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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 Apr 23. 2018

어느 평범한 오후, 영원히 퇴근했다

내 인생의 다음 장면이 궁금해졌다

미세먼지가 보통으로 나빴던 어느 평범한 수요일 저녁.

나는 내 생애 네 번째 회사에서 영원히 퇴근했다.  


그날 낮,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딱히 인수인계할거리가 없어서 퇴사 통보 당일자로 사직서를 냈다. 퇴근을 빙자한 퇴사와 동시에 그동안 꽁냥꽁냥하던 동료들과 이별파티를 했다. 그 다음날부터 회사에 나가지 않게 됐다. 대책은 없었다.


퇴사하고 가는 여행은 사실 지상 채고의 경험인 것이다

사회생활 시작한 지 6년차. 나는 3개의 직업을 거쳤고 4번의 퇴사를 했다. 짧은 기자 생활, 두 군데서의 출판 편집자 생활, 스스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기 힘들 만큼 많은 일을 했던 스타트업 크리에이티브 팀 리더. 보기에 따라서는 매우 일관적일 수도, 반대로 아주 말도 안되게 뒤죽박죽일 수도 있다. 내 성격과 아주 꼭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돈을 버는 일과 자아를 분리시키는 것이 참 어려웠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니까"라는 핑계가 내 마음에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참는다거나 상급자의 꼭두각시처럼 느껴지거나 하는 일이 많아지면 자존감이 떨어졌다. 자율성을 잃거나 스스로 쓸 데 없다고 생각하는 규제가 많아지면 일할 의지와 동기를 잃고 불평을 시작했다. 불평의 대상은 타인과 환경에서 시작해 결국 언제고 나 자신으로 귀결되었고 무기력이란 기분이 그 뒤를 집요하게 따라붙었으며, 그 감각은 비오는 날 젖어버린 신발 속 양말만큼이나 찝찝하고 싫었다.

꺼내줘 이자식아 이런 심정이 되어가던 직장인 시절 모습

나에게 회사는 월 수입의 대가로 내 시간과 존엄을 파는 곳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그리고 일 자체에서 재미와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다. 나는 직장보다 직업을 원했고 그 직업은 -사, -가로 표현되곤 하는 이미 존재하는 어느 하나의 고유명사로서의 직업이 아니었다. 내가 있고 싶은 환경에서 내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는 것, 그걸 원했을 뿐이다. 난 어떤 게 '되고' 싶다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게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어떤 이름을 갖는 것보다 그냥 내가 어떤 이름이 되는 것이랄까.  


그러다보니 나는 내게 맞는 자리를 찾아다녔고, 떠날 이유가 있고 떠날 수 있을 땐 떠났다. 퇴사는 내 기나긴 인생 여정 중 어느 시점 당시에 당면한 문제해결 방식 중 하나였다. 양말이 비에 젖으면 양말을 벗어 말려야 한다. 네 번째 퇴사도, 그 길을 걷기 위한 여정 중에 벌어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제까지는 내 여정이 더 큰 스펙트럼을 갖지 못하고 '회사'를 중심으로만 돌아가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이번엔 '회사'를 중심으로 그곳을 들어가거나 나가는 것으로 생활방식이 결정되는 기존의 패턴과 관점을 한번 바꿔보기로 했다.

문 크리스탈 파워로다가 바꿔볼란다

퇴사 다음날 아침, 나는 딱히 늦잠을 자지도 않았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적어봤다. 그 두 가지는 거의 일치했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미뤄뒀던 코딩 공부, 더 많은 글쓰기 레슨, 존엄성을 헤치지 않고 밥벌이 하는 방법 찾기, 새로운 언어 공부, 건강하고 지속적인 취미생활, 새로운 운동...목록이 끝날 줄을 몰랐다.


두려운 마음도 당연히 있지만 그것보단 어떤 세계와 그 안의 캐릭터를 내 손으로 짓고 있는 느낌이 주는 설렘이 더 크다. 아직 당면하지 않은 것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두려움과 설렘은 어차피 한 끗 차이. ‘나’라는 캐릭터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제한된 조건 하에서 그 캐릭터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하나씩 조성하는 느낌.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내가, 이 이야기가,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지는 보이지도 않고 예측할 수도 없지만 주제는 더욱 명확해졌다.


나는 나의 행복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

퇴사하고 만든 이상한 웹사이트. 는 아래에

퇴사하고 만든 이상한 웹사이트

https://ustajaguarrr.github.io/vegetable/index.html


'로망'은 없다. 이번 퇴사는 내 인생 여정에서 이번 시기에 당면했던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이었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집주인의 갑질에 눈물짓는 집없는 떠돌이였고, 한 달 수입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상당히 고민스러우며, 다가오는 잔인한 5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진지하게 걱정된다. 레고를 사다 바쳤더니 자동차를 사달라던 조카가 공식적으로 선물을 요구할 수 있는 날과, 승진 소식을 끝으로 퇴사 소식은 업데이트 받지 못한 부모님이 공식적으로 현금을 요구할 수 있는 날, 사랑하는 친구의 결혼식이 있는 날, 월 수입이 보장된 직장인 시절에도 잔인했던 이 5월이 코앞이라니.


그러나 어차피 사는 일이 고통스러울 거라면, 나는 최대한 내가 납득할 수 있고 즐거울 수 있는 길을 찾기를 주저하지 않고 싶다. 우주의 쓰레기보다 작은 내 존재가 이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혼자 발버둥치는 게 사뭇 안쓰럽지만, 나는 살아있고, 죽지 않을 것이고, 잘살고 싶으므로, 모든 생명이 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생존. 다만 다른 생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정신적 행복도 생존의 크나큰 조건 중 하나일 뿐.

바깥세계가 아주 후끈하구먼

대책 없이 퇴사를 하고 이제야 생각이 조금 정리가 되었다. 다이내믹했던 네 번째 영원한 퇴근길을 마치고나서야, 나는 내 인생의 다음 장면이 정말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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