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10월 29일의 이태원.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와 이태원을 걷다

by 노창범

2022년 12월 24일, 저녁


둘째는 뾰로통해있었다. 아이에게 '크리스마스이브'의 외출은, '포근하고', '밝고', '편하고', '맛있고', 무엇보다 '가까운', 그런 형용사들이 붙어있어야 했을 것이다. 얼른 다녀와서 게임을 해야 했으니까.


"그런 곳을 갈 건데, 그전에 아빠가 오늘 너랑 같이 꼭 들르고 싶은 곳이 있어서 말야."


B급아빠와 아내, 그리고 둘째는 지하철을 타고 녹사평역을 향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혜화, 명동 등 크리스마스이브의 이벤트가 벌어지는 역에서 우르르 내리고 또 올라탔다.

시간은 저녁 7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2022년 11월 29일, 저녁


B급아빠는 오랜만에 들른 독서모임에서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라는 책을 만났다.


그날은 멤버들이 한 해 동안 읽었던 책 중에서, '다른 이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가져와 소개하기로 한 날이었다. 황작가가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를 꺼내 소개했다.



KakaoTalk_20221212_065950587.jpg


"동네에서 책 모임을 하는데 돌아가면서 호스트를 해요. 제가 호스트를 할 때 아니 에르노의 책을 선정했어요. 나중에 모임에 경사가 났죠. 10월에 그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거든요. 우리 모임이 노벨 문학상 작가를 배출(?) 한 거예요."


드라마를 쓰는 황작가는 작가 소개를 덧붙였다.


"이 작가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써요. 그런데 개인적인 경험으로서가 아니라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사료로서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봐요. 제가 픽션을 쓰는 이유는 이렇게까지 현실을 낯낯이 분석하고 벼려낼 자신이 없어서예요. 차라리 픽션을 통해 현실을 재구성하면서 거기서 현실을 해석하고 싶고, 나를 알고 싶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현실은 픽션보다 더 힘들고 어렵고 모호하거든요."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는 지하철 안에서 B급아빠는 책을 펼쳐 들었다.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됐다.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
퐁투아즈 병원에서 운영하는 노인 요양원에 들어간 지 두 해였다. 간호사가 전화로 알려 왔다.
「모친께서 오늘 아 침 식사를 마치고 운명하셨습니다.」
10시쯤이었다.’


그러고 나서 매우 객관적이고 건조한 문체로 주인공이 어머니의 장례를 준비하는 과정과 풍경, 그리고 마주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사막 같은 문장들 사이에서 B급아빠는 한 죽음, 아니 '죽음들'을 떠올렸다. 죽음에 대해 이런 문장들로 끝내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었다.


B급아빠는 구글 캘린더를 열어 세 시간 정도,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을 확인했다. 바로 다음 날 오전이었다.



2022년 11월 30일, 오전


B급아빠는 핸드폰을 열어 날씨와 뉴스를 살폈다.


* -3~-7. 체감온도 –8 ‘한낮에도 찬 바람 불며 강추위 계속’

* 현재 구글 주요 뉴스 ‘커지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 모임' "정부가 정쟁으로 몰아간다" - 한겨레


B급아빠는 지하철에 있었다. 이태원역으로 가는 길이 순탄치는 않았다. 지하철 노조의 파업이 진행 중이었다.


'지하철이 정상 운행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바쁜 분들은 다른 운송 수단을 이용...'


20221130_112641.jpg


4호선을 주로 이용하는 B급아빠는 출근할 때마다 전국장애인차별연대 시위가 진행되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생각해 보면 '지하철을 타고 정해진 시간 동안 이동해 출근한다'라는 일상의 시간을 지킬 수 있는 빈도가 많이 낮아졌다. 변수가 많은 세상이다. 언젠가부터 불안정한 상태가 일상이 되었다.


B급아빠는 조용히 책을 펼쳤다.

20221130_111739.jpg


흰색 작업복 상의를 걸친 직원이 전화를 하고 있다가 우리에게 복도에 앉아 있으라는 손짓을 했다. 우리는 벽을 따라 줄지어 놓인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맞은편 화장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나는 한 번 더 어머니를 보고 싶었고, 가방 안에 넣어 온 꽃 핀 마르멜로 가지 두 개를 가슴에 올려놓아 주고 싶었다.
우리는 관을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지 아닌지 알지 못했다.


이태원 역에 도착했다. B급아빠는 책을 덮고 문을 나섰다.

