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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 Nov 18. 2018

저 세상 멘탈의 결혼식

뭐라도 쓰기 17일차 

일상적으로 겪는 일 중에 재미 없어 죽겠는 일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한 가지는 남의 결혼식이다. 중요한 날, 축복을 받길 바라며, 누구를 초대해야 할지 고심하며, 평소에 쓰지도 않던 손글씨로 청첩장 봉투 위에 이름을 썼을 수많은 나의 지인 부부들이 들으면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들도 끄덕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 있을 거다. 


똑같은 예식장, 똑같은 패턴, 결혼하는 이들이 주인공인지 부모님이 주인공인지 모르겠는 예식장과 피로연장 분위기, 위기와 절정 없는 조악한 무대 위의 쇼. 행복의 가면을 썼지만 그 밑에선 개인과 조직의 여러 이익이 바쁘게 움직이는 아수라장. 그 쇼에 참가하는 모두가 너무나 고생한 걸 잘 알겠지만 정작 쇼는 너무 재미가 없어서 슬픈 연극. 그나마 함께 사진을 찍어야 하는 사람들은 결혼식을 끝까지 다 견뎌 내지만, 우리 모두 잘 알잖나. 그렇지 않은 애매한 관계에선 봉투 내고 밥 먹고 집으로 향한다는 걸. 


개인을 비난하는 게 절대 아니다. 아무리 봐도 이건 가성비 전쟁이다. 본업을 유지하면서 내 마음에드는 대규모 오프라인 이벤트를 꾸리는 건 특별한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가성비가 안 나오는 장사. 수십년 동안 진화를 거듭한 웨딩비즈니스가 제시해온 가장 쉽고 빠르고 저렴한 옵션이 눈앞에 있으며, 비교 가능한 가격 기준과 패키지가 손닿을 곳에 있다. 게다가 조금만 다르게 하려고 해도 부모님은 또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그래도 아무리 똑같은 연극이라 해도 튀는 배우가 있는 것처럼, 혹은 애정하는 배우는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어떤 결혼식은 그와중에도 캐릭터가 담겨 재미 있다. 오늘 전까지 제일 재밌었던 결혼식은 드럼 치길 좋아하는 신부 아버지가 '1가족 1악기' 연설을 한 결혼식이었는데 오늘부로 순위가 바뀔 것 같다. 


오늘은 좀 강적들의 결혼식이었다. 신발이 벗겨져 절뚝거린 채로 입장하는 신부. 신데렐라인줄. 나중엔 맨발로 걸어다녔다. 게다가 결혼식 당일 식을 마치고 남편은 에버랜드로 와이프는 사주 카페와 방탈출 카페로 놀러가는 사람들이라니. 신혼 여행은 같이 가지만 루트는 다르단다. 우리는 그들을 '저 세상 멘탈'이라며 웃었지만, 어쩌면 한국의 결혼식 문화 자체가 우리를 평소와 다른 '저 세상' 속으로 가둬버린지도 모른다. 


편안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즐기면서, 새로 부여된 어떤 역할이 아닌 자기 자신에 솔직하고 충실한 모습 그대로, 결혼식에 방문한 하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이게 정말 좋은 결혼식날의 풍경이 아닐까? 오늘 만난 신랑 신부는, 결혼식 중에도, 피로연에 인사를 와서도 계속 편안하게 웃고 떠드는 귀여운 사람들이었다. 부모의 욕망이 전면에 나서지 않아서일까, 스드메를 비롯한 웨딩 비즈니스의 품안에 있되 그나마 캐주얼하고 재밌는 결혼식이었다. 


남의 결혼식에 다녀올 때마다 내 결혼식의 모습을 생각한다. 나는 '신부가 주인공'이라는 결혼식의 공식이 너무 불편한 사람이다. 결혼식에 대해 환상을 가져본 적도 없다. 다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신부가 주인공'인 것처럼 짜여진 이상한 느낌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방문한 사람들에게까지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게 할까, 어떻게 하면 얼굴 비추고 와야 하는 곤욕스러운 자리가 아니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시간 뺏는 일이 아니게 할까, 괜스레 그런 것들을 고민한다. 답은 안나온다. 성가신 일이라서 그냥 다 안하고 싶어진다. 결국 이러다 귀찮아서 그냥 떠먹여주는 대로 정신없고 조악한 결혼식을 올리게 되지 않을까. 


웃긴 건, 심지어 나는 결혼을 할 수 있을지조차도 결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혼이란 제도적 장벽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지, 결혼으로 인해 주어지는 또다른 역할을 견딜 수 있을지, 결혼을 한다고 해서 내가 과연 얻을 게 있을지, 나는 결정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결혼식을 생각하는 이유는 뭐람. 사랑하는 사람과 그냥 내 마음대로 사랑만 할 수 있으면 안 되나. 


여튼 오늘 결혼한 귀여운 커플에게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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