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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Aug 05. 2017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8월 4일의 3분 수다 4/7



어제의 주제였던 '나는 왜 사는가'에서 조금 더 생각을 길게 늘어뜨려 보기로 했다. 

왜 사는지에 대해서는 '살아있으니 살지요'라고 웃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질문이 끝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로 나를 집요하게 쫓아다닌 질문.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의 중요성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사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어떻게'이다. 

'왜'의 답을 찾는다고 해도, '어떻게'라는 세 글자 앞에서 무너진 경험은 수도 없이 많이 겪었다. 

그러다 최근에 아래와 같은 구절을 보게 되었다. 





"여러 중생들의 고통을 제거해주는 것을 대자라고 하고
한량없는 즐거움을 주는 것을 대비라고 한다."




나는 무교이지만, 딱히 종교를 크게 가리지 않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건 배우자 주의인데, 위 구절은 사용된 단어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 불경의 한 구절이다.

사실 대자가 무엇이고, 대비가 무엇인지는 나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고통을 제거하는 것', '한량없는 즐거움을 주는 것'



이 두 가지가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두 가지 큰 명확한 지침으로 다가왔다. 

내가 이토록 삶에 집착한 까닭은 내 심적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서였고,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를 성장시키는 까닭은 한량없이 즐겁게 살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올바로 세울 수 있을 때에는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사람들의 고통도 없애주고, 한량없는 즐거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 그것이 결국엔 행복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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