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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Jan 22. 2024

조금 독특한 독일의 옛날식 집구조

그리고 책상에 대한 단상


오늘은 그 분이 오셨다. '방 뒤집어 엎기의 신'! 

마음 먹고 하려고 하면 잘 안되는데 갑자기 '삘(Feel)'을 받으면 두 팔 걷어붙이고 완전 몰입해서 무거운 가구도 번쩍번쩍 옮기고 이것저것 짐을 정리하고 반짝반짝 광을 내고 싶은 그런 날 말이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조금은 독특한 독일의 옛날식 집구조


아니 어쩌면 참아왔던 것이 터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글을 고쳐쓰다 깨달은 건데, 최근 갑자기 좁아진 내 공간에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아왔던 것 같다. 나는 지금 집에서 6년 넘게 혼자 살다가 작년 여름부터 룸메와 함께 살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옛날 독일집 구조로 만들어진 집이다. 옛날식 독일집이 무엇이냐면, 방이란 방에는 모두 벽이 쳐져있고 문이 달려있는 식이다. 천장도 아주 높은 것이 특징이다. 현관문을 열면 거실이 나오는 한국식 구조 대신, 이 집은 현관문을 열면 길다란 복도가 있다. 그러면 방, 부엌, 화장실 등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식이다. 원하면 문을 떼어내기는 하지만, 문이 달려있던 공간만큼 뚫려있기 때문에 한국 거실처럼 탁 트이는 느낌은 없다.



현관문을 열면 보이는 우리집 복도 (출처: 본인, 무단도용 금지)




사실 이게 옛날 독일식 집구조라는 것도, 예전에 잠깐 알고 지냈던 건축가 분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최근 양식의 집구조(거실 중심)는 미국의 영향인 듯 했다. 독일도 많은 집들이 미국식 거실 중심 구조로 지어지고 있지만, 오래된 건축물을 최대한 잘 유지하는 것도 독일의 특징이라 나처럼 이런 옛날식 구조로 된 집에 사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동안 거실로 써 온 공간도 말이 거실이지 문 달린 방이라서 그냥 쓰는 사람이 어떤 용도로 쓰는 가에 따라 그 쓰임이 결정되는 식이다. 내가 그 방을 침실로 쓰면 침실이고, 거실로 쓰면 거실인 식이다. 그리고 그 방을 룸메가 쓰게 되었다. 


물론 한국인인 나에게 이 집은 조금 특이하고, 특히 우리집은 리모델링이 덜 된 편이라 불편한 점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특이한 집이기 때문에 진짜로 독일에 사는 기분이 들어서 이 집을 좋아한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 집의 구조가 조금 애매해서 혼자 살기에는 좀 크고, 커플이 살기에 딱 맞고, 룸메와 살기에는 좀 꽉 찬다는 느낌이다. 



내가 그동안 맥시멀리즘을 지양하며 살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룸메를 받을 공간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는 해도 어쨌든 내가 6년 넘게 홀로 써오던 공간이었던지라, 갑자기 못 쓰게 되니 불편하긴 했다. 공용 공간도 반씩 나누고, 집안 곳곳 여기저기 예전보다 물건들이 더 꽉 차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예상하지 않은 바는 아니었기에 지금까지 별 생각없이 살았는데, 알게 모르게 이미 넓게 쓰던 '내 공간'이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많이 갑갑했었나 보다. 같이 살면서 부딪히는 습관의 영역이 아니라 공간의 영역에서 답답해 하고 있었다는 것이 스스로 의외였다. 한국에서 살 때 고시원 생활도 해봤고, 원룸 생활도 오래 했기 때문에 집이 좀 좁아진 들 잘 살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또 그렇지가 않나 보다. 무엇이든 바꾸고 싶다, 갑갑하다고 끙끙 속으로 앓다가 생각의 끝에 다다른 것이 바로 '책상'에 대한 의문이었다. 자리도 많이 차지하고 어질러지기 십상인 책상이 지금 내게 꼭 있어야 할까?






내가 책상 없이 살 수 있을까


지금 쓰는 책상은 전에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이 이사나가면서 내게 주고 간 책상이다. 딱히 예쁘지도 않고, 흠집도 많이 갔다. 아마 딱 봐도 팔리지는 않을 것 같고, 버리는 것도 돈이 들어서 나에게 넘긴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기능적으로는 문제 없고 버리기는 아까워서 지금까지 내가 써오고 있다.


