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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Jan 12. 2023

위기에 처한 도시들과 데이터 과학


최근 런닝맨에서 더이상 ‘이름표 떼기’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짤을 본 적이 있다. 유재석이 대신 설명하길 ‘시청자분들이 이름표 떼기를 보고 싶다고 많이 말씀 하셔서 이름표 떼기를 하면, 정작 시청률은 떨어진다‘고 했다.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필요한 간단하면서도 직관적인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외국계 회사의 한국 지사에서 일하면서 게임 하나를 런칭한 적이 있었다. 회원가입을 유치하기 위한 간단한 웹사이트가 하나 필요했다. 당시 한국 게임 업계 특유의 랜딩 페이지 디자인 구성이 있었는데, 유럽 본사 웹팀에서는 유럽식 랜딩 페이지 디자인에 텍스트만 바꿔서 진행하고 싶어했다. 한국 지사에서는 그런 유럽 감성의 디자인이 한국 유저에게 먹히지 않을 거라고 반대했다. 본사 웹팀은 A/B 테스트를 제안했고, 그 결과 유럽식 디자인의 페이지도 한국식 디자인의 페이지도 비슷한 회원가입수를 보였다. 물론 랜딩 페이지를 봤을 때 신규 이용자들이 느낄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나 주관적인 경험까지 측정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 시간과 인력이 넉넉치 않아 최대한의 효율을 추구해야 했던 상황에서 이 데이터 비교 및 분석은 큰 갈등 없이 명료한 결과를 가지고 왔다. 이러한 간단한 사례외에도 규모가 훨씬 크고 복잡한 사례가 있으니 바로 위기에 처한 도시들을 위해 쓰이는 데이터 과학이다.



세계적으로 도시화(Urbanisation)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도시에서 살고자 스스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반대로 전쟁, 자연 재해 등의 피해로 살던 지역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의식 수준은 크게 발전하지 못해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난민들이 무리지어서 사는 난민촌은 대부분 도시 외곽의 열악한 환경에서 조성된다. 많은 위기 상황들이 정치/경제적인 의도로 인해 새로운 문제를 낳거나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악화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지금도 세계 어느 곳에서는 난민촌이 급속도로 커져가고 있고, 난민촌이 위치한 도시나 나라는 그들을 지원하거나 제어할만한 힘도 기술도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시국에서 ‘글로벌 인도주의적 시스템(Global Humanitarian System)’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인도주의적 시스템(Global Humanitarian System)이란?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한 예측 가능하고 효과적이며 시기적절하며 조정된 대응을 촉진하기 위해, 유엔 기관과 비정부기구(NGO)가 지역 및 글로벌 수준에서 협력하는 시스템 (출처: Interaction)



미국의 NGO단체 협회인 Interaction에 의하면, 1억 3천 5백만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인도주의적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인구의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이 위기 속에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그 중 약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지역에서 강제로 쫓겨난 사람들이며, 약 8천 3백만명의 사람들이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있다고 한다.



출처: Interaction.org 스크린샷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위기에 처한 지역들이 많다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숫자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위에서 설명한 Interaction 데이터를 얻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구글에서 ‘Global Humanitarian system’을 검색하여 상단에 노출된 검색 결과를 통해 Interaction의 홈페이지에 접속, 그리고 이 데이터가 메인에 띄워져 있었다. 인터넷 과잉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정보를 당연하듯 얻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사실은 이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어린 노력과 시간과 에너지가 모인 결과값이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기술적 지원’은 종종 위화감을 느끼게 하거나 오해를 낳기도 한다. 지금 당장 먹을 것이 없고, 내 머리 위로 언제 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르는데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냐는 의견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 분석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나처럼 지구촌 위기에 무지한 사람도 1분 안에 ’우리나라 인구 두배에 가까운 사람들이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하고 깨닫게 만든다. 또한 직접적인 위기에 처한 사람은 당연히 이런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할만한 여유나 시간,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더욱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위기에 처한 도시들에 대한 데이터는 아주 대량으로 수집된 상태라고 한다. 지역, 나이, 성별 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엄청난 데이터가 모여있고 그것을 분석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관심있는 분들은 global humanitarian system 등을 검색해보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대부분의 정보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UN조직이나 NGO단체들의 홍보 활동과 현황 보고도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는 심히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1억명 넘는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는 좀 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최근 몇년 사이에 빅데이터 분야나 데이터 애널리스트에 대한 니즈나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히 높아진 것을 체감하는데, 그 지식과 기술의 쓰임이 한 회사의 이익을 높이는 것 뿐만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인도적으로 돕기 위해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데이터 과학에 대한 관심이 꼭 데이터 과학을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데이터 과학을 통해 얻은 결과는 어디에서든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힘과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데이터 과학에 관심이 없다면 아무리 비싼 돈과 많은 시간을 들여 분석한 데이터도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관심과 활용, 상호간 정보 공유도 데이터 분석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이 내가 오늘 이 글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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