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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삽질 Jul 05. 2018

에로티시즘인가 페미니즘인가

매독에 걸린 미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모든 예술은 에로틱이다” 매독에 걸린 미친 천재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7.14-1918.2.6, 오스트리아) 그의 그림은 야하다. 그런데 한편에선 클림트의 에로티시즘을 페미니즘으로 해석한다. 성 상품화의 수단인 에로티시즘과 여성 해방의 페미니즘은 정 반대 아닌가. 퇴폐적인 요부에 대한 찬미인지, 생명과 창조의 여신에 대한 찬사인지. 두 해석이 공존하는 모순은 현 사회상의 반영이 아닐까.


클림트 그림은 여성인권단체 페멘(Femen)의 ‘토플리스(topless, 반라)’ 시위를 떠올리게 한다. 페멘은 국가와 종교의 부조리부터 남성 우월주의 사상을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여성에게 교수형을 집행한 이란 정부를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클림트를 바라보는 시각처럼 복잡하다.


모든 것이 상품화 되고 인간의 말초적 감각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사회, 거기에 딱 부합하는 작품 세계다. 몽환적 세기말의 요소가 물신 풍겨난다. 이 작가가 왜 현 시대 높이 평가 받는지 이해가 된다. 작품을 볼수록 왠지 빠져드는 느낌은 자본주의 썩은 물에 영혼이 푹 잠겨있다는 반증인가.


Gold Fish

Gold fish  1901~02 캔버스에 유채 150x46cm 졸로투른 시립미술관


클림트의 <Gold fish>는 깊은 바다에서 알몸으로 부유하는 세 여인을 그린 그림이다. 살짝 등을 돌린 두 여인은 관능적이며, 쪼그려 앉아서 빨간 머리를 휘날리며 뒤를 돌아보는 여인은 매우 도발적인 미소를 띠고 있다. <Gold fish>는 클림트의 예술을 비난하는 당시 권력자들을 조롱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당시 클림트는 오스트리아 교육부의 요청으로 빈 대학에 설치할 ‘학부회화’를 그리는 중이었다. 교육부는 <Philosophy 철학>, <Medicine 의학>, <Law 법학> 이 세 학부를 어둠을 극복한 빛나는 이성의 상징으로 표현해달라고 의뢰했다. 하지만 관능적인 누드와 무질서한 클림트의 그림이 중도에 공개되자 빈 대학 교수들은 작품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자 클림트는 ‘나의 비방자들에게’라는 제목으로 이 그림을 그려 공개하려다 가까스로 참았다고 한다. 


Medicine


Medicine 1899~1907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벽화 1945년에 파괴

자정에 들리는 목소리

난 내 꿈에 잠들어 있다.

가장 깊은 꿈에 깊이 빠져든다.

깊은 심연에로 들어가고 싶다.


이 작품이 클림트가 빈 대학 벽화로 그린 작품인 <Medicine>이다. 왼쪽에 심연에 빠져있는 나체의 여인이 그려져 있다. 오른편에는 주술사인 여인과 그 위로 무수한 인간군상이 탑을 이루고 있다. 썩어가는 얼굴과 저주받은 해골, 아이와 어머니, 여인, 남성의 등이 주술사의 주술에 빠져 하늘로 올라가는 듯하다. 클림트가 <Medicine>이라고 지은 이 작품은 사회로 부터 배척받은 클림트가 저주하며 각종 몽환의 세계를 한데 모아놓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배척 받다가 2차 세계대전 때 소실된다.


Judith Ⅰ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는 구약성경 유딧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많은 화가들의 작품소재가 되었다. 유디트는 베툴리아에 살았던 아름답고 정숙한 과부였는데, 아시리아 군대가 침략하자 아름답게 치장을 하고 거짓으로 투항한 후, 만취한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다. 클림트가 그린 유디트는 황홀한 표정으로 목을 들고 웃고 있는 모습으로 유명하다.


Judith 1901 캔버스에 유채 153x133cm 빈 오스트리아 미술관


유디트와 그 머리가 잘린 홀로페레네스가 선명히 금박으로 새겨져있다. 클림트가 그린 유디트는 배경부터 강렬한 비늘과 나무 문양으로 금박으로 묘사 하고 있다. 여인은 황금빛 목 테두리의 장식과 옷, 벨트를 하고 있다. 


여인의 몽환적 얼굴과 선홍빛 유두는 죽음을 맞이한 시신의 머리를 감싸는 쾌락의 향연자를 묘사한 듯하다. 곧추 뻗은 어깨를 묘사한 옷과 그 위의 황금빛 배경, 그 아래의 청록색 어두운 배경이 작품을 양분하고 있다. 


클림트는 인간의 심연적 이기적 욕망을 그려냈다. 자본주의 사회, 계급사회가 수세기 이어지면서, 아니 동물이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남아있는 이기심에 대한 원한이 그녀의 눈동자에 새겨져 있다. 유디트의 눈빛이 탐욕의 영혼을 빨아들인다.


Kiss


Kiss 1907~8 캔버스에 유채 금박 180x180cm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르궁전


클림트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사랑을 갈구하는 남녀를 표현하고 있다. 평면 묘사와 금박 기법이 상당히 화려하다, 전체적인 배경은 황금색 눈이 내리는 듯하다. 낭떠러지에 핀 꽃 밭, 화폭 위에 여인은 무릎을 꿇으며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매달려있다. 여인의 발에는 금빛으로 된 개나리 같은 장식이 걸려있다. 그녀의 옷은 화려한 금박에 붉은, 갈색, 파랑, 초록색 일본풍 모양으로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남자는 목을 감싸며 여자의 볼에 입을 맞춘다. 남자의 옷은 이집트 문양에 금과 은의 검은 네모가 장식되어있다. 남자의 거친 손마디, 남자의 검은 머리와 진한 피부는 강인함을 나타내고 여인의 갈색머리와 회색 빛 얼굴에서 죽음이 느껴진다. 남자의 옷 뒤에 거대한 금박배경. 금박 원의 반복, 심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금색 잎줄기들이 뻗어있다. 


클림트가 그린 환각의 세계가 예술적으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화려함 속에 감춰진 내면의 고독과 원초적 욕망이 현대인들을 이 그림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사람이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든 자본주의 사회. 돈과 욕망의 노예가 되기를 강요받는 우리들에게 클림트의 작품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 그의 작품에서 자본주의 시대의 환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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