책상은 원래 거실이나 작은 책장방을 오가며 두고 썼는데 룸메가 들어오면서 침실로 들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들어 방에서 책상을 없애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예 남을 줘버릴까?' 책상을 집에서 내보내는 상상도 해보았다. 집에 아예 책상이 없이 살아보는 것이다. 


살면서 책상 없이 살아본 적이 없던 나에게는 꽤 신선한 상상이었다. 방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그 좁은 고시원 방에 살 때에도 책상과 의자는 꼭 있었다. 그런데 어차피 지금 나는 맥북이나 아이패드를 쓰고, 책상 대신 흔들 의자나 침대에 앉아 일이나 공부를 해도 되니까, 책상이 꼭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일단 내가 책상을 빼고 싶다는 생각이 든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물리적인 공간을 넓히고 싶기도 하고, 내 방은 우풍이 너무 심하다. 잘 때는 이불을 덮고 있으니 별 상관이 없는데 낮에 의자에 앉아있으면 쌀쌀하다. 겨울철엔 실내 온도를 20-22도 사이를 유지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유지해도 우풍이 들어오니 추워서 자꾸 옷을 껴입게 된다. 그런데 책장 방은 크기는 아주 작지만 위치 상 방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방이 따뜻한 편이다. 내 방과 똑같은 온도여도 춥지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내 책상에 대한 몸의 기억이 '도파민'과 지나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회사를 다니는 게 아니다보니 나는 같은 책상에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취미(게임)도 하는데 그 중 가장 자극이 강한 것이 유튜브나 게임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 책상에 앉는 순간 '유튜브 보고 싶다', '게임하고 싶다'는 충동이 확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장소에 대한 몸의 기억이 도파민과 연결된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침대 바로 옆에 그런 '도파민 폭발 책상'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잠자기 직전까지 유튜브를 보기 쉽다. 그러다 취침 시간이 늦어지기 십상이다. 이 정도로 스스로 인지를 했으면 환경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다.



그래서 하루 정도 책상을 안쓰고 흔들 의자에서만 공부를 해봤는데, 역시 모든 것에는 다 목적과 쓰임이 있는 것... 흔들 의자에 너무 오래 앉아서 공부하는 것도 자세에 그다지 좋지는 않은 듯 했다. 그리고 흔들의자에 앉아서 노트북을 한다고 해도 일기를 쓰거나 할 때는 역시 앉아서 쓸 책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단은 책상을 잠시 내 방에서 내보내고 공용 공간인 책장 방으로 옮기기로 했다. 둘 다 거의 안쓰고 창고처럼 쓰던 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용 공간인 만큼 너무 내가 그 공간을 차지하는 듯한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 또 나도 환경의 변화를 주기 위해서 최소한의 물건만 그 곳으로 옮겼다. 책상, 조명, 모니터, 모니터 받침대, 충전 케이블. 딱 거기까지만. 




매우 단촐해진 책상. 어지러웠던 비포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쉽다. (출처: 본인)





평소에 자주 책상에 올려놓고 쓰던 자잘한 물건들 - 핸드 크림, 아이폰, 워치, 에어팟 충전기, 캘린더, 메모지, 노트, 책상용 쓰레기통, 장식품 - 등은 모두 내 방에 남겼다. 차라리 한동안은 책상을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할 때만 쓰는 '휴게 공간'으로 써보기로 했다. 공부나 일은 흔들 의자에서 시작하고, 자세가 너무 불편하면 책상에서 이어나가보는 방식으로, 똑같은 컴퓨터를 쓰더라도 목적에 따라 장소에 변화를 줘보기로 했다. 




그렇게 책상을 옮기려다보니 책장 방의 구조도 바꾸고, 책장에 있던 책들도 정리를 했다. 어지르고 치우기를 반복하다 이렇게 한번씩 집안 구조를 바꾸고 나면 기분이 좋다. 앞으로는 집에서도 할 일 스타트를 잘 끊고 더 오래 집중할 수 있도록 작업 환경과 관련해서 더 개선시킬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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