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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 Mar 18. 2018

세상 모든 이가 슬프길 바랐던 날

친구 아버지의 부고


부고를 듣고 부랴부랴 고향으로 가는 길은 마치 시간이 비척비척 접어지는 터널 길 같았다. 그 안으로 안으로 계속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는 내 친구의 아버지였다. 20년 넘게 친한 친구로 남아 있는 내 친구가 미워하고 사랑한 아버지. 내가 그 아버지 딸의 친구로 있어왔던 20여년의 시간이 아코디언 주름처럼 촤르륵 접어진 채로 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초중고 내내 같은 학교를 휘적거리며 이집 저집 가릴 거 없이 일단 눕고 보던 우리는 아버지들을 미워했다. 엄마를 고생하게 하고 자기만 행복하고 무능하면서 그런줄 모르며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했다. 그 이상한 이기적인 여유로움과 다크하고 유쾌한 내 친구들을 빚어낸 개그 센스의 원천.


그중 한 아버지가 영영 사라졌고 사랑하는 내 친구와 내 친구의 어머니, 동생들은 씩씩하게 무너져내리고 일어나길 반복했다. 특히나 웃긴 내 친구의 특히나 유쾌한 아버지였다. 갑자기 이 세계에서 사라져서 재가 되고 땅에 묻히고 갑작스레 만들어낸 비석만 그의 물리적 존재를 대신하는 데 3일이 걸렸을 뿐이었다. 이상했다.


이 시공간이 너무나 이상하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태어나고 우리는 우주의 티끌만치의 관계를 맺고 있을 뿐인데 그게 너무나 깊고 깊어서, 이 슬픈 시공간이 전부 우리 것이 아니란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지던 하루였다.


누구나 죽음을 결말로 하는 생을 짊어지지만, 그 사실과는 상관 없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누군가가 죽어 영영 사라진다는 사실은 무척 슬프다. 그 죽은 이가, 바로 내가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라면 더욱 아프다. 그래서 그렇게나 황망하고 가슴 아팠던 날, 그를 모르고 우리의 관계를 모르는 이 세상 99.9999999%의 사람을, 나는 조금 미워했다. 


날이 그 어느 때보다 너무 청명해서 내 친구는 더욱 목놓아 울었다. 


아버지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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