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보단 셀프
모든 인간의 불행은 자신의 방에 혼자 앉아 있지 못할 때 생긴다.
블레즈 파스칼
불안은 파도와 같다. 아무 일 없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마음은 항상 일렁거린다. 피할 수 없는 파도를 즐기기 위해 튜브도 띄우고 제트스키도 타보지만 순간의 재미일 뿐 마음 한구석은 계속 불편하다. 특히 혼자 있을 때면 불편함을 참기가 힘들다. 울렁거리는 파도 속에서는 누워 있으면 제대로 쉬는 것 같지 않고 고민이 없는데도 가슴이 답답하고 묵직하다. 불안은 증상이 있으나 ‘이것은 불안이 분명하다.’라고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유가 없고 형체도 없기 때문이다. 자기 몸이 부서질 때까지 일하는 사람, 필요이상으로 많이 먹는 사람, 자기 관리에 목숨 거는 사람,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뭔가를 계속하는 사람, 해야 할 말을 못 하는 사람, 과도하게 친절한 사람 등 불안을 덮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불필요한 행동을 한다. 이런 과잉 행동은 불안을 해결하려는 방어기제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방어기제를 쓰지 않는 사람은 없으나 파도를 그대로 두고 그 위에 피난처를 짓는 것이므로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오히려 피난처로 인해 더 큰 부작용들을 만든다. 피난처를 견고하게 지을수록 그 속에서만 편안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불안은 해결되지 않은 채 불필요한 말과 행동만 잔뜩 만들어 놓은 꼴이다.
불안은 의외로 간단한 해결방법이 있다. 불안의 정의는 ‘실체 없이 막연히 나타나는 불쾌한 정서적 상태’을 말한다. 반대로 말해서 실체를 만들면 불안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불안의 실체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알아보자. 꼬인 부분을 하나씩 찾아간다는 의미에서 ‘실타래 풀기’라고 하겠다. 실타래 풀기는 적극적인 명상과 비슷한 방법이다. 적극적 명상(Active imagination)은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이 제안한 개념으로 내면에 존재하는 무의식적인 이미지를 외적으로 시각화하고 탐구하는 과정을 말한다. 칼 융의 적극적 명상은 꿈이나 추상적 이미지를 해석해 가며 무의식을 외면화시키는 방법으로 왜곡이나 부정확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와 함께 해나가야 한다. 반면에 실타래 풀기는 사실만을 대상으로 한다. 사실 확인을 해나가는 방법은 스스로도 할 수 있어 왜곡을 적게 하면서 불안이 어디서 오는지 찾아본다. 먼저 불안함이 느껴질 때나 가만히 있기 어려울 때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이나 감정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무엇 때문에 두려운가?’ ‘그것을 받아 들일수 있나?’라고 두 가지 질문을 해본다.
질문 예시
무엇 때문에 두려운가? 돈이 없을까 봐 두렵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돈이 없으면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돈 버느라 힘들게 살 것 같다.
돈이 없는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요.
언제 불안한가? 운전만 하면 불안하다.
왜 불안한가? 사고가 날 것 같다.
사고가 난 상황을 나는 받아들일 수 있나? 아니요.
불안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 봐 두렵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세상에 나를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이해 못 받고 사랑 못 받는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니요.
불안의 시작점이 보이는가. '아니요'라는 지점이 엉킨 실타래가 풀려가다가 꽁꽁 묶인 지점이다. 불안을 기반으로 한 두려움은 미래에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이 생길까 봐 미리 가지는 감정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만은 피하고 싶은 일들이 누구나 있다. 망신당하는 일, 초라해지는 일, 사랑받지 못하는 상황, 다치는 일 등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해진다. 싫어하는 일을 겪게 될까 봐 불안이 생기고 그 일만은 막기 위해 노력하면서 산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싫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다. 우리는 이런 고통을 한 번은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은 더 생각해봐야 한다. 실타래를 푸는 과정에서 과거에 왕따를 겪어서, 부모가 제대로 돌봐주지 않아서 자존감이 낮아서, 불안정애착이라서 이런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란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실타래를 어떻게 풀지를 생각하는데 에너지를 쓰는 편이 현명하다.
두 발을 땅에 딛고 고통과 직면하라.
그러면 고통이 놀라 뒤로 물러설 것이다.
세네카
매듭이 꽁꽁 묶인 지점에서 우리는 대부분 회피를 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상상은 ‘에이 설마 나는 아니겠지.’ ‘나는 잘될 거야.’하면서 곧 생각을 닫아버린다. 매일 떨고 있는 마음을 붙잡고 무턱대고 ‘자신을 사랑하세요, 삶을 긍정하세요’라는 막연한 주문은 오히려 무의식에서 거부감을 만든다. 당신이 회피하고 싶은 그 생각을 따라가 보자. 성공의 상상을 하는 것보다 나의 공포 영화를 따라가 보면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직위, 돈, 사람, 건강 등 노력과 욕심으로 일궈놓은 피난처가 모두 없어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두렵지 않을 수 있는가. 그것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단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도 그곳은 낭떠러지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끔찍한 상황을 받아 들 일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예방주사를 맞아서 면역력을 키우듯이 그 상황에 대해서 ‘현실적 상상’을 하면서 적응해 나간다. ‘현실적 상상’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현실에서 대처하는 방법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불안의 매듭을 찾아서 푸는 방법까지 생각해 놓으면 도토리를 잔뜩 모아놓은 다람쥐처럼 마음이 든든해진다.
아까 예시에서 ‘아니요’라고 한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돈이 없는 자신에 대한 ‘현실적 상상’을 해본다. 돈이 없어서 비참한 모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돈이 없어도 괜찮은 현실적 방법을 생각해 본다. 노령연금으로만 사는 방법, 자급자족해서 사는 방법 등을 모은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좀 멈췄다가 시간을 가지고 서서히 다가간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꼭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겠구나’라는 생각만 들어도 성공이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그렇게 돈이 많이 필요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김환기, 박서보와 같은 이름난 화가들도 돈이 없어서 어려운 시기를 많이 겪었다. 수입이 꽤 들어오던 때도 있었다. 이럴 때고 저럴 때고 그들은 그림을 그렸을 것 같다. 명품에 스포츠카가 있어도 돈 쓰는 시간보다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사고가 나거나 병에 걸린 나 자신을 받아들여보자. 병에 걸려 죽어가는 자신보다 가족에게 끼칠 폐가 더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조심하는 건 괜찮지만 과도하게 되면 병이 걸리기도 전에 삶이 피곤해지고 오히려 주변을 부담스럽게 한다. 알다시피 사고나 병은 노력한다고 완벽하게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통제할 수 없는 세상과 가족들의 운명까지 짊어지진 말자. 아픈 나를 보면서 가족들이 무엇을 생각할지는 나는 알 수 없다.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나로 족하다.
공포영화를 보면 무언가 나타날듯한 음산한 음악과 분위기가 실제 귀신이 나타났을 때보다 더 공포를 준다. 인간은 상상만으로 실제 모습보다 더한 불안을 스스로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실체를 만들고 내가 대처할 수 있다는 걸 아는 통제감만으로도 불안은 많이 가라앉는다. 방법이 있다는 게 한 번에 믿기지 않으면 여러 번 현실적 상상을 하여 시뮬레이션 해보길 바란다. 당신은 언제나 생각보다 안전하고 어느 때나 방법은 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