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夢. 25화
그 회사 사업부장으로서의 마지막 주였다.
한 팀이 통째로 정리해고를 당하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분야를 공략하기 위해 어렵게 구성원들을 모은 팀은 몇 달째 새 일을 수주하지 못했고 그 팀 결국 사업부장인 내 의사에 상관없이 더 높은 곳으로부터 해산 선고를 받았다.
창업주와 임원들에게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지친 나는 관찰자처럼 상황을 지켜보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결심과 실행 사이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매일매일이 너무 피곤했다.
그런 나날의 어느 밤, 난 이 꿈을 꾸었다.
2019년 6월 17일.
사실 만주국이 어떤 곳인지 자세히 몰랐다. 그저 내가 보고 있는 곳이 당연히 만주국이라고 알고 있었다.
1945년 여름 어느 날. 전지적 관찰자의 시점으로 나는 거리를 떠돌며 기웃거리고 있었다.
거리에는 신문지가 날리고 있었다.
읽을 수 없는 문자로 쓰인 신문지들. 바람이 불 때마다 신문지들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땅으로 떨어졌다. 아무도 줍지 않았다.
시계탑은 3시 15분에 멈춰 있었지만 아무도 고치러 오지 않았다.
기차역 앞을 지났다. 플랫폼은 텅 비어 있었다. 갈색 가죽 가방 하나만 놓여 있었다.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기차는 오지 않았다.
나는 벤치에 앉아 손목의 시계를 봤다. 오후 2시인데 해는 이미 기울었고 하늘에는 두 개의 달이 떴다.
하나는 원래 있던 것, 하나는 언제부턴가 생긴 것. 작고 일그러진 달.
사람들은 누구도 그걸, 아니 낮에 달이 보인다는 사실조차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니, 사람들이 있긴 한 걸까?'
거리를 걸으며 사람을 찾아봤다. 가끔 사람의 그림자를 봤다. 하지만 몸은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만 건물 벽을 따라 움직였다.
역 대합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작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만 한 크기. 그들은 공기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손으로 공기를 비비고, 늘리고, 둥글게 만들었다.
투명한 번데기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들을 봤지만, 그들은 나를 보지 않았다.
광장 한가운데서 누군가 그것들을 태우고 있었다. 높이 쌓인 서류 더미. 불길이 하늘로 치솟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불을 지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서류는 스스로 타고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열기가 느껴졌다. 서류 한 장이 바람에 날려 내 발 앞에 떨어졌다. 반쯤 탄 종이.
읽을 수 있는 글자는 단 하나뿐이었다.
'해산'
건물들이 비어 가고 있었다.
관청 건물, 은행, 학교. 문이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봤다. 책상과 의자는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없었다.
찻잔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아직 따뜻했다.
벽시계는 똑딱똑딱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가지 않았다. 3시 15분에 멈춰 있었다.
창밖을 봤다. 거리에는 여전히 신문지가 날리고 있었다. 두 개의 달이 떠 있었다. 작은 사람들이 투명한 번데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철수하고 있었다.
트럭 행렬이 도시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느린 속도로. 마치 장례 행렬처럼.
나는 길 한편에 서서 그들을 봤다. 군인들은 앞만 보고 갔다.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지막 트럭이 지나갔다. 그리고 정적이 왔다.
바람도 멈췄다. 신문지도 떨어졌다. 시계탑도, 벽시계도 소리를 멈췄다.
나는 광장 한가운데 서 있었다. 혼자.
'시대의 소멸은 이렇게 조용히 오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서 있었다.
'탁. 탁.'
규칙적인 소리였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다.
그러다 하늘의 두 달을 봤다. 작은달이 진동하고 있었다. 마치 북채를 맞은 북의 가죽처럼.
'탁. 탁.'
소리가 점점 커졌고 그 소리에 나는 깼다.
아니, 깬 것 같았다.
나는 거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시계를 봤다. 새벽 4시였다.
TV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
'탁. 탁.'
규칙적으로.
나는 일어나 TV를 봤다. 화면은 꺼져 있었다. 하지만 소리는 계속 났다.
나는 TV에 다가가 손을 뻗어 만져봤다. 차갑고 조용했다.
특별한 반전은 없었다. TV는 다시 침묵했다.
너무 피곤했다. 다시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때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둥.'
소파 중간 부분을 누군가 아래로부터 두드리는 느낌.
나는 퍼뜩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내가 다리를 떨다가 발바닥이 소파를 쳤나?'
나는 그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 다리를 구부려 소파를 쳐봤다.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럼? 누군가 정말로 소파 아래서 두드린 것인가?
나는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거실을 걸어 방으로 향했다.
'누군가 있더라도 그는 그저 내 잠을 방해하는 존재일 뿐.'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너무 피곤했다.
만주국의 패망보다, TV의 탁탁 소리보다, 소파를 두드리는 존재보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잠이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그 꿈을 기억했다.
만주국. 두 개의 달. 작은 사람들, 군대의 철수, 탁탁, 둥, 두 개의 소리, 그리고 소파의 아래.
가만... 10년 전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떠올랐다.
꿈의 많은 요소들이 그 책과 겹쳤다.
왜 지금?
무의식의 경고인가?
패망하는 회사의 사업부장이라서?
하지만 나는 너무 피곤해서, 유령보다 잠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나는 회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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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참고해 주세요.
https://brunch.co.kr/@nohchangbum/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