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꿈] 당신 안의, 한 마리 누에

서울, 夢. 30화

by 노창범

당신은 어젯밤 어떤 꿈을 꿨나요?

서울에서 생활하고 꿈을 꾸는 137만 명의 평범한 40대 중 한 명인 저의 스물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꿈을 들려드립니다.




2023년 여름, 나는 매일 새벽 4시마다 일어났다.


브런치에 첫 소설을 연재하기 위해서였다.

미래의 아들을 주인공으로 한 11편짜리 이야기인 <아들, 네가 스물일곱이 된다면.>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글을 쓰려 책상 앞에 앉으면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그동안 썼던 문장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야기가 내 안 어딘가에 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걸 꺼내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소설은 마지막화의 중반부에서 멈춰있었다.

그러던 8월의 어느 밤, 이런 꿈을 꿨다.



[2023년 8월 22일]


눈앞에 세기말의 세상이 펼쳐졌다.


내가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곳에 바다가 있었다. 황망한 바다.

그리고 가운데 떠 있는 쓰레기섬.


나는 플라스틱 조각, 부서진 목재, 녹슨 철판, 정체를 알 수 없는 잔해들이 떠다니며 엉켜 붙어 만들어진 그 섬을 헤맸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발아래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세상은 바다와 쓰레기섬,

그리고 나와 몇몇 생존자가 전부였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고난이 있다."


누군가 말했다. 세상의 법칙이 그렇다는 걸 난 이미 알고 있었다.


세 가지 고난이란, '벌레', '바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명확하지 않았다.


난 갑자기 물속을 헤매고 있었다.

허우적거리며 누군가를 쫓고 있었고 때론 쫓겼다.

물은 탁했고 차가웠다. 힘겨운 발밑으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플라스틱인지 생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쓰레기섬 위로 다시 올라와 서 있었다.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피부의 염증. 고름이 가득 찬 종기.

어떤 사람은 팔을, 어떤 사람은 다리를, 어떤 사람은 목을 부여잡고 신음했다.

그들의 손 아래 피부는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를 걸었다.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을.



그때 누군가를 발견했다.


정확히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쓰레기섬 모퉁이에 쓰러져 있었다.

다가가 보니 그의 피부에 무언가가 돌출되어 있었다.

벌레... 누에를 닮은 하얀 벌레, 아니 그냥 큰 누에였다. 그것은 그의 피부 속으로 반쯤 파고들어 있었다.

그리고 몸을 꿈틀거리며 피부 속, 더 깊숙이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가위를 가져와!"


내가 소리쳤다. 잠시 후 핀셋과 가위가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누가 언제 가져온 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누에의꿈1.png


나는 그 사람의 피부를 들여다봤다.

벌레가 더 깊이 파고들고 있었다.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검붉게 변하고 있었다.


핀셋으로 벌레를 잡아당겼다. 빠지지 않았다.

가위를 들었다. 그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람의 몸에 가위질을 해도 될까?'


피부를 자르면 피가 날 것이다. 그가 아플 것이다.

하지만 벌레를 빼내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나는 망설이다 가위를 그의 피부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살짝만.


"가위를 가져와!"


다시 소리쳤다. 이미 손에 가위가 있었지만 급박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새벽 4시였다.

침대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집어 들고 검색창에 타이핑했다:


'누에의 몸 구조'


화면이 녹색잎 위의 흰 누에 이미지들로 뒤덮였다. 그중 한 이미지를 골라 확대해 누에의 다리 구조를 유심히 살펴봤다.

다행히 갈고리 형태의 구조는 없었다.

난 여전히, 꿈속의 그에게서 최대한 고통 없이 누에를 빼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난 거실로 나와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노트북 화면에 어제까지 써왔던 소설의 마지막화가 떴고, 커서가 깜빡였다. 나는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세기말 이후의 세상이었다. 세상은 바다와 쓰레기섬 그리고 몇몇의 생존자가 전부였다.
윤재는 쓰레기섬을 헤매다 괴로워하는 지인을 발견했는데, 그의 피부에는 누에를 닮은 벌레가 반쯤 파고들어 있었다.

"가위를 가져와!"

윤재는 소리쳤다.


나는 마지막화에 몇 분 전에 꿨던 꿈 이야기를 집어넣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픽션은 아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여지를 남기며 마무리되었다.




나는 다시 <서울에서, 난 이상한 꿈을 꾼다> 이야기를 이 '누에의 꿈'으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

이것이 여든여섯 개의 내 실제 꿈 메모에서 꺼낸, 스물여덟 번째 꿈이다.


그동안 난 꿈속에서,


- 발가락 없는 외국인을 만났다.

- 이하늬에게 그림을 배웠다.

- 악마가 닭의 머리를 건넸다.

- 쥐포 면 파스타를 먹었다.

- 카즈하가 우리 팀 막내로 들어왔다.

- 물속에 잠긴 궁녀를 발견했다.

(하략)


'누에의 꿈'을 마지막으로 택한 건, 이 꿈들이 마치 내 안에 머물던 누에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새벽 4시에 일어나 내 이야기를 꺼내는 작업은
꿈속에서 가위를 가지고 몸 안의 누에를 꺼내는 일처럼
망설여지고 떨리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힘겹게 꺼내놓은 누에는,
'글쓰기'라는 변태의 과정을 거쳐
'이야기'라는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

누에의꿈2.png


'사부작사부작사부작'

오늘 밤도 누에는 내 잠결에 이야기의 고치를 짓고 있다.


잠에서 깬 나는 메모지와 펜을 들어,

'사각사각사각'

누에를 세상에 꺼낸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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