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응응 응~"
며칠 전 네가 샤워를 하며 흥얼거리는 콧노래를 가만히 들어봤어.
'어, 익숙한데, 뭘까? 누구 노래였지?'
너무너무 궁금해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너에게 그 곡의 정체를 물었지.
"동방신기의 <풍선>이야."
아빠는! 뉴진스나 르세라핌의 노래를 듣는데 고딩 아들은 동방신기의 노래를 듣고 있다니!
우리 집에서는 아이돌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거 같더라.
네가 좋아하는 동방신기는 소위 2세대 아이돌, 2000년대 중반에 활동하던 그룹이고 아빠가 듣는 아이돌은 4세대, 즉 2020년대 이후의 아이돌이야. 무려 20년 차이가 나는 거지.
"아들 너 무슨 노래 들어?" "동방신기! 아빤" "뉴진스 신곡"
아빠가 어렸을 땐, 지금 아빠 또래의 어른들이 트로트를 즐겨 들었어.
아빤 궁금했단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트로트를 들을까?
아니더구나. 계속 '이 시대의 음악'을 듣고 있어. (다행히!)
말 나온 김에, 오늘은 '아이돌', 그중에서도 걸그룹에 대한 아들의 상식을 넓혀주도록 할까?
1. 걸그룹 '랭킹'의 종류
걸그룹에게 있어 랭킹은 중요하지. '인기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정량적 근거'로 광고 같은 수익과 직결되니까. 그럼 랭킹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볼까?
* 음원 랭킹
먼저 '멜론'이나 '플로' 같은 음원 서비스의 실시간 랭킹이 있지. 스트리밍 수와 다운로드 수가 더해져서 랭킹이 매겨지는데 다운로드의 비중이 좀 더 높대. 40% 대 60% 정도?
넌 매일 동방신기의 곡들을 스트리밍 하면서 그들의 곡들이 랭킹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유지'시켜 주고 있는 거지. 설마 다운로드도?
* 방송 랭킹
TV 음악 방송 순위도 있어. 음악방송은 월요일을 빼고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하나씩, 총 6개의 방송이 있는데 지상파(3사, KBS '뮤직뱅크', MBC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 방송이 케이블(3사, MNET '엠 카운트다운', MBC M '쇼 챔피언', SBS M '더 쇼) 방송보다 좀 더 영향력과 공신력이 있다고 볼 수 있어.
다양한 음악방송들
방송 랭킹에는 음원 랭킹보다 더 많은 데이터가 들어가지. 음원 서비스에서 집계된 데이터에 더해 SNS, 방송 점수, 사전 투표, 문자 투표 등이 더해져 랭킹이 매겨진단다. 방송별로 점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의 비중은 조금씩 다르지.
그리고 종종 몇 주 동안 연달아 1위를 하는 메타히트곡이 나오기도 하는데, 너무 오래 1위에 머물고 있으면 '명예의 전당'으로 보내며 랭킹에서 제외해 버린단다. 새 곡들에도 기회를 줘야 하니깐.
* 빅데이터 기반 랭킹
아빠는 아이돌 랭킹에 관심이 많은데, 팬들의 '으쌰으쌰'한, 편견 어린 에너지가 듬뿍 반영된 음원이나 방송 랭킹보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랭킹을 좀 더 신뢰하지. 그중에서도 '한국기업평판연구소'라는 딱딱한 이름의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집계하는 '걸그룹 브랜드 평판'을 꼭꼭(엥?) 챙겨보고 있어.
왠지 무심한 이름 덕에 '여기선 뭔가 객관적인' 랭킹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거든.
하지만 이 랭킹, 상업적인 영향력은 전혀 없지.
2. 빅데이터로 분석한 2024년 4월 걸그룹 랭킹
그럼 가장 최근인 4월 걸그룹 랭킹을 한 번 보도록 할까? 빅데이터 랭킹으로 말야.
(이 정도는 알아둬야 친구들과의 '보통의 대화'에 낄 수 있지 않겠니?)
2024년 4월 걸그룹 브랜드 평가 결과 (출처 : 한국기업평판연구소)
한국기업평판연구소는 걸그룹 브랜드평판 빅데이터 분석을 위해 2024년 3월 14일부터 2024년 4월 14일까지 측정한 브랜드 빅데이터 42,876,755개를 분석, 걸그룹 브랜드에 대한 참여지수, 미디어지수, 소통지수, 커뮤니티지수로 브랜드 평판지수를 측정.
