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만으론 자전거가 움직이지 않는다

서울, 夢. 24화

by 노창범

며칠 전 저녁에 AI 커뮤니티 모임에 다녀왔다.


크고 작은 회사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래서인지 이번 모임의 주제도 'AI 시대의 리더십'이었다.


"AI가 중간 관리자의 업무를 대체하면, 중간 관리자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내가 물었다.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 뭘까요? 옳고 빠른 의사결정으로 일을 문제없이 진행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더 고달파질 거예요. 특히 워크플로우가 명확한 IT 업무가 더 그렇죠. 위에서는 더 빠른 결과를 요구하고, 아래에서는 AI와 경쟁해야 하니까요."


누군가 대답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테헤란로의 빌딩 숲 아래를 혼자 걸으며 생각했다.

지금은 당분간 혼자 일하고 있지만, 조만간 다시 리더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고.

잘할 수 있을까? 난 조금 두려웠다.


그날 밤, 난 이 꿈을 꾸었다.



[2025년 10월 31일]


나는 차를 몰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혁신도시?' 그런 이름이 떠오르는 곳이었다. 넓은 도로, 깨끗한 건물들, 하지만 사람이 없었다. 새로 조성된 지역 특유의 텅 빈 느낌. 완성되었지만 채워지지 않은 공간.


조수석에는 팀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얼굴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그중에서도 일을 잘하던 어느 팀원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팅 장소가 어디래요?"


팀원이 물었다.


"저기."


나는 멀리 보이는 건물을 가리켰다. 낮은 단독주택 같은 곳이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클라이언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음흉한 인상의 중년 남자였다. 옆에는 어린 여자 실무자가 앉아 있었는데, 표정이 맹했다. 아무 생각도 없는 것처럼.


"오셨군요. 앉으세요."


남자가 말했다.


우리는 테이블에 앉았다. 미팅이 시작됐다.


"일단 오늘 하루 종일 함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하루 종일요?"

"네. 할 얘기가 많거든요."


나는 팀원을 봤다. 팀원도 나를 봤다. 우리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팅은 계속됐고 남자 클라이언트는 시종일관 부당한 요구를 쏟아냈다.


말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원래 그가 해야 할 일을 우리에게 시켰다.


"이건... 저희가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닌 것 같은데요."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니, 할 수 있어요. 당신들이 전문가잖아요."


남자가 웃었다.

나는 팀원을 다시 봤다. 팀원은 불안해 보였다.

나는 어떤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지 고민했다. 단호하게 거절해야 할까? 아니면 중재를 시도해야 할까?


"일단... 검토해 보겠습니다."


나는 우유부단하게 대답했다.

남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흘렀다.

오후가 되고, 저녁이 됐다.


"저녁도 드시고 가세요."


남자가 말했다.


"아니,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준비했어요."


남자는 일어나 주방 쪽으로 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여기가 회사가 아니라 그의 집이라는 것을.

거실과 식당이 연결된 단독주택. 실내에 식물이 많았다.


불안했다.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요리를 위해 가스레인지를 작동시켰을 때 공기가 달라졌다. 가스가 새는 것 같았다. 보이지는 않지만 매캐한 냄새가 났다.


나는 스르르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땐, 밤 10시였다.


우리는 몇 시간을 잃어버린 걸까?

나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옆을 보니 팀원도 쓰러져 있었다.

남자는 주방에서 여전히 저녁을 만들고 있었다. 도마에 무언가를 썰고 있었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일어났네요."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일어나려 했지만 힘이 없었다.


"부당합니다."


내가 말했다.


"뭐가요?"

"이건... 이건..."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무엇이 부당한지 설명할 수 없었다.

모든 상황이 부당했지만 어떤 말과 행동으로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할지 몰랐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요리를 계속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둘러봤다.


자전거 바퀴 두 개가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자전거 바퀴_삽화.png


타이어, 스포크, 림. 완전한 바퀴였다. 하지만 연결할 프레임이 없었다. 안장도, 핸들도, 페달도 없었다.


그저 두 개의 바퀴.


옴짝 달짝 못하는 그 두 개의 둥근 것들을 보며 난 슬픔을 느꼈다.


팀원은 여전히 쓰러져 있었다. 나는 그녀를 깨우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여전히 요리를 하고 있었고 바퀴는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꿈에서 깼다.




새벽 4시였고 난 한참 동안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생각해 보니 꿈에 나왔던 팀원은 오래전 내 잘못된 결정으로 1년 간 무지막지한 프로젝트를 함께하던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젝트를 마친 직후 그녀는 떠났고, 꿈속의 자전거 바퀴처럼 남아있던 나 역시 얼마 뒤 회사를 나왔다.


그 경험은 한동안 날 트라우마에 가두었다.


'이번엔 달라야겠지?'


난 노트북을 켜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리기 위해 휘적휘적 커피머신을 향해 걷는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이었다.



- fin




[당신이 꾼 꿈을 듣고 싶어요!]


여러분의 꿈 이야기를 듣고, 브런치에 올리려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참고해 주세요.


https://brunch.co.kr/@nohchangbum/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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