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에게 희망이 있을까요?

성냥팔이 소녀는 네 번째 성냥불을 켜는데

by 민보우

"할머니!"

환한 성냥 불꽃 속에서 웃으며 서있는 할머니를 보자 소녀는 소리쳤어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자 소녀는 마음이 벅차올랐어요.

할머니가 사라질세라 소녀는 성냥 꾸러미를 모두 밝혔어요.

그러자 더 선명한 모습으로 소녀에게 다가왔어요.

할머니는 천천히 다가와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할머니, 저를 데려가 주세요!"

소녀는 할머니가 내민 손을 잡았어요.

"아, 따뜻하다."

평소에 소녀를 품에 안아주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많이 힘들었니?"

할머니는 팔을 뻗어 소녀를 품에 꼭 안아주었어요.

성냥 불빛처럼 따스한 할머니의 품에 안겨 소녀는 서러운 눈물을 쏟아냈어요.

"할머니, 저에겐 신발도 없고요. 성냥도 없고요. 이젠 아무것도 없어요."

얼마가 지났을까.

소녀는 울음을 그치고 할머니를 바라보았어요.

분명히 성냥이 다 꺼지고 없는데 할머니의 모습은 그대로 있었어요.

환한 불빛만 없어지고요.

소녀는 다시 한번 할머니의 손을 잡아보았어요.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그대로 느껴졌어요.


"아직 크리스마스는 끝나지 않았단다."

할머니는 살짝 웃어 보이며 소녀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걸어갔어요.

그곳은 작은 타운하우스의 작은 문 앞이었어요.

"들어오렴."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방 안은 낡은 침대와 탁자뿐인 공간이었어요.

바닥에는 러그가 깔려있었고 침대에는 연한 코발트블루의 이불이 폭신한 느낌이 주었지요.


"자, 파티를 시작할까."

식탁 위에는 루브뢰(호밀빵)과 버터 그리고 감자 수프가 나무 그릇에 놓여있었어요.

며칠 째 음식을 구경도 못한 소녀에겐 비쩍 마른 빵 조각과 식어버린 수프가 구운 거위 요리만큼 맛있게 느껴졌어요.

할머니는 흐뭇한 표정으로 소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할머니 이제 안 가시는 거예요?"

허기를 채운 소녀는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말을 꺼냈어요.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우와, 정말 기뻐요!"

소녀의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어리둥절했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기쁨이었어요.


할머니는 창문가에 놓여있는 나뭇가지 하나를 소녀에게 보여주었어요.

"이게 우리의 크리스마스트리란다."

화려한 장식도 타오르는 촛불도 반짝이는 별도 없는 그냥 나뭇가지였어요.

"신기하게도 이 겨울에 새싹이 돋았더구나."

할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자세히 보니 정말 나뭇가지에 새싹이 볼록 솟아올라 있었어요.

할머니는 다시 소녀를 꼭 안아주었어요.

"좋은 음식도 멋진 트리도 없는 크리스마스구나."

할머니는 소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어요.

"아니에요, 할머니. 믿을 수 없는 선물이에요."

소녀는 다시 눈물을 글썽였어요.


소녀는 어제까지도 짚으로 막아도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곳에서

이불도 없이 웅크린 채로 빈대와 잠을 잤어요.

한밤중에야 돌아오는 아버지는 들어서자마자 자는 소녀를 걷어차 오늘 얼마 벌어왔는지 다그쳤어요.

돈은 번 날에는 잠은 잘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날에는 밤새 손찌검과 폭언에 시달렸어요.

소녀에게 배가 고픈 건 당연했고 배가 부른 건 이상한 느낌이었어요.

껌을 하나라도 파는 날에만 '수프 키친'앞에 줄을 서서 한 끼라도 먹을 수 있었거든요.

"저.. 여기서 할머니랑 살아도 돼요?"

어제까지의 고단함을 떠올리며 소녀는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 여기서 할머니랑 살면서 학교도 가자꾸나."

할머니는 소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웃음을 보였어요.

"너를 아프게 해서 미안하단다, 아가. 그곳은 너무 멀어서 빨리 올 수가 없었어."

어디선가 희미하게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왔어요.

그 소리는 소녀를 위한 천사들의 노랫소리같이 들렸답니다.




작가 노트


아픔에 대한 이야기


'성냥팔이 소녀는 단지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해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1800년대 성냥공장에서 어린 소녀들이 주로 처리한 일은 작은 막대기 끝을 인 화합 물네 담갔다가 빼는 일이었다. 인(P) 화합물은 유독성 물질로 뼈에 침착되는 성질이 있다. 이로 인해 아래턱 부근에서 뼈조직의 괴사가 일어나서 얼굴이 흉측하게 변하면서 참혹한 죽음을 맞이 할 수 있다. 어린 여공들은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유해가스에 노출된 상태로 일을 했다. 공장 관리인들은 얼굴색이 까맣게 변하는 인 침착 증상이 나타나는 공원이 있으면 곧바로 해고하여 공장에서 돈 대신 성냥을 손에 쥐여 내쫓았다. 결국 성냥팔이 소녀는 증세가 나타나자 해고된 후 목숨 값 대신 공장에서 받아온 성냥을 길거리에서 팔다가 얼어 죽은 것이다. 그녀가 동사하지 않았다면 더 비참한 최후를 맞을 수도 있었던 셈이다.

출처: [강진구의 고전으로 보는 노동 이야기 ]

(10) 성냥공장 아동착취 고발 http://naver.me/xZxvQGSo



산업혁명이 태동하는 19세기 초, 공장에서, 도시에서 아무런 보호도 없이 사용되는 빈민들의 삶을 반추해보면 안데르센 동화에서 그려지는 시린 결말이 가장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데르센도 어두운 분위기를 걷어내고 발랄한 이야기로 만들 수 있겠지만 창백한 도시의 슬픔을 오롯이 드러내게 하는 것이 더욱 가치로울 수 있기 때문이죠.



차가운 맨발로 거리를 걷고
크리스마스트리와 거위 요리
그리고 따뜻한 관심을 환상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그들에게 과연 희망은 있는 걸까요?




소녀에게 최고급 음식과 저택을 안겨줄 수 있었겠지만 그들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왜곡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최소한의 편안함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먹먹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추위를 피할 수 있고 마음껏 울 수 공간 그리고 지켜봐 주는 사람.

그 정도는 모든 이가 기적이란 이름으로라도 가질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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