2024년 4월 걸그룹 브랜드평판 빅데이터 분석 결과는 아래와 같음.
1위, 아일릿 (윤아, 민주, 모카, 원희, 이로하)
참여지수 507,908 미디어지수 838,767 소통지수 962,200 커뮤니티지수 1,039,036으로 브랜드평판지수 3,347,912로 분석됨.
2위, (여자)아이들 (미연, 민니, 소연, 우기, 슈화)
참여지수 111,044 미디어지수 669,223 소통지수 862,822 커뮤니티지수 1,429,420으로 브랜드평판지수 3,072,509로 분석됨.
지난 3월 브랜드평판지수 3,870,855 대비 20.62% 하락.
3위, 아이브 (안유진, 가을, 레이, 장원영, 리즈, 이서)
참여지수 217,804 미디어지수 667,783 소통지수 490,780 커뮤니티지수 1,267,950으로 브랜드평판지수 2,644,317로 분석됨.
지난 3월 브랜드평판지수 2,964,119 대비 10.79% 하락.
4위, 블랙핑크 (지수, 제니, 로제, 리사)
참여지수 191,256 미디어지수 772,267 소통지수 522,649 커뮤니티지수 1,115,150으로 브랜드평판지수 2,601,322로 분석됨.
지난 3월 브랜드평판지수 2,633,573 대비 1.22% 하락.
5위, 베이비몬스터 (루카, 파리타, 아사, 아현, 라미, 로라, 치키타)
참여지수 261,800 미디어지수 611,603 소통지수 773,353 커뮤니티지수 927,795로 브랜드평판지수 2,574,551로 분석됨.
지난 3월 브랜드평판지수 1,037,745 대비 148.09% 상승.
6위, 트와이스
7위, 뉴진스
8위, 레드벨벳
9위, 오마이걸
10위, 소녀시대
11위, 키스오브라이프
12위, 르세라핌
13위, 에스파
14위, 에이핑크
15위, 엔믹스
여기서 '참여지수', '미디어지수', '소통지수', '커뮤니티지수'라는 네 개의 지수가 나오지? 각각을 설명하자면 요렇단다.
- 참여지수 :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접근평가지표로 소비자가 브랜드에 영향을 미치는 데이터 지수
- 미디어지수 : 브랜드에 대한 미디어들의 이슈분석지표로 브랜드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도, 긍부정평가 데이터 지수
- 소통지수 :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소통평가지표로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소통량, 긍부정평가 데이터 지수
- 커뮤니티지수 : 브랜드의 소비자 확산 평가지표로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데이터의 확산량, 소비자 채널에서의 이슈 데이터 지수
이런 지수의 의미를 이해하고 1위 브랜드인 아일릿을 분석해 보자면,
다른 걸그룹에 비해 커뮤니티 지수는 낮지만 소통, 미디어, 참여지수가 높아 1위를 했지. 즉 소비자(팬)들 사이(SNS, 커뮤니티 등)에서 상대적으로 공유나 이슈가 되는 건 적었지만 음원을 듣거나 언급은 많이 됐다고 볼 수 있지. 게다가 미디어들에서 긍정적인 뉴스를 많이 올린 것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어.
아무래도 데뷔하는 걸그룹이다 보니 홍보를 많이 한 덕에 올라오는 뉴스나 소비자 콘텐츠는 많지만 활발히 공유되는 단계는 아닌 거지.
아일릿은 <마그네틱>이란 곡으로 처음 랭킹에 진입하면서 바로 1위를 했어. 또 지상파 음악방송인 <음악중심>에서도 1위를 차지했지. 시간 되면 무대 영상을 한 번 볼까?
그래도 1위를 했으니 아일릿에 대해 좀 더 설명을 하자면 이 그룹은 JTBC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알유넥스트>에서 결성돼 2024년 3월 25일 데뷔한 '빌리프랩' 소속의 5인조 다국적 걸그룹이야. 소속사인 빌리프랩은 하이브의 자회사지.
3. 시끌벅적 하이브, 왜?
그런데 하이브? 요즘 많이 들리는 회사 이름이지? 이런 뉴스 타이틀로 말야.
