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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Jul 04. 2017

당신을 회사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종종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사람을 회사에서 만나지 않고, 
사적으로 알게 되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어떤 관계로 남아 있을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알게 된다.

학교를 다니던 때와는 그 유형도 범위도 엄청나게 달라진다.

생소하고 낯설기만한 그 곳에 마치 '빠앙' 소리를 내며 터진 샴페인 뚜껑이 휙 하고 날아가듯이 내던져진 채 인사를 하고 관계를 맺는다.


비슷한 마음으로 설레며 입사한 동기들, 이미 야망으로 가득 찬 눈빛을 반짝이며 열의 넘치는 동기들, 지친 얼굴의 선배들, 험상궂은 얼굴로 인사를 던지는 상사, 사회초년생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 사회 선배들의 상식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 더 특이한 사람, 등. 등. 등.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을 벗어나 연차가 쌓여갈수록 불편한 사람들이 생겼다. 불편해도 웃어야 하고, 인사해야 하는 사이. 지금까지 내가 모르고 자라왔던 나의 화, 분노, 상실감 등 온갖 감정을 겪었던 많은 사건들. 이전까지 살아왔던 내 생활 패턴에 엄청난 변화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런 관계들도 시간이 지나면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인연들이 된다. 지금 돌아보면 에너지를 쏟을 가치조차 없었던 관계들.

뒤통수를 맞는 듯한 일도 여러 번 겪는다. 그런 일들에서는 이런저런 소소한 배움들을 얻었다. 퇴사를 하게 해 준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말이다.



그런데 가끔 그런 순간들을 되돌아보다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돌아보면 모두가 비슷한 인생을 살아가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들인데,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왜 그렇게 친해지기가 어려웠는지.

저 사람들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친구, 좋은 배우자, 좋은 부모일 텐데 

우리가 회사에서 알게 되지 않았더라면

함께 일하지 않았더라면

함께 취미를 즐기거나 인생의 꿈을 나누는 사이였더라면

지금 우리들의 관계는 달라져 있을까? 







절친한 친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서로 미워하고, 상처 주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없이

'그래 그런 사람이 있었지, 그 사람은 이랬어'라고 그리워할 수도 있을까? 





회사에 다니면서 강렬한 소속감을 느낀 것만큼이나

회사를 나오면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의 거리감도 컸다.




회사에 다니면서는 일에 치여 동료 관계를 어떻게 우정의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사실 그것보다 어디까지 내 모습을 보여서 우정의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더 중요한 건 내가 그 사실을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이렇게 저렇게 지내는 동안 가까워진 사람들도 멀어진 사람들도 생겨났다.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게다가 그중에 함께 일하게 된다는 건,

사실은 엄청난 인연이다.



그런데 너무 각박한 세상살이에 치여서 우리는 그 인연의 소중함을 느끼기보다는

그중에 한 둘 섞인 악연에 너무 많이 집착해버리고 만다. 



'또라이 질량 불변의 법칙'에 따라 어디든 답답하거나 화나게 하거나 골치 아픈 사람이 꼭 있지만,

사실 그 또라이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서 더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는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왜 어려운 걸까?






한 번쯤은 상대와 나의 공식적인 관계를 벗어버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한 존재로서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회사에선 큰소리치지만 사실은 집에서 기를 못 펴는 상사

무뚝뚝해서 주위를 신경 쓰지 않는 듯해도 조용히 팀을 챙기는 선배

천상 범생이 같은 이미지였는데 알고 보니 학창 시절 꽤 놀았던 후배



구름이 강풍을 불어가며 나그네의 옷을 벗기긴커녕 더 움켜쥐게 만든 것처럼

상대를 향한 비난과 원망은 그 사람을 바꾸기는커녕 관계만 악화되어 갈 뿐이다. 

내가 햇님 같은 마음으로 상대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었다면, 

지금 그 사람과 나의 관계는 바뀌어 있었을까.



일이 아니었다면,

회사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한 관계로 남아있거나 추억할 수 있는 사이였을까.





왠지 모를 아쉬움과 물음표가 둥둥 떠다니는 밤이다.





Ps. 글을 다 쓰고 브런치에서 제공하는 맞춤법 검사로 문법을 체크하는데, '또라이'라는 단어가 틀렸다고 수정한다길래 수정하라고 했더니, '미친놈'이라고 수정되서 '미친놈 질량보존의 법칙'이라고 나갈 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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