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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삽질 Jul 05. 2018

혜원 신윤복, 일탈과 해학의 아이콘

‘널 안고 바람이 불어온다’는 주제가로 시작되는 드라마 바람의 화원. 혜원 신윤복의 생이 바람같이 느껴진다. 드라마에서 여장남자로 그려질 만큼 그의 생애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단지 도화서 화원으로 일했다는 정도다. 달콤 쌉쌀한 신윤복과 김홍도의 러브스토리가 담긴 드라마는 꽤 인기를 끌었다. 배우 박신양과 문근영의 연기도 한 몫 했지만 신윤복 작품의 매력은 눈부셨다.


신윤복는 서자의 후손으로 중인(中人)의 신분 제약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그는 양반의 위선적인 태도와 이중 잣대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유교적 봉건사회에 대해 예술로 저항했고, 해학과 풍자로 승화시켰다. 조선시대 비판적 에로티시즘의 맹아였다고나 할까. 그는 풍속도 중에서도 색정적인 면을 많이 그렸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혜원의 그림은 하나같이 색정적인 것이 아닌 것이 없다. 노골적인 성묘사가 춘화(春畵)라고 한다면, 혜원의 그림은 춘의도(春意圖) 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풀밭위의 점심식사> 1863, 마네, 50.2 x 61 ㎝,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소년전홍


서양미술의 인상파가 귀족의 외설적 일상을 비판했다면, 신윤복은 양반의 일탈과 서민의 삶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에는 발가벗은 여성과 함께 풀밭위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귀족의 외설적 모습 비판하고 있다. 당시 귀족사회는 이 작품의 외설논란으로 들끓었다. 왜 수많은 누드 작품보다 이 작품이 외설적이라고 했는지 안봐도 뻔하지 않나.


소년전홍, 화첩 종이에 채색, 28.2× 35.6㎝, 간송미술관 혜원전신첩 중, 국보 135호


한국사회 기득권층의 추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문득 신윤복의 소년전홍(少年剪紅: 젊은이가 붉은 꽃을 꺽다)을 보면 골프를 치다가 손가락으로 캐디의 가슴을 쿡 찌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떠오른다. 70대 중반을 바라보는 중늙은이가 10대 소년처럼 욕정을 못이겨 그 발광을 했다니.


그림에서 남자는 노골적으로 여자의 손목을 확 잡아끌고 있다. 남자의 갓 속에 상투로 봐서 결혼한 양반집 자재다. 여자는 가슴이 살짝 드러나는 짧은 저고리와 머리를 틀어올린 것으로 보아 결혼한지 얼마 안된 몸종인 듯 싶다. 머리를 긁적이며 엉덩이를 쭉 빼고 거부 의사를 밝혀도 이 남자는 막무가내다. 


빽빽한 잎에 짙은 초록이 쌓여가니 密葉濃堆綠(밀엽농퇴록)

가지가지 붉은 꽃잎 떨어뜨리네 繁枝碎剪紅(번지쇄전홍)


혜원이 그림 옆에 적은 시구를 해석하자면 ‘초록과 같이 쌓이는 양반의 탐욕이 붉은 꽃으로 비유되는 여성들을 유린한다’ 이쯤 되지 않을까.


삼추가연


신윤복의 삼추가연(三秋佳緣: 세 명이 가을에 맺은 아름다운 인연)은 성매매 동영상으로 유명한 김학의 차관이나 장자연 사건에 연루된 조선일보사 사장이 생각나는 그림이다.  


삼추가연, 화첩 종이에 채색, 28.2x35.2㎝, 간송미술관 혜원전신첩 중


이 그림은 조선 화단에 유일한 초야권을 사는 장면이다. 기생의 머리를 얹어주는 첫날밤의 권한을 노골적으로 묘사해놓았다. 중세 서양에서 봉건영주가 영지 안에 거주하는 처녀들의 초야권을 가진 것처럼, 조선시대에는 기생들의 초야권이 공공연히 매매되었다.


상투 사이로 머리카락이 삐져나와 있는 남자는 들판에서 대님 끈을 매며 옷을 입고 있다. 어린 기생은 속옷을 다 추스르지도 못하고 황망하기 짝이 없는 상태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간사해보이는 뚜쟁이 할멈은 초야권을 산 남자에게 술잔을 권하며 어린 기생을 달래고 있다. 


국화꽃 쌓인 집은 도연명이 사는가 秋叢繞舍似陶家(추총요사사도가)

빙 두른 울타리에 해가 기우네 遍繞籬邊日漸斜(편요리변일점사)

꽃 중에 국화를 편애해서가 아니라 不是花中偏愛菊(불시화중편애국)

이 꽃 지면 다른 꽃이 없다네 此花開盡更無花(차화개진경무화)


혜원은 당나라 원진의 시를 빌려 기가 막힌 장면을 그려놓았다. 이 꽃을 꺾은 이유가 사랑해서가 아니라 다른 꽃이 없어서라니. 참 혜원다운 풍자다.


청금상련


'혜원풍속도첩 (蕙園風俗圖帖)' 중에 청금상련 (廳琴賞蓮) 혹은 연당야유 (蓮塘野遊)라 불리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우리 사회 공무원들의 문란한 접대문화가 연상된다. 


청금상련, 18세기 중엽 ~ 19세기 초, 화첩 종이에 채색, 28.2 x 35.3cm, 간송미술관


이 그림은 배경이 포인트다. 배경은 바로 궁궐 아니면 양반집 뒷마당인 듯하다. 궁궐에서 연회가 끝나고 관리들이 궁궐의 여인들을 데리고 나와 여흥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가야금 타는 여인 옆의 여인은 머리에 의녀들이 쓰는 가리마(모자)를 썼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의녀들도 연회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관리들이 못 다한 욕정을 풀기위해 여인들을 뒤에서 껴안고 있는 적나라한 묘사다.


기방무사


기방무사(妓房無事)는 유교의 나라 조선을 뒤흔들만한 낯 뜨거운 작품이다. 


기방무사, 1805ㆍ화첩 종이에 채색ㆍ28.3×35.4cmㆍ간송미술관


볕이 뜨거운 어느 여름날 양반 나리는 화들짝 놀라 더운데도 서둘러 두꺼운 이불로 몸을 가린다. 기생의 몸종과 뒹굴다가 갑자기 외출하고 돌아온 기생을 보고 화들짝 놀랐기 때문이다. 문득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동을 검색했다가 화들짝 놀라 궁색한 변명을 했던 심재철 의원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당시 엄숙했던 조선 사회 양반들은 신윤복의 그림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신윤복이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설이 파다하다. 자신들이 민낯을 그대로 폭로한 신윤복이 당연히 불편했겠지. 


지금도 대통령을 풍자하는 작품이 비엔날레에 출품되지 못하는 우스운 이 사회를 신윤복은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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