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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Nov 01. 2017

나를 사랑하게 되기까지

그래서 너를 사랑할 수 있게도 되기를


"주로 어떤 책 많이 읽어요?"



우리가 살면서 흔히 받는 상투적인 질문 중에 하나.

질문이 상투적이든 신박한 것이든, 질문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일부분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다.

나는 두루두루 교양이 넓은 사람은 아니라서 주로 한 장르의 책만 읽는다. 그래서 내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자기계발서?




자기계발서를 읽기 시작한 건 고3 무렵부터 였던 것 같다.

처음에는 딸의 돌직구 화법이 우려된 어머니가 화술에 관련된 책을 사다주신 걸로 시작한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후에 몇 가지 책은 스스로 사서 읽기도 했다.

지식은 대학교 전공 서적에서 얻는 것을 다 집어넣기도 벅찼고, 내가 원하는 건 삶을 사는 지혜나 어떻게 하면 성공하거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었던 것 같다. (그마저도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뒤처질 것이 두려워 남들이 읽는 책을 집어서 따라 읽은 것에 불과했다는 것은 나이가 더 들고나서 깨달았다.)

어쨌든, 얼른 성장해서, 이 지독히도 암울한 현실에서 빨리 빠져나가서, 나도 남들처럼 행복해지고 싶었다.



이상했다.

기원전 사람들이나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나, 한 명 한 명에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 24시간일 텐데. 스무 살의 나에게는 마치 그 반에 반만 주어진 것처럼 늘 시간에 쫓기듯 살아왔다. 소설이나 시를 읽으면서 나를 탐구할 시간이 없었다. 현실을 똑바로 마주할 자신도 없었다. 읽으면 바로 답이 나올 것 같은 책을 찾아서 집어 들고 학창 시절을 쪼갠 시간을 그 책들에 쏟아부었다.



몇 년이 지났다.

아무리 자기계발서를 읽어도 변한 건 없었다. 이쯤 되니 이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자책까진 아니었지만 자괴감 정도는 들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자기계발서를 읽을수록 더 나아져야 할 텐데, 나의 현실과 자기 계발서 작가들의 현실 간의 차이를 더 또렷이 인식하게 될 뿐 무력해지기만 했다. 시간이 갈수록 나 자신이 더 작아질 뿐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하는 말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또 달랐다. 어떤 책들은 현대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가로울 여유가 없다며 빨리 달리라고, 더 똑똑해져야 한다고, 채찍질을 하고, 어떤 책들은 물질적인 성취는 결국엔 다 부질없다며 정신적인 수양을 권유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을 하고, 열심히 일을 했다. 휘청휘청 거리는 마음을 겨우 달래며 잘 닦여진 포장도로 위에 올려놓기에 급급했다. 기분은 늘 '연애 상태'에 따라 달라졌다. 그 위에 그려진 화살표를 이유도 모른 채 따라갔다. 그리고 그늘도 없이 뙤약볕 아래 잔뜩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쉴 새 없이 걷다가 그 뜨거운 열기에 나는 그만 녹아내리고 말았다.



몇 번씩 그렇게 녹아내릴 때마다 나는 근처의 작은 나무 그늘 아래에 숨어서 책을 더듬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해서인지, 나는 이제 나에게 맞는 책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새로운 책들을 읽기보다는 몇 권 되지 않는 책들을 다시 꺼내서 읽고 또 읽었다.




이 책을 내 삶으로 흡수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책을 덮고 돌아서면 끝나버리는 깨달음이 아니라, 정말로 내 삶으로 흡수해서 나도 변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평생을 우울하게 살 것만 같았던 그 암울한 시기를 나는 지금도 절절하게 기억한다.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용기조차 없었던 그 시절. 그렇게 그 책들을 더듬은 종착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게는 새로운 출발점이 된 그 지점은 바로 '나를 투명하게 바라보고 사랑하는 일'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의 삶은 조금씩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전혀 몰랐던 일은 아니었다. 책에서도, 미디어에서도 나를 사랑하는 일이, 자존감을 올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듣고 아는 것'과 알고 있던 것이라도 '스스로 깨닫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도 그때쯤 깨닫게 되었다.





지금의 나를 투명하게 바라보고 사랑할 것




사랑 - 나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  시작된 사랑은 끓듯이 아팠다.
관계 - 나를 온전히 존중하지 못한  맺어진 관계에서 긁히는 상처가 늘어만 갔다.
 -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른  성실과 책임감만 가지고 하는 일은 나를 소모하는 것일 뿐이었다.
 - 내가 무엇을 갖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상태에서 돈을 버는    하나였다. 다른 이의 욕망의 꼭두각시가 되거나 아니면  욕망의 꼭두각시가 되거나. (슬프게도 나는 전자였다.)
 - 결국 모든  삶의 일부분. 위에 언급한 하나하나가 나아질수록  삶의 색깔이 점차 바뀌어 간다.




모두들 그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존감에 관한 책이나 자기애에 관한 책들도 많이 있었다. SNS를 하는 것만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과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나 명언들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잘 되지 않았다. 말이 쉽지 이게 '나를 사랑하세요' 한다고 해서 '네~'하고 사랑해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10년을 넘게 속앓이를 하다가 나는 그렇게 바라던 '서른'이 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를 사랑한다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하나씩 남겨보려고 한다.














글: 노이

커버 사진: Photo by Japheth Mas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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