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사람에게 다가온 우연
떠나기 전 약속한 대로 도쿄에서 기자 아카데미 활동을 이어갔다. 한국과의 차이점을 깨닫거나 호기심을 툭 자극하는 사람, 혹은 장소와 만날 때면 그 구깃구깃한 종이에 부지런히 적었다.
활자가 모여 글의 맥락을 갖추면 쉬는 날,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신오쿠보(新大久保)의 PC방에 가 원고를 작성해 메일로 제출했다.
기자아카데미 덕분에 낯선 사람과 사건,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허비되지 않았다.
다카다노바바역(高田馬場駅) 근처에 있는 YWCA에는 일본인 자원봉사자들과 외국인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일본어로 대화하는 모임이 있었다. 인터넷을 잘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모임은 취재를 위한 훌륭한 정보처였고 무엇보다 유일하게 일본어를 익힐 수 있는 곳이었다.
공장에 한국인은 나 혼자라는 말을 듣고 일본어를 익히기에 좋은 환경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을 할 때는 두꺼운 마스크를 써야 했고 쉬는 시간 흡연자는 나 혼자였다. 유일하게 내게 유창한 일본어를 들려주는 존재는 하루 종일 엔카를 틀어대는 먼지 쌓인 라디오뿐이었다.
그래서 숙소 사람에게서 YWCA 모임을 소개받았고 아무리 피곤해도 수요일 저녁의 모임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모임에서 처음 만나는 자원봉사자들은 내게 한국에서 무얼 하다 왔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지금은 노동자'라 답했다. 구구절절 설명하기엔 일본어가 서툴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대학생이라는 딱지표를 떼고 '완벽한 외국인 육체 노동자'로 살아보고 싶었다.
그곳에서 H를 만났다.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매번 늦는 난 우연찮게 H와 마주 앉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는 문학에 대한 이해가 깊었고 상대방의 일본어 능력과 관심사에 맞춰 대화를 이끌었다. 덕분에 그녀와 두 번 정도 아카데미 과제를 위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화가 많아지다 보니 결국 화제는 '노동자가 아닌 나'까지 다다랐다.
"작가를 말하는 거죠? 그게 당신의 꿈인가요?"
내가 기자 아카데미에 속해 있고 나중에도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에 H는 물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네'라고 답했지만 사실 특별한 꿈은 없었다. 그동안, 잠시 꿈이라 생각했던 무언가는 장난감의 가동이 멈춰 배터리를 갈아 끼우는 것처럼 힘없이 바뀌곤 했다.
크리스마스가 왔다.
오전에 H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녀는 진지하게 내 꿈이 작가인지 다시 확인했고, 그렇다고 하자 '글로 쓰기 좋은 소재'를 제공하겠다며 오후에 시부야(渋谷)에서 만나자고 했다. 다행히 일을 쉬는 날이었다.
선물 상자 콘셉트의 커다랗고 빨간 리본으로 포장된 시부야 한 카페에서 H를 만났다. 잠깐의 인사를 나눈 뒤, H는 바로 자신이 아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는 5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자리를 너무 오래 차지하는 게 눈치가 보여 중간에 한 차례, 에비수(恵比寿)의 조용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H는 평소처럼 쉬운 어휘들을 골라 이야기를 시작했었다. 하지만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이야기를 구성하는 단어들의 난이도가 올라갔다. 몰입한 H는 배려를 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별안간 멈췄다. 이 한마디와 함께.
"나는..."
이야기의 주어는 3인칭에서 1인칭으로 바뀌었다.
한국인 유학생과 사랑에 빠져 이혼까지 한 뒤 그를 만나기 위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예고 없이 한국에 갔지만 버림받고 종로의 한 극장에서 새벽에 극장에서 영화 <불후의 명작>을 본 후 새벽 비행기로 일본으로 돌아온 '그녀'는 H였다.
주인공이 된 H는 놀라 눈을 끔뻑이다 금세 커다란 울음을 터뜨렸다. 카페 안 사람들의 시선은 순간 나와 H에게 쏠렸다.
크리스마스, 에비수의 카페, 20대 중반의 남자, 30대 중반의 여자, 그리고 울먹임. 여러모로 상상의 여지가 많은 풍경이었다.
점원에게서 티슈를 얻어다 H에게 주었다. 담담한 내 움직임에 사람들은 하나둘 관심을 거뒀다. 스피커에선 재즈풍의 고풍스러운 캐럴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카페를 나서 역까지 걸었다. H에게 물었다.
"왜 이 이야기를 나한테 한 건가요?"
"그냥... 나중에 글로 써주길 바랐어요."
잠시 침묵한 H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해피엔딩으로요."
'힘내세요'라는 평범하고 진심 어린 한 마디를 그녀에게 건넸고 우리는 역에서 헤어졌다.
'글을 쓴다'라는 의미가 좀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타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믿고 맡길 정도로, 충분한 스토리텔러가 될 수 있을까?'
두 달 뒤, 난 도쿄에서 돌아와 복학을 해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그해 여름에 월간지의 편집부에 정식으로 입사했고 가을에는 신촌 지역의 한국과 일본 대학생들을 모아 언어와 문화를 교류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렇게 도쿄의 YWCA에 보답하고 싶었다.
아직 H가 들려준 이야기를 글로 쓰지 못했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렀고 몇 차례 이사를 다녔지만 H의 이야기가 담긴 녹음테이프는 여전히 서랍에 숨죽이고 있다.
아직, 난 해피엔딩을 쓸 준비가 안 되어있다.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