20221130_112351.jpg


이태원역 1번 출구, B급아빠는 지상과 지하를 잇는 계단 앞에 섰다. 양 옆으로 떠난 이들을 배웅하는 메모지들이 마치 하늘을 향하는 새떼들처럼 무리 지어 위를 향하고 있었다. B급아빠는 걸음을 멈추고 메모들을 살폈다.

20221130_112925.jpg


이 메모들은, 누구를 특정하지 않고 희생자 모두를 향한 작별 인사들이었다.


'좋은 데서, 안전한 데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나와 같은 10대, 20대 친구들아. 나만 살아서 미안하다. 부디 그곳에서는 너희들의 꿈을 펼치길 바라.'

'너무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내는 동안 좋은 시간이었길 바랍니다. 편히 쉬세요. 명복을 빕니다.'

'다음 생에는 더 행복하자.'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가시고 그곳에서도 행복하세요.'


20221130_113054.jpg
20221130_113015.jpg
20221130_112948.jpg
20221130_113028.jpg


B급아빠는 사고가 있었던 그곳, 해밀톤 호텔 골목길에 바로 들어가진 않았다. 그곳엔 많은 수의 경찰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왠지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 할 듯한 불편함이 있었다.


먼저 골목길의 뒤편 가게들을 걸어보았다. 분명 어느 곳보다도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었겠지만 지금은 마치 시간의 무덤 같은 적막이 흘렀다. 종종 '개인 사정상 휴업을 한다'는 메모를 붙여 놓은 가게들도 눈에 띄었다.

20221130_113245.jpg
20221130_113609.jpg
20221130_114031.jpg
20221130_113315.jpg


골목 뒤편에서 해밀톤 호텔 옆, 현장을 지켜봤다.

한동안은 골목길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은 경찰들뿐이었다. 한 경찰이 메모지들 앞에 서서 물끄러미 내용을 읽고 있었다.


"여기, 허락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나요?"


한 행인의 질문에 경찰이 고개를 저으면서 그게 신호탄이 되어 한두 명씩 행인들이 골목길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이곳이 목적지인 사람들 같았다. 묵념을 하는 사람도 있고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다. 10여 분 동안 한 자리에서 꼼짝 않고 벽을 바라보는 여성도 있다. 한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던 B급아빠도 골목길로 걸음을 옮겼다.


이태원역 1번 출구 계단의 메모와는 달리 이곳은 피해자의 유가족과 지인들의 메모가 붙어 있었다. 한 명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메모들이 다수일 경우 그 메모들은 테이프로 테두리를 둘러 한 사람의 영역임을 표시해 놓았다.


'어디서 봤더라? 아... 납골당.'


이 모습은 납골당의 풍경과 닮았다. 유골함 앞 유리에 포스트잇으로 추모와 안부의 메모를 붙여 놓는. B급아빠는 서른아홉이 되던 해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의 납골당을 매년 찾는다. 그래서 익숙한 모습니다. 다만, 납골당에는 유골함이라는 실체가 있고 이곳엔 '그 사람이 이곳에 있었다'는 추상(追想)만 남아있다.


B급아빠는 오랫동안 서서 메모를 하나하나 읽는다.


'숨 편히 쉬고 훨훨 조심히 올라가. **야.'

'많이 답답했을 테니 나중에 만나면 우리 포옹 대신 손 꼭 잡자. **야, 잘 가. 사랑해, 이놈아.'

**아, 너한테 편지 쓰는 게 되게 오랜만인 거 같은데 좀 더 자주 써줄 걸 그랬다. 거긴 좀 어때? 춥지 않니?... 나 너 마지막까지 보고 왔는데 진짜 힘들더라. ... 예쁜 별이 된 **야. 거기선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잘 지내다가 또다시 내 친구로 환생해 줘. 우리 다음 생에도 만나자.'

'**야. 얼마나 무서웠니? 얼마나 아팠니? 세상에서 제일 예쁘게 키워준 너희 아빠, 엄마, 널 가슴에 묻고 어떻게 살아가라고 그렇게 허망하게 가버렸니. ... 겨우 이태원이 너의 마지막 소풍길이 되다니. 미안하다. 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우리 어른들이 잘못했다. ...'


왜 그 경찰과 여성이 이 앞에 한참을 멈추어 서 있었는지 B급아빠도 공감할 수 있었다.

20221130_113959.jpg
20221130_121505.jpg
20221130_121627.jpg
20221130_121533.jpg
20221130_121702.jpg


B급아빠는 골목길 맞은 편의 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으로 골목이 보였다. 이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고 있다.

카페라테를 한 잔 주문해 서늘한 속에 온기를 전했다. 그리고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를 다시 펼쳤다.

