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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Dec 23. 2017

나의 안부를 물어주세요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긴 잠에서 깨어나 아침에 눈을 뜬다. 내가 제일 규칙적으로 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일들 중에 하나다. 요즘은 나의 아침에 관심이 많아졌다. 어느샌가 무의식중에 내 아침의 반복되는 일상이 머릿속에 반복돼서 그려진다. 최근에는 늦게 자든 일찍 자든 항상 정해진 시간에 일어난다. 그리고 일어나기 2시간쯤 전에 깼다가 다시 2시간을 더 자는 것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중간에 깬다고 해도 많이 피곤한 건 아니다. 정작 나를, 정확히는 내 머리를 피곤하게 하는 건 바로 내가 일어나자마자 하는 생각들이다. 



우선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가능하면 침대에서 멀리 두고 일어나자마자 보는 습관을 고치려고도 해봤지만, 시차 때문에 한국에서 오는 연락을 조금만 늦게 확인해도 답이 많이 늦어질까 봐 일어나자마자 확인을 한다. (는 건 아마도 핑계이지만.) 별로 연락이 와있지 않아도 메일을 확인하거나 SNS를 확인한다. 사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뭔가 하는 게 없어서 확인할만한 것도 별로 없다. 



이불 밖은 추우니 나가기가 싫다. 내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있다면, 잠들기 직전과 일어난 직후다. 그중 하나인 아침에 갓 일어난 황금 같은 이 시간을 금방 끝내버리기가 아쉬워서 담요 아래 몸을 더 미적거려 본다. 더 이상 볼 게 없어진 스마트폰을 다시 내려놓고 나면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회사를 다니고 일을 할 때는 일단 시간을 확인한 후에 언제 씻고 아침을 먹고 일을 시작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산하기 바빴다. 하지만 일을 그만두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파고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생각들은 항상 비슷하다. 바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다. 그리고 대부분 걱정거리들이다.



내가 누군가를 서운하게 했던 일이라던가, 아니면 반대로 내가 서운했던 일이라던가, 아니면 점점 집에 칩거하는 게 좋아져서 걱정인 내 인간관계라던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모두 나에 관련된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뿔싸. 



마음의 교묘한 연막탄에 가려서 함정에 빠진 기분이었다. 나는 주인공으로 내 인생을 살고 있는데, 나로서 시작해야 하는 하루의 시작을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생각을 하느라, 그것도 걱정을 하느라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머릿 속에 먹구름이 끼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뭐 엄청난 생각인 것 같아도 사실 냉정하게 앞에 두고 바라보면 쓸데없는 걱정들. 그러고 나면 정작 하루 중에 진짜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나는 내가 잘 지내는지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 관심을 가지기에 가장 적절한 순간이 바로 일어난 직후가 아닐까? 이 시간만큼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다. 그것이 5분 미만의 짧은 시간이든, 1시간이 되는 시간이든 말이다. 당장 자고 일어난 사람이 화장실을 가는 걸 아무도 뭐라 하거나 막지 않듯이 그처럼 당연하게 나에게 안부를 묻는 시간을 눈을 뜨자마자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내가 잠을 잘 잤는지, 
오늘 내 컨디션은 어떤지,
오늘 내 기분은 어떤지,
오늘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오늘 나에게 뭔가 부족한 건 없는지.




마치 수년 전 작은 고슴도치 한 마리를 키웠을 때처럼 말이다. 

나는 거의 5년간 매일매일 눈을 뜨자마자 고슴도치가 잘 살아있는지, 아픈 데는 없고 건강한지 확인하고, 아침 인사를 건네고, 쓰다듬어 주고, 화장실을 청소해주고, 물도 주고 밥도 주었다. 매일매일 빠지지 않았다. 왜냐면 거기엔 나와 그 아이밖에 없었으니까. 내가 하지 않으면, 그 아이는 더러운 집에서 배고파하며 살아야 했을 테니까. 그때는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막상 보람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자랑스러워 해도 될만한 일이다. 하나의 생명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돌본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기본적으로 '나'라는 생명을 돌보고 키우고 있다. 성인이 되고 나면 그걸 할 수 있는 사람도 온전히 나자신 밖에 없다.

그렇다.



나는 '나'라는 작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거다. 


'자신을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그래 그래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게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두리뭉실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다. 그래서 조금씩 그 실천편을 스스로 만들어보려고 하다 보니 하나씩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늘 얻은 배움은 '일어나자마자 나에게 안부를 묻는 시간 가지기'.




만약 내가 결혼한 사람이라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잠에서 깬다면 서로의 안부를 물어봐주는 것이 더 낭만적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더' 행복한 일일 뿐이지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즉, 일어나자마자 나의 안부를 묻는 사람이 있으면 더 좋은 일이지만, 없다고 불행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안부를 물어봐주는 것 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가득 차고 풍요로운 상태가 된다. 다른 사람이 내 안부를 묻지 않아도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안부를 묻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고 나서야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부를 더 이상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물을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상상하기가 좀 어렵다. 하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을 떠올리고 그 사람에게 해주는 것을 나에게 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윤곽이 또렷해질 것이다. 사랑하는 애인이든, 부모님이든, 자식이든, 반려 동물이든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에게 안부를 묻고 관심을 가질 때 하는 행동과 말을 나에게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한 가지 더 배웠다. 









글: 노이

커버 사진: Photo by Linh Nguye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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