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처럼 휘날리는 사람들

서울, 夢. 23화

by 노창범

7월 말에 의도치 않게 퇴사를 했다. 5년을 다닌 회사였다.


다행히 퇴사 전 시작해 놓은 일이 있어 새 직장을 구할 때까지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은 새 직장이 필요하다는 부담감은 낚시 추처럼 마음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 게 사실이다.


현재 하는 일이 글을 쓰는 일이다 보니 가끔, 첫 직장이었고 콘텐츠 기획이라는 직업의 시작이었던 잡지사에서의 6년이 떠오르곤 한다.

낚시 추 같은 불안과 그 시절의 추억이 어우러졌던 어느 여름밤 난 이 꿈을 꾸었다.



[2025년 8월 12일]


난 어렸을 적 살던 동네에 어른의 몸으로 서 있었다.


군 소재지의 작은 동네. 뒷산이 있고, 골목이 좁고,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그런 곳.

하지만 동시에 그곳은 지리산 중턱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잡지사에서 함께 근무하던 Y 선배가 나타났다.


"오랜만이네. 우리 집으로 가자."


선배는 앞서서 산길을 성큼성큼 걸었고 나는 그녀를 뒤따랐다. 그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산 중턱에 집 한 채가 있었다. 나무로 지은 2층인데 깔끔하고 모던했다.

선배는 이 집을 별장처럼 쓴다고 했다. 휴가 때 오기도 하고, 가끔 사람들을 초대한다고 했다.


"오늘 파티가 있어."


선배가 말했다.


"친환경 파티."


집 안에는 선배와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원을 이루어 서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그들은 굿을 준비하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재활용 용기에 담긴 음식들이 놓여 있었고, 벽에는 환경 보호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선배(들)는 조용히 움직이며 의식을 치렀다. 무엇을 위한 의식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구석에 서 있다 보니 곁에 잡지사의 다른 선배와 이사님, 편집장님이 보였다.

그들은 교정을 위해 오탈자를 찾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꼼꼼히 살펴봤다.


나는 주눅이 들었다. 이미 그만둔 지 오래인데,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무거웠다.

천재 같은 그들과 일할 때 평범한 난 열등감을 느꼈었다. 그들은 자신만만했고 나는 항상 불안했었다.



파티는 계속됐다.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바자회 준비는 어떻게 돼가?"


돌아보니 그 시절의 독자였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열정적이고 기대에 찬 목소리는 익숙했다.


"바자회, 올해도 하는 거지? 작년처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다른 독자들도 모여들었다. 모두 같은 것을 물었다. 바자회는? 새 기사는? 다음 호는?


"미안해."


내가 말했다.


"나 이제 안 해."


독자들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망한 것 같지도, 이해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집을 나왔다. 조금 위로 올라가니 또 다른 집이 보였다.


대나무로 둘러싸인 낡은 초가집이었다. ㄴ자형의 그 집의 동쪽을 향한 마루에는 한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은 천천히 목에 무언가를 걸었다. 그리고 마루에서 뛰어내렸다. 몸이 흔들렸다.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나는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때 다른 사람들이 연달어 나타났다.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그들도 노인처럼 목에 무언가를 걸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열 명. 그들은 노인과 같은 행동을 했다.


모두 웃고 있었다. 마치 유행하는 새로운 놀이를 즐기는 것처럼. 마루에서 뛰어내릴 때마다 그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죽음이 가벼워 축제 같았다.

끈에 매달린 사람들은 모두 새하얀 옷을 입고 빨래처럼 바람에 흔들렸다.


빨래처럼 휘날리는 사람들_삽화.png



선배들이 달려왔다.


"저거 수습해야 돼."


그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매달린 사람들을 끌어내렸다. 하지만 끌어내리는 족족 다른 사람들이 다시 올라갔다.


아까 본 독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처키 인형처럼 웃고 있었다.

그들도 목에 줄을 걸었다.


"재밌어 보여요."


한 독자가 말했다.


"우리도 할게요."


그들도 끈을 매고 마루에서 뛰어내렸다. 웃으면서. 즐거운 듯이.

산 위의 작은 집 주변에 수십 명이 매달려 흔들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들은 군무를 추듯 흔들렸다.

빨래처럼. 깃발처럼.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다 산을 내려왔다.

산을 다 내려왔을 때 손에 든 핸드폰이 진동했다.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올려다본 산 위에서는 여전히 축제가 한창이었다.


난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방 밖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거실에서 여전히 논문을 쓰고 있나 싶었다.


'왜 그 집이 나왔을까?'


그 시절, Y 선배는 지리산 중턱에 있는 한 초가집을 싼값에 계약하고 별장처럼 쓰겠다며 나와 후배들을 데려가 집정리를 시켰다. 정리를 마무리한 뒤 이어진 저녁 술자리에서 Y 선배는 고백처럼 털어놨다. 이 집에서 혼자 살던 할머니는 해가 뜨는 방향을 향해 목을 메 돌아가셨다고.


아침에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서 계셨을 그 마루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할머니는 얼마나 고독했을까."


그땐 20대의 젊디 젊은 나였기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할 감정이었지만...


그래서, 왜 그 집이 40대의 내 꿈에 나왔을까.

난 한참을 생각했다.



- fin



[당신이 꾼 꿈을 듣고 싶어요]


여러분의 꿈 이야기를 듣고, 브런치에 올리려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참고해 주세요.


https://brunch.co.kr/@nohchangbum/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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