20221130_121026.jpg
20221130_115058.jpg


그 주 내내 아무 데서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벌어졌다.
잠에서 깨어나다가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곤 했다. 어머니가 꿈에 나왔고, 죽었다는 것을 빼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무거운 꿈에서 빠져나 오기도 여러 번이었다. 생활에 필요한 일들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장보기, 식사, 세탁기로 빨래 돌리기 종종 어떤 이유로 그 일들을 해야 하는지 잊어버렸고, 야채 껍질을 벗기고 나서 그다음 동작을 연달아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는, 한참 애써 생각을 해보고 나서야 물에 씻었다. 책 읽기가 불가능했다. 한 번은 지하실에 내려갔는데 어머니의 여행 가방이 거기 있었다. 가방 안에는 어머니의 지갑과 여름 스카프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입을 벌린 가방 앞에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정부에서 제공해 준 분향소에는 사진도 이름도 없다고 했다. 유족들은 충격과 슬픔에 당장은 그런 이상한 상황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아니 에르노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3주 정도가 흐르고 나서야 어머니의 유품에서, 거기에 깃들인 서사들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가 떠났음을, 하지만 그렇게 보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책의 이 부분을 읽었을 때 B급아빠는 이게 유족들의 현재일 거라 생각했다. 현실 역시 3주에서 4주 정도, 시간이 흘렀다. 이제 슬픔의 감정은 강한 물음표로 바뀔 것이다.


"왜 우리 아이들이, 친구가 이렇게 떠나야 했을까?"


B급아빠는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코끝이 시큰했다. 그날은 현재 온도보다 체감 온도가 낮은 날이었고, 이곳은 그 체감 온도보다도 마음의 온도가 낮은 곳이었다.



다시, 2022년 12월 24일, 저녁


분향소는 녹사평역 3번 출구에서 나와 걸어서 갈 수 있었다.


어둡고 한적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횡단보도 너머로 하얀 천막들이 보였다. 방문객은 거의 없었고 유족과 자원봉사자들이, 필요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B급아빠는 아내, 그리고 둘째와 분향소 천막에 들어갔다. 한 편에 서있던 이들이 하얀 국화 한 송이를 건넸다. 사진이 있는, 혹은 빈 액자들이 줄지어 있었다. 사진 속 이들은 너무 젊고 어려서 까만 테두리 안에 있는 게 어색했다. 둘째도 아빠, 엄마를 따라 서서히 자리를 옮기며 사진과 메모를 유심히 봤다.


B급아빠는 들고 있던 꽃을 사진 앞에 있던 조각 케이크 옆에 놓았다. 사진만 볼 때는 온갖 생각에 뒤엉켜 멍했다. 하지만 사진 앞에 놓인 메모들을 읽으며 먹먹해졌다. 메모 속엔 떠난 이들의 인생에 대한 단서가 있었다. 그들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이들이었다.


B급아빠는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를 떠올렸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둘러싼 건조한 묘사를 마치면, 어머니의 삶에 대한 긴 서사가 펼쳐진다. 시대와 맞물려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삶을 영위했던 존재감 있던 어머니의 삶, 그리고 서서히 끊어져 가는 세상과의 고리. 여기 150여 명의 고리는 너무 빨리, 그리고 급하게 끊겼다. 그들의 삶을 유추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단서는 겨우 그들을 보내며 적은 지인들의 짧은 이 작별인사들 뿐이다.


KakaoTalk_20230116_013120425.jpg 2022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의 시민 합동 분향소


천막을 나와 떠나려는데 또 다른 가족이 천막에 들어온다. 역시 부부와 아이가 함께였다. B급아빠는 그 가족에 왠지 감사한 마음이 들어 가볍게 고개를 숙었다.


지하철역으로 걷는데 둘째가 묻는다.


"왜 하필 크리스마스이브에 여기에 온 거야?"


"응, 크리스마스이브인데 저 형아, 누나들이 쓸쓸할까 봐. 넌 어땠어?"


"잘 모르겠어. 어떤 기분인지. 근데 메모들이나 간식들 놓인 거 보니 기분이 이상해."


"너도 그랬구나. 아빠도 그래. 아빤 그 메모와 간식들 덕분에 형아와 누나들이 이 세상에 살아있던 사람이란 게 실감이 나더라고. 그래서 더 뭉클했고. 이런 일이 없었다면 저 많은 사람들, 오늘 메리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었겠지? 우리도 좀 더 밝고 맛있는 곳에 있었을 거고."


"응..."


"그럼 작별인사를 하고 가자."


"메리 크리스마스!"


- fin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포켓몬빵, 초코파이 바나나와 데이터, 그리고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