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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삽질 Oct 11. 2018

구안와사,

삶에 쉼표를 찍어준 시간. 2017.02.21


하루하루 행사 날짜는 다가왔다. 

광화문 빌딩 사이로 엄청나게 바쁜 시간들이 지나갔다. 


평소에는 갈 엄두를 못내던 오리 고기를 먹으로 갔던 날이었다. 일요일 야간근무와 월요일 과음으로 그날 따라 피곤했다. 피곤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같이 오던 귀의 통증이 시작됐다. 아. 중이염인가. 진통제를 먹으려 했지만 좀 참았다. 이러다 말겠지. 


기대하던 오리 수육이 나왔다. 샤브샤브로 나온 오리 훈제와 부추를 한 입 머금은 순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왼쪽 입천장 뒤쪽이 사랑니 뺄 때 주사 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뭐야. 뜨겁지도 않은데 데였을리도 없고.. 그러려니하고 계속 식사를 하다가 물을 마셨는데 입에서 물이 샌다. 뭐지. 심상치 않았다. 왼쪽 눈도 이상했다.


약속을 취소하고 집으로 향했다. 늦겨울의 바람은 차디찼다. 집에 들어서 이것저것 찾아본 후 종합해본 결과. 안면신경마비. 사극에서나 보던 구안와사다. 입과 눈의 달팽이처럼 꼬인다. 입이 돌아가도 말은 바로 하랬다는 각종 속담이 떠오른다. 왜. 갑자기. 이런. 병에 걸렸을까. 하필 엄청나게 바쁜 지금.


경희한방병원 안면마비센터로 차를 몰았다. 오만간 질문과 검사 끝에 구완와사 초기 진단을 받았다. 왼쪽 이마만 갑자기 회춘을 했다. 웃음은 바로 썩소. 왼쪽 눈 깜박임은 수동으로 전환. 이대로 일상을 보내야한다. 아 하. 큰 한숨이 나왔다. 


침대에 누워 알 수 없는 봉침과 침들을 얼굴에 잔뜩 꽂은 채 천장을 본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지. 그래 죄를 많이 지었구나. 차카게 살자. 쉬라는 신의 계시인가. 쉬지 않고 달려온 인생이다. 꺽여서 꼬라박히기도 했지만 용캐 기어올라왔다. 이제 좀 더 여유를 가지고 길게 살아야하나. 아니면 더 높이뛰기 위한 웅크림인가.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무려 14알 쓴 약을 꿀꺽 삼켰다. 별 거 아니겠지. 자연회복이 된다고 말들은 하지만 10~20% 완치가 안된다는 말들이 날 불안케 했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이런저런 잡 생각들이 든다. 


거울을 봤다. 아에이오우. 입술이 삐뚤어지고 얼굴도 뒤틀린다. 병신. 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동시에 광화문에서 몇 년 째 농성을 하고 있는 뇌성마비 장애인분들도 생각난다. 몸이 자기 마음데로 움직이지 않는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지만 그 고통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당사자가 되어야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많다. 노가다를 할 때, 육아를 전담할 때, 몸이 불편할 때마다 새롭게 느낀다. 당사자가 되어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고통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때 그들처럼 움직일 수 있다. 


온전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스스로를 더 자세히 봐야한다. 그래야 안다. 자기가 누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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