이 뉴스들에 등장하는 민희진 대표는 걸그룹 뉴진스의 소속사인 '어도어'의 대표야. 어도어는 하이브의 자회사라 할 수 있지. 하이브는 바로 BTS(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건 알고 있지? 그럼 왜 자회사가 본사랑 싸우는 걸까? 먼저 하이브란 회사의 구조를 한 번 살펴보자꾸나. (오늘 많이 나가는구나... 헉헉)
하이브 주요 종속기업 현황 (출처 : 하이브 2023년 사업보고서)
하이브는 원래 방시혁이라는 유명 제작자가 대표로 있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의 기획사였는데 2020년 상장하면서 이름을 '하이브'로 바꿨어. 그러면서 '플랫폼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
플랫폼이라는 건, 다양한 요구사항을 가진 여러 그룹들의 중간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와 바라는 욕구가 맞아떨어지도록 조정하고 운영하는 역할을 하는 형태를 말해. 하이브의 경우를 보자면 개성 있는 자회사(레이블)들의 아이돌을 통해 다양한 음악적 취향을 가진 팬들을 만족시키는 플랫폼이지.
그럼 하이브라는 플랫폼은 어떻게 돈을 벌까?
다양한 개성을 가진 자회사들이 있다는 건, 그만큼 소속 아이돌들이 다양한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거야. 즉 경쟁사보다 더 폭넓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거지. 그리고 하이브 플랫폼 안에는 위버스라는, 팬을 이용해 돈 버는 자회사가 존재하지. 아주 전략적이야~
그런데 자회사 중 한 곳인 '어도어'가 들고일어난 거지.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오랜 시간을 들여서 걸그룹 뉴진스를 작년에 데뷔시켰는데 금세 최고 여자 아이돌 그룹이 돼버렸어. 민희진 대표의 독특한 콘셉트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빛을 발한 거지.
그런데 민희진 대표는 뉴진스의 데뷔 시기가 하이브 플랫폼 내 다른 걸그룹보다 늦춰졌다든지, 안무와 콘셉트를 도용당했다는 억울함을 호소했고, 하이브에서는 그녀가 뉴진스의 굉장한 인기에 욕심을 내서 자회사로서의 계약을 무시하고 독립을 하려 한다, 혹은 엄청난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며 공격하고 있어.
4. 과정과 결과물
누군가는 이 상황을 '사업'과 '예술'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보더구나.
아빠가 사회생활을 하며 절감한 건 계약이라는 건 생각보다 강력한 구속력을 갖는다는 거야. 그래서 합의하에 계약을 맺고 일을 시작한 민희진 대표가 지금 이러는 건 사업적 관점에서 잘못한 거지.
하지만 민희진 대표가 뉴진스를 통해 만들어 낸 예술적 가치가 크고 그녀가, 혹은 뉴진스가 하이브로부터 받은 대우, 혹은 옴짝 달짝 못하는 계약이 억울할 만하다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아.
우리는 결과물들을 접하고 살고 있지. 네가 매고 다니는 가방도, 네 교복을 빨아주는 세탁기도 결과물이야. 동방신기의 <풍선>도 뉴진스의 <디토>도 결과물이지.
우리, 즉 소비자가에게 필요한 건 결과물일 뿐, 그 과정까지 굳이 알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세상의 진실은 그곳에 있어.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인생은 그 과정 속에 살아 있거든. 이번 상황은 그 '과정'이 여과 없이 노출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네.
이런 아웅다웅한 상황 속에서도 뉴진스의 신곡이 선을 보였어. '결과물'인 뉴진스의 신곡 <Bubble Gum>을 들어볼까? 골치 아픈 '과정'따윈 생각하지 말고. (그건 야심 찬 당사자들의 몫!)
이 정도면 4세대 걸그룹 세상의 근황에 대한 2세대 아들의 상식은 채워졌겠지?
아참! 이번 주는 고등학교에서의 첫 시험이지? 아쉬움 없도록 최선을 다하길.
- fin
* [아빠레터]란?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무려 자발적으로!)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멀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B급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이번 주에는 어떤 일이 세상에 있었나?' 아들에게 전하는 뉴스레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자녀분에게도 유익한 내용이라면 맘껏 공유하고 대화의 화두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