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Jan 15. 2023

놀랍도록 아무도 그 아기와 엄마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노키즈존'은 우리나라의 모순을 대표하는 단어다


여기 '공공장소'와 '아기'와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공유하려 한다.
독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무렵, 시립도서관에서 하는 무료 강연에 참석한 적이 있다. 환경 문제에 관한 주제여서 다들 진지하게 듣는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뒤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기는 엄마가 계속 안고 있어야 할 만큼 너무 작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직 어린 아기였다. 엄마가 아기를 어르고 달랬지만, 아기는 계속 짜증을 내듯 울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소리가 나는 곳, 즉 아기와 엄마를 향해 뒤를 돌아봤다. '내가 그 소리가 좀 신경이 쓰인다'는, 무의식적이지만 분명한 무언의 바디 랭귀지였으리라. 그런데 나는 그만 충격을 받았다. 정말 나 말고는 아무도 아기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쳐다보지 조차 않았다. 힐끔힐끔은 했을 수 있지만, 내 눈에는 모두의 시선이 강연자에게 쏠려 있을 뿐이었다. 

'내가 실례되는 행동을 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 만큼 '놀랍도록 아무도 그 아기와 엄마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한국에 살면서 겪은 경험으로는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쳐다보는 것은 기본이요, 헛기침을 내야 '정상'이다. 게다가 이 정도로 울음이 길어지면 벌써 웅성웅성거리며 한두 마디씩 불평이 나왔을 상황이었다. "아~ 그냥 애 좀 데리고 나가서 달래지~"라든가, "애기 좀 어떻게 해봐요~"라든가 하는 멘트들이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그 공간에서 나는 어느새 강연의 내용을 잊고 그 상황을 관찰하게 되었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관찰해 봐도 강연자의 목소리 사이사이를 자꾸 아이의 투정과 울음이 치고 들어왔고, 누구도 아기 엄마에게 한 마디도 안 했다. 심지어 옆에 도서관 직원이 서있었는데도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이번엔 아기 엄마의 입장도 궁금해졌다. 

아기 엄마는 참 곤란할 것 같았다. 아기 엄마도 이 강연이 너무 듣고 싶어서 왔는데, 아이를 봐줄 사람은 없고,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고, 얼마나 답답할까? 하지만 내가 아기 엄마라면 남에게 피해 끼칠 까봐 두려워 이미 강연장 밖으로 나갔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엄마는 우는 아기를 달래면서도 끝까지 강연장에 남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유럽 간 이동하는 비행기를 탈 때도 아기 우는 소리를 자주 들었었다. 내가 타도 무서운 비행기를 탔으니 우는 아기를 백번 이해하면서도 나는 소리에 예민한 편이라 솔직히 듣기가 힘들었는데, 내 주위 사람들은 모두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당시 이런 분위기가 궁금해서 친분이 있는 독일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사람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Well, that's what baby does.(뭐, 아기들이 원래 그렇지 뭐.)"



그렇다. 아기는 원래 운다. 낯선 곳에 가서 울지 않으면 그게 더 걱정이 돼야 하는 존재가 아기다. 
좀 더 자란 어린이들을 생각해 보자. 어린이들은 원래 뛰어다니고 장난치며 커야 한다. 어린이가 너무 조용하고 말도 없이 어른스러운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닌가?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도 못하면서, 왜 저출산을 '문제'로 삼으며, 어떻게 출산을 장려하는 것일까? 경제적으로 아이를 키우기 힘든 사회인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아이라는 존재를 어릴 때부터 차별하고 아이답게 자랄 권리도 박탈당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노키즈존'이 허용되는 것 자체가 나라의 큰 모순이라고 본다.

물론 시민 의식이 참 별난 부모들, 불공정한 법, 이기적인 일부 사람들 등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엮여있어 풀기 어려운 문제인 것은 많다. 하지만 어른들의 잘못을 어째서 '노키즈존'이라는 단어와 차별을 공공연하게 들이대며 아이들이 문제인 것처럼 덮으려는 것일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무엇이든 그것은 어른들의 책임이지 아이들의 책임이 아니다. 언제까지 이 사회는 어른들의 잘못을 아이들의 탓으로 돌리려는 것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위기에 처한 도시들과 데이터 과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