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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 Feb 24. 2018

할머니 오래 살지 마요

죽지도 마요 

할무니 사랑해여 ♡


사람의 긴긴 노화는 너무 폭력적이어서 죽음이 최상의 시나리오로 설계된 건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오래오래 내 할머니로 있었으면 좋겠지만 할머니가 그렇게 노화의 결과로 아파지고 작아진 채로, 잘 들리지 않는 채로, 거북이처럼 느린 채로, 명절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자식 손주들을 너무나도 조그맣게 앉아 아파트 2층 유리창 너머로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인 채로 오래오래 살아있다면 할머니한테는 결코 좋은 시나리오가 아닐 것이다. 


자세히는 모르는 백 살 먹은 바다거북이의 삶처럼 단단하고 주름진 할머니의 삶을 상상하면서 어쩌면 이제 울기도 뭐해진 나이일 할머니를 괜히 대신해 울었다. 아장아장 엉금엉금 걷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걸을 때마다 나는 할머니 손이 작고 못생기고 따뜻하고 위태롭다고 생각했다. 


삶에 너무 깊숙이 물들어서 죽음에 가까워진 사람의 손이야. 


그 손이 한걸음 한걸음마다 나를 의지하고 사랑하고 있다고 내 손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할머니가 극적이고도 자연스러운 결말을 향해 소멸되어가고 있을 때, 나의 둘째 조카는 태어나버렸다. 정해진 결말을 향해 거칠은 길을 걸어야 할 한 인간이 또 한 명 생겨났다. 노화된 채로 삶을 견뎌야 하는 폭력을 언젠가는 깨닫고 “늙으면 죽어야지”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까”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덜 늙은 자녀들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뱉어내게 될 인생이 그 앞에 놓인 운명을 꿈에도 모른 채 힘차게 생애 첫 울음을 뱉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스러운 듯 태어남을 축하하고 죽음을 슬퍼하지만 과연 어느 것이 더 축복받을 일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태어남과 죽음, 그 점과 점의 사건 사이에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 우주같은 그늘이 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 누구나 결국은 소멸하고 만다는 것. 많은 이들이 노화에 지치고 지치고 지쳐 녹초가 될 때쯤 죽게 된다는 것. 매일의 사건에 치여 사는 평범한 우리들은 너무나 쉽게 그 우주같은 그늘을 잊어버린다. 그 단절이 할머니의 시간을 더욱 고독하게 만들어버리는지도 모른다. 


수화기 너머 할머니는 오늘도 내 말을 잘 못알아듣고 자기 말만 하다 끊어버렸다. 어릴 적 나는 할머니들은 항상 화가 나있다고 생각했다. 증조할머니와 할머니가 매번 큰 소리로 외치듯 대화했기 때문이다. 증조할머니의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대화의 볼륨이 항상 높을 수밖에 없었단 사실을 이해한 건 한참 크고 나서였다. 이제 나는 할머니에게 진지를 드셨냐고 소리친다. 건강하시라고 소리지르듯 말한다. 할머니한테 내 소리는 어떤 식으로 들려지고 있을까? 오늘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할머니의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할머니, 잘 안들리겠지만, 내가 보고싶어 하고 있어. 내가 감히 할머니의 고독을 봤어. 내가 기억할게. 작아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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