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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 Nov 16. 2018

안 마신 IPA의 역설

뭐라도 쓰기 14일차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한 몇 개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약 1년 전쯤 나를 만났던 사람이라면 "술을 잘 안 마신다"는 내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술에 정말 흥미가 떨어졌다. 한동안 건강이 좋지 않아 그냥 마시지 않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가 너무 좋다는 걸 알게 돼서 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탓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려면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그림도 그려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좋아하는 사람도 만나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공상도 해야 하며, 공상 중에서 실현 가능한 일들을 실천해야 한다. 이거 외에도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여러 가지가 있다.


정말 몇 년 사이 내 인생과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 나는 더 성장하고 싶고, 더 나한테 맞는 시간과 장소와 패턴을 찾고 싶으며 남은 삶을 즐겁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 예전엔 어쩌면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새로운 걸 시도하려는 용기도 없었기에 그냥 가장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주가무를 취미로 삼았던 게 아닐까 싶다. 안쓰러운 나의 이십대. 절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래도 가끔 술이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맛있는 맥주나 와인, 진토닉 한 잔, 달지 않은 사케 같은 게 생각날 때가 있다. 오늘은 어쩐지 맥주가 먹고 싶었다. 특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진한 IPA 종류. 어디로 갈까 고민이 됐다. 주변에 술집은 널려 있는데, 맛있는 IPA를 팔 것 같은 술집은 보이지 않았다. 항상 가던 곳은 가깝지가 않아서 고민이 됐다. 술을 마시고 집에 가서 14일차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데, 멀리 갈 수는 없는데, 하지만 맛있지 않은 맥주는 의미가 없는데. 고민하는 동안 아까운 시간만 흘렀다.


나는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동네 중 하나에 산다. 한 집 걸러 한 집이 술집이다. 목요일 밤 11시에도 밝은 조명과 힙한 노래가 넘실댄다. 패션 감각이 출중하고 스웩 넘치는 젊은이들이 늦은 시간까지 거리를 배회한다. 외국인들도 어디에서 보고 왔는지 이 동네의 밤을 즐기러 나온다. 우리가 어느 여행 블로그나 책에서 읽었듯, 밤에 나가서 놀기 좋은 어떤 여행자의 거리랄지, 젊은이의 거리랄지, 패션의 거리랄지, 그런 소개글이 어디엔가 나는 읽을 수 없는 그들의 모국어로 써있었겠지.   


그런데 내가 갈만한 곳은 많지 않다. 맛있는 맥주를 팔면서도 너무 시끄럽지 않은 곳은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 그냥 맥주를 먹고 시간을 아끼는 것으로 만족할지, 아니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맛있는 맥주를 먹는 만족감을 누릴지 고민한다. 시간은 아깝고 당장 맛있는 IPA는 먹고 싶고. 이제 생각해보면 이걸 고민하는 시간만 줄여도 더 효율적이었을 텐데 싶다.


결국엔 항상 가던 데로 향했다. 차라리 그게 시간을 가장 아끼는 방법이었다. 그냥 기계처럼 "맥주가 마시고 싶다"는 인풋이 있으면 거기로 향하면 됐다. 공기가 나쁘면 돌아가는 공기청정기처럼 말야,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더 단순하게 끝났을 일이다. 게다가 가깝지 않다고 해봤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맥주 가게에 도착해서는 마음이 편해졌다. 이곳의 맥주는 내가 아는 맥주고 맛이 있는 맥주니까 무얼 마셔도 만족스러울 거였다. 괜히 신나서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결국 나는 IPA를 마시지 않았다. 메뉴판에서 방금 본 흑맥주가 먹고싶어졌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삽질의 시작은 갑자기 IPA가 먹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민했고, 움직였고, 실천했으나 결국엔 IPA를 마시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비합리적인 삽질인지. 세상에 선택지가 너무 많기 때문인 건지, 결정장애인 건지, 인간은 원래 이렇게 그냥 바보인 건지. 그러면서 가성비는 되게 따지는 종족들이라니. 엄마 나는 왜 사람입니까, 라며 그래도 맛있는 물건을 맛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라며 맛있게 마셨다.  


부러진 다리의 역설이란 게 있다. 원래 심리학자가 통계 예측이 놓치는 것들을 지적하기 위해 만들어낸 사례인데, 요새는 인공지능과 관련해서 쓰이는 모양이다. 내용은 이렇다. 어떤 교수가 매주 화요일마다 극장에 간다면, 이 사실이 입력되어 있는 통계 모델은 다음주 화요일에도 이 교수가 극장에 갈 거라고 아주 높은 가능성으로 예측한다. 그런데 이 교수가 다리를 다쳤다면? 교수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조교나 동네 사람은 이 교수가 다음주 화요일에 극장에 가지 못할 거란 사실을 미리 알 수 있을 것이다. 통계 모델보다 정확해지는 것이다.


오늘의 나같은 인간의 행동은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특이점이 오기 전에도 예측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나의 안 마신 IPA의 역설은 어떻게 예측할 것인가?!


맥주 욕구로 시작되어 인공지능으로 끝난 나의 14일차 프로젝트도 무사히 끝났다.. 아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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