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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Dec 04. 2017

혼자 걸었던 겨울 그 길, 그 카페

노트북도, 핸드폰도, 동행인도 없이 맨몸으로 산책하기 

평소에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끊임없이 찾는 나지만, 두세 달에 한 번씩은 온라인을 차단하는 시간을 가진다. 

실리콘밸리의 첨단 IT 기술을 이끄는 유명한 사업가들도 일요일이 되면 온라인을 차단하고 오프라인의 삶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이야기를 얼핏 듣고 나서부터일까.


이 방법은 너무나도 많은 정보들로 지친 내 머리를 쉬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라는 어린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나서는 산책 같기도 하다.

철부지 어린 강아지를 풀어놓으면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킁킁거리고 냄새를 맡고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길가에 아무렇게나 나서서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내 생각이 이리저리 사방을 정신없이 누비고 다닌다.

그런 내 생각의 흔적을 기록해 두면 참으로 재밌다. 


오늘은 그중 하루의 흔적을 꺼내보려고 한다.

그 날은 작년 겨울이었다. 

날이 좋으면야 바깥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들어가면 되지만, 겨울엔 카페가 최고다.

요즘은 카페에 혼자 온 사람을 찾는 일이 그다지 어려울 건 없지만, 다들 공부를 하거나 노트북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현대인들에게 '혼자 카페에 가는 일'은 쉼이 아니라 또 하나의 일처럼 되어버렸다.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나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돼!'라거나 '다들 열심히 하는데 나만 놀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제는 뭔가 이런 분위기가 당연해져 버린 이 사회가 조금 슬퍼졌다.

한 번쯤은 당신도 펜과 빈 노트만 들고 밖으로 나서보기를 바라며 이 글을 공유한다.






#위시리스트 하나 추가요


어쩌다 가게라는 곳에 드디어 갔다.

유명한 모양인데 가까운데도 정작 한 번도 와보질 못했다. 

날이 추워서인지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편집샵은 열려 있었다. 편집샵이라기보다 서점에 가까운 곳이었다. 예술 관련 책들이 많고, 뭔가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집념이 가득 담겨있을 것만 같은 작은 엽서에서부터 달력, 다이어리 등이 팔리고 있었다. 엽서를 보면서는 나도 엽서 하나쯤은 만들어서 팔아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 지 오래되었어도 아직 단 한 번도 시도해 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어김없이 마주치는 두려움


좀 더 깊이 있는 책들과 작품들을 마주하면서부터는 두려움이 앞섰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한 이후부터, 다른 이들의 글을 보지 않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이후에는 그것에 깊이 파고드는 것이 두려운 것 같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 나의 능력이 이미 내 안에서부터 비교 분석 난도질당하여 '나 따위가 무슨'이라는 자책을 해버릴 것이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경쟁심리인지 반감이 들기도 하고, 아무튼 다른 사람의 비슷한 작업을 들여다보는 일이 싫어진다. 영향을 받을까 두렵기도 하고, 복잡스럽다. 

(ROUND라는 잡지에서는 부담스럽지 않은 글을 봤다. 콤팩트 카메라만 들고 다니는 사진작가. 사진은 카메라가 아니라 눈으로 찍는 것이다. 멋있었다.)



#이웃 접선 실패 


호두 살롱이 열었는지 보려고 지하로 내려갔다. 호두 살롱은 닫혀 있었다. (호두 살롱님은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시는 예술가님인데 우연히 같은 동네 주민인 걸 알게 되었지만 한 번도 뵌 적은 없다.) 아쉬우면서도 내심 다행이었다. 소심했던 나는 인사까지 나눌 자신은 없었다. 그 옆에 패브릭 공방 같은 곳이 열려있었다. 묵묵히 혼자서 무언가를 만들고 계셨다. 오늘 냐냐가 이야기해준 '예술은 다 노가다야'라는 말이 떠올랐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그만큼 힘들다는 말일 게다. 나에게는 자신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예술가적 마인드가 전혀 없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예술적인 사람도, 비예술적인 사람도 아니다. 그냥 보통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세상에서, 이 사회 속에서 내 위치 혹은 내 포지션은 어디쯤일까 궁금해졌다. 



