, 이미 가을 겨울 옷이 거의 들어차서 원하는 옷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이 원하는 옷이 안보여서 너무 꼼꼼히 들여볼수록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내 스타일인 옷이 하나씩 두개씩 보물찾기처럼 튀어나왔다. 결국 2시간 30분 만에 30만원어치를 질러버렸다. 예전에는 쇼핑 두세시간 하는 게 힘들곤 해서 즐겨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마요르카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까. 이렇게 신나게 옷을 산 것도 몇 년 만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최근 몇년 간 나름의 미니멀리즘을 하면서 제일 아낀 것이 옷에 대한 지출이었기 때문이다. 누가보면 우스울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내게는 제법 큰 지출이기에 계산을 하면서 오랜만에 쇼핑의 쾌감에 어깨가 올라갔다. 내 옷을 하나씩 계산하는 직원의 길다란 손톱에는 형형색색의 네일이 곱게 올라가 있었다. 내 옷의 가격을 찍고, 도난 방지 태그를 떼어내는 직원의 손길은 매우 조심스러웠는데, 일을 하다가 자신의 손톱이 상할까봐 그런 건지 아니면 자신의 손톱이 내 옷을 상하게 할까봐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가방 필요하세요?



그녀의 손톱에 홀려있다가 형식적인 질문에 현실로 돌아왔다. 지금까지의 경험대로라면 나는 종이백을 사서 새옷을 가지런히 담아, 양손에 들고 룰루랄라 돌아갔을 거다. 하지만 독일에 와서 가장 많이 바뀐 습관 중 하나가 바로 쇼핑백이나 봉투를 받지 않고 내 가방에 담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오랜만의 지름신 강림에 흥에 겨웠던 그 순간에도 쇼핑백은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결국 쇼핑백을 사양하고 평소 들고 다니던 에코백에 새 옷들을 담았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분명 30만원어치 옷을 지르고 신이 나야 하는데, 어째 마트에서 3만원 어치 장을 보고 온 기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유가 뭔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럴 땐 빳빳한 종이로 된 쇼핑백을 여럿 들고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걸어야 기분이 나는데, 장볼 때 쓰던 에코백에 구깃구깃 눌러 담고나니 기분이 나질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3만원 어치 장을 본 것을 빳빳한 쇼핑백에 담아온다면 그 기분은 또 30만원 어치 새옷을 사고 온 기분이 들까? 


중요한 것은 필요한 새 옷을 산 것이지 쇼핑백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그동안 쇼핑백이 가지는 힘을 과소평가 해왔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핑백이 아닌 에코백을 선택한 내 자신에 대한 뿌듯함이 더 컸다. 결국은 양손에 빳빳한 쇼핑백을 들고 거리를 걷는 것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이다. 그렇게 걸으며 잠시 행복하다 한들 순간이다. 우리는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 속에 산다. 그렇다면 3만원 어치 먹거리든, 30만원 어치 새옷이든 소박하게 담아내는 내 에코백의 성실함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내 보는 건 어떨까. 어떤 물건에 가치를 매기는 것은 사회이기도 하지만, 결국 내 인생에 들이는 내 물건에 대한 가치를 매기는 것은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쇼핑백에 장을 보면 기분이 더 좋아질까?
에코백에 새옷을 담아오면 기분이 더 안좋아질까?
나라는 그릇은 무언가를 담았을 때 기분 좋은 그릇일까?
이 그릇 안에는 또 무엇을 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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