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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Aug 06. 2017

함부르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

8월 5일의 3분 수다 5/7



어제는 함부르크의 큰 축제 중 하나인 'Pride'  퍼레이드에 다녀왔다. 

요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고민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 무리를 해서 다녀오느라 집에 와서는 기절 모드. 

글을 하루 늦게 쓰게 되었지만, 어제 어떤 글을 쓸지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을 해두었기에 늦게나마 끄적인다. 






나는 지하철역과 집을 오가는 길에 두 가지 길을 선택할 수 있는데, 하나는 차들이 달리는 메인 길이고,

하나는 초등학교 앞으로 이어진 조그만 오솔길이다. 

오솔길로 가면 조금 돌아가게 되는 편이라 집을 나설 때는 약속 시간을 지키려고 메인 길로 가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대체적으로 오솔길을 선택한다.

어제도 퍼레이드 구경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오솔길을 걸었다.

그 길 오른쪽 담장 너머에는 나무가 듬성듬성 자라나 있다. 늘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라 무심결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구경을 하다가 한 나무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담장 가까이 다가가 한참을 멍하니 그 나무를 바라봤다. '왜 이 나무를 이제야 본 거지?'라는 생각이 들만큼 특이한 모습의 나무였다. 




윗부분만 봤을 때는 다른 나무들과 똑같이 위로 곧게 자라는 것처럼 보였던 이 나무는 사실 아래가 거의 부러져 있었다. 정말 어떻게 살아났을까 싶을 정도로 땅위로 솟아난 밑동 부분이 90도로 꺾여 몸통이 거의 땅 위에 누워 있었고, 그 몸뚱이 위로 자라나 있던 두 가닥 정도의 커다랗고 굵은 가지가 푸른 잎을 잃은 채 땅을 지탱하고, 그 반대 방향으로, 즉 하늘로 높이 솟은 다른 나뭇가지는 여리여리한 초록잎들을 매달고 그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 하고 작은 탄성이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다.

무엇이 저 나무를 쓰러지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 곳은 사람에 의해서 관리되는 구역이 아니었기에  저 나무를 다시 살린 것이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사람의 손이 닿았다면 뭔가 일으키기 위한 밧줄을 묶거나 수액 같은 게 꽂아져 있었겠지만, 이 나무는 정말 오롯이 스스로 이겨내고 회복해낸 흔적만이 역력했다. 






그러면서 다시 내가 엊그제 덤덤하게 써 내려갔던 '살아있기 때문에 산다'라고 적은 글이 생각났다.

아무런 미사여구도 달지 않았던 이 문장이, 사실은 엄청난 힘을 가진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고귀하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잘하고 있는 거라고. 





많은 책들을 통해서 읽고,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들어와서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그 진실을 실제로 눈 앞에 마주하는 순간은 늘 경이롭다.





오늘에야 만난, 

꺾이고 쓰러짐에 굴하지 않고 기어이 살아낸 이 나무가,

내가 함부르크에서 본 중 가장 아름다운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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