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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Aug 25. 2022

한 달 휴가 쓰는데,
굳이 한국을 가는 이유

+그렇게 그리움에도 굳이 독일에 사는 이유


아마도 내 몸에는 또는 마음에는 '한국물 수치'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을 떠나 있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그 수치가 서서히 떨어진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매년 한국을 방문해오다가 코로롱이 우리 생활을 뒤흔든 뒤 처음으로 한국물 수치가 매우 낮음 상태가 되었다. 이것이 향수병인가? 아니 향수병이라고 정의하기엔 명쾌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지난 2년 동안은 괜찮았을지언정 이번에는 무슨 일이 생겨도 한국에 가야 한다는 결심이 마음속에 굳건히 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가서는 확실히 느꼈다. 나라는 사람은 일 년에 한 번씩은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물에 첨벙 빠져서 나의 몸과 마음을 듬뿍 적시고 와주어야 한다. 한국물에 빠져서 헤엄치며 얻는 것이 오롯한 불안이든, 편안한 안정감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장기 해외 거주자가 한국에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는,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고 그동안 못 먹은 한국 음식을 잔뜩 먹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 그 안의 사회, 분위기, 트렌드, 사람들이 쫓는 가치, 건물, 일상의 모습 그 하나하나를 열심히 흡수하는 것이다. 차창 밖 풍경도 서울에서 살 때 느끼던 것과는 전혀 다르고, 지하철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드는 생각도 전혀 다르다. 1년에 한 번씩 들어올 때는 진짜 엄마가 해주는 밥만 집밥이었는데, 더 오랜만에 한국을 들어가니 한국에서 보고 듣고 먹는 모든 게 집밥 같았다.



한때 일상이었던 이 풍경이 떨어져 보니 소중하다



독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국보다 휴가를 더 잘 쓸 수 있다. 특히 휴가 기간에는 한 번에 3주, 4주씩도 쓸 수 있다. 그 시간을 쓸 수 있다면 미국을 가거나 다른 나라를 더 열심히 여행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한국에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 한국행에 드는 돈도 시간도 결코 적지가 않음에도 말이다. 나처럼 싱글로 가는 사람은 다행이다. 하지만 여기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가족을 모두 데리고 가는 사람들은 비행기 값만 몇백이다. 한국에 가서 쓰게 되는 돈까지 생각하면 한국 한번 다녀오는데 천만 원도 우습게 찍어버리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한국이 좋으면 왜 들어오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이것은 한국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 독일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을 지우고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나를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니다. 독일의 문화를 배우면서 일부는 이해만 하고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일부는 내 것으로 흡수하기도 한다. 내게 독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한국에서 쌓은 정체성을 기반으로 다른 나라 문화를 경험하며 더 나은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한국인으로서 독일에서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밉든, 예쁘든 나의 모국이다. 온갖 종류의 애증이 얽히고설킨 나의 나라. 나는 오히려 그곳을 떠나고 나서야 나의 모국에 대한 애정이 커진 케이스다. 나의 삶이 대체적으로 그런가 보다. 내게 중요한 존재들과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야 관계가 좋게 유지가 된다. 내가 지독히도 예민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운명의 여신이 나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절대 만날 수 없고 평행하도록 실을 짜둔 것일까. 어쨌든 나는 자유의 시대에 태어나 민주주의 국가에 살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최대한 누리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나를 살아가게 하고, 내게 기쁨을 준다면, 나는 그 자유를 선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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