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e Apr 26. 2019

잘하고 싶은 게 없어졌다

그걸 깨달아서 다행이다

남편이랑 이야기하면서 정리해본 나


-외부에서 주어진 목표를 매우 잘하려고 노력해왔다. 아주 오랫동안 그 목표가 곧 내 목표, 그렇게 하는 게 곧 내가 나아지는 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최근 내가 노력해온 것들이 사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것들 뿐이었다는 것, 사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크게 영향을 받아 설정된 목표였단 것, 그랬기에 어딘가 항상 불만족스럽고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그걸 잘하고 싶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남은 질문은 “나는 이제 무엇을 잘하고 싶은가?”


-결정에 망설임이 많고, 호불호가 없어 아무래도 상관 없다고 말할 때가 많았다. 특이한 건 일에서는 거의 그렇지 않은데, 개인적인 것들에서는 좀 심하다. 물건을 제대로 고르지 못하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 드는 취미나 운동 클래스에 등록하길 매우 주저한다. 주저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당장 이 돈과 시간을 써서 나한테 남는 게 뭐야? 라는 질문. 최고로 좋은 걸 알면서도 가성비를 따지며 욕망을 펼치기도 전에 불씨를 꺼뜨린다. 어차피 안 될 거야, 해서 뭐 해, 당장 남는 게 없고 생산적이지 않아. 결국 제대로 욕망하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것이 정말 의미 있고 지속가능한 불꽃이었는지 테스트해본 적이 없다.


-이런 사소한 경험들이 쌓여 나는 인생을 차악 밖에 달성하지 못하는 불만족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스스로 욕망에 한계를 짓고 그냥 즐겁고 재밌는 걸 찾아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게 됐다. 경험의 폭이 적다보니 무엇이 나한테, 다른 누구도 다른 무엇도 아닌 나한테 정말 좋은지 제대로 선별해내지 못하게 됐다. 이는 가정문화와 경제적 배경에서 기인한 점이 크지만 앞으로 발전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그 점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남편과 애자일 코칭이란 걸 시작하게 됐는데 초반에도 주어진 목표를 잘하려 노력하면서 고통받는

패턴이 등장했다. 참가자들끼리 위원회를 구성해 미션을 달성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나는 고통받으면서도 그 불확실한 상황을 정리하려들었다. 채널 통일과 앞으로 이 위원회의 진행방식에 대해 제안하면서 고통스러워했다. 안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외부적 목표를 또 잘해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걸 알게 되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애자일 코칭에서 멘토가 되어주실 분 한 분이 추천한 글을 읽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봤다. 나는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의미 있는 것 이 세 가지를 세분화하지 못했고 이것 역시 언제나 최선이 아닌 가성비 좋은 것을 타협해 얻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으며 좋아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즐기기 이전에 잘하는 것과 의미 있는 것까지 먼저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다. 남편이 늘 하던 말이기는 한데, 이제는 좀 다르게 느껴졌다. 그만큼 나한테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뭔가를 더 잘하기 위한 습관 형성 이전에 나는 무얼 더 잘하고 싶은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건 좋아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위에 정리한 이유들로 인해 나는 좋아하는 걸 정말로 좋아하는지 테스트해볼 기회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이제까지의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할 것이다. 이제 내 삶을 더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왔고 좋은 사람이 옆에 있다. 도와주려는 분들도 만났다.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약 11일째 하고 있는 신혼 여행은 드물게 조직에 속해있으면서도 2주라는 시간 동안 여행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점이 굉장히 특별했다. 그리고 적당한 시점에 이만큼의 브레이크 타임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잘 쉬었고 잘 놀았다. 아무것도 심지어 여행조차도 잘하려도 노력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나 개인을 주변의 많은 것들과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이제부터다.

매거진의 이전글 왕좌의 게임보다 충격적인 결혼식의 반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