#일단 카페로


밖에 오래 있기가 추워졌다. 카페 부부 쪽으로 향하는 내내 '두렵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맴돌았다. 예술을 하겠다고 굳이 마음먹은 것도 아닌데 왜 두려운지조차 모르겠다. 그냥 보고 감탄하면 되는 건데, 왜 두려운지 모르겠다. 뭐지, 왜지. 두렵고 내가 작게 느껴진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왜일까. 나는 그들을 동경하고 있는 걸까. 계속해서 그들이 어떻게 돈을 벌까, 얼마큼 돈을 벌까 가 궁금하다. 나는 예술을 하고 싶은 걸까? 그래서 두려운 걸까? 그냥 관심이 없던가... 관심이 없긴 하다. 관심이 많은 건 아닌데 한 번씩 예술적인 것들을 보면 이런 복잡한 마음이 든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경로 이탈, 몸도 마음도


카페 부부는 평소 자주 가던 곳이라 근처의 다른 카페로 갔다. 가게가 바뀌었다. 차와 디저트 전문 카페였는데 커피를 전문으로 하는 카페로 바뀌었다. 언제쯤 차를 마스터한 카페가 대중화될까. 그래, 커피 같은 건 사람들이 아무리 관심이 있어도 나는 끄떡도 않을 키워드다. 내가 관심 있어 하는 키워드 중 대중의 관심사와 맞는 키워드가 몇 개나 될지 세어보고 싶다. 블로그를 하는 일에 벌써부터 자신감이 줄어든다.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커필라쏘피 


커필라쏘피. 내가 앉아 있는 카페의 이름이다.

커피+철학을 합친 이름이겠지. 

이름을 잘 지은 것 같으면서도 안 이쁘다. 이름이 안 이쁘다. 전에도 생각했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메뉴가 좀 특이한 것 같다. 생크림을 얹은 에스프레소를 파는 모양이다. 커피에 관심을 끊은 이후로 나는 다른 메뉴는 안 보고 차 메뉴만 본다. 그래서 그런 메뉴가 있다는 것도 차를 마시다가 둘러보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카페에 혼자 가는 일은 이제 나에게 낯선 일은 아니지만, 늘 무언가를 '할 거리'를 가지고 카페에 왔는데, 핸드폰도 수첩도 노트북도 책도 아무것도 없이 정말 차만 마시러 온 건 처음인 것 같다. 동행인도 없이 말이다. 손에 아무것도 쥐어있지 않으니, 뇌가 활발해지는 느낌이다. 내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을 마치 책을 읽듯이 읽어 내려간다. 이것저것 재밌는 생각이 많이 든다.



#창밖 구경


어두워지니 카페 창가에 카페 내부의 모습과 바깥의 풍경이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겹쳐 보였다. 

다른 차원이 뭉개져있으면 이런 느낌 일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카페 안과 밖은 단 한 발자국 차이인데도 전혀 다른 세상 같다.

나이 든 아저씨가 SOUVIR 비슷한 단어가 적힌 조그만 종이 가방을 손목에 걸치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갔다. 또 다른 나이 든 아저씨가 패딩을 입고 핫도그를 맛있게 한 입 먹으면서 내 앞을 지나갔다. 

내 테이블 위에 놓인 화분에 건너편 꽃집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웃끼리 돕고 살아야죠' 

서울 한복판에서 이웃 간의 정을 느끼다니, 왠지 아련한 추억 같은 느낌이다.

바로 맞은편에 또 다른 카페가 있다. 

저곳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그냥 정반대에 있을 뿐인데, 나에겐 갈 마음이 들지 않는다. 신기하다.

그 옆의 꽃집에조차 나는 가보았는데, 저 카페는 이상하게도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기승전 인생


나는 정말 뭘 하고 싶은 걸까? 

아직도 퀘스쳔이다. 

이 질문이 나를 힘들게 할 정도는 아니고, 건강한 질문이긴 한데, 그런데 나는 그냥 이런 생각이 자꾸 든다. 

빨리 조용히 삶을 마무리하면 좋겠다고. 

세상에서 내가 꼭 살아남아야 할 이유나, 사명감 같은 것을 찾지 못하겠다. 

내가 아니어도 다른 이들이 잘하고 있다는 생각. 

나는 그저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냥 그런 하루들을 끄적거리다가 편안하게 눈감고 싶다.






이렇게 생각의 고삐를 풀어놓으면 의외로 혼자서 나가노는 일도 꽤 재미가 있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나'라는 사람의 인생의 모습이 조금씩 뚜렷해진다.

아무것도 없어도 나에겐 내가 있다.

3년 전까지는 나는 '나'로 사는 일이 너무나 힘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는 '나'로 사는 일이 너무나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를 발견하게 된 건, 역시 이런 나와의 데이트를 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어도 나는 나에게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게 되었고, 

똑같은 생각으로 침울해져도 이제는 잘 다독여 나를 다시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자꾸 뒷걸음질치고 있어서 불안한 날들이 인생에 더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 걷든, 뒤로 걷든, 또 어느 방향으로 걷든, 

걷거나 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게 되었다.

여전히 인생의 막막함이 가끔씩 턱밑 언저리까지 차올라오지만, 

그런 나를 다정하게 안아줄 수 있을만큼 한 뼘 자란 어른이가 되었다.











글: 노이

커버 사진: Photo by gdtograph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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