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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범 May 07. 2024

[아빠레터 0] 왜? 아빠는 아들에게 뉴스레터를 보낼까

2024년 1월 어느 날. #뉴스레터시작

모든 것이 지금처럼 된 이유는 이렇게 흘러왔기 때문이다.
다시 톰프슨 <성장과 형태에 대하여> 중



아들에게.


어제 말했던 것처럼 이제 너에게 '아빠의 뉴스레터'를 보내기로 했단다.

그냥 흘리듯 말했지만 그 말을 꺼내기 전까지 아빠의 머릿속에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


아드님, 뉴스레터를 받아주세요!


이런 생각들 말이야.



1. “여러분! 인터넷이 세상을 연결하는 시대가 조만간 올 겁니다.”라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단다.     


1994년, 대학교 1학년 <경영전산> 수업 중이었지.     

그땐 교수님이 말씀하시던 '인터넷'이라는 기술의 상용화까진, 꽤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998년 제대 후, 아빠는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당구장이 아니라 PC방으로 향하고 있었지. 당구장이나 농구장이 아니라.


      

2. 아빠의 첫 이메일 계정은 ‘frommylife@hanmail.net’이었지. 


복학 신청 서류엔 전에 없이 ‘이메일 주소’를 적는 난이 등장했어.     

1998년 한여름의 학교 도서관 전산실, 쨍쨍거리는 매미소리와 PC들의 낮고 굵은 웅성거림의 불협화음 속에서 한 복학생은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첫 물꼬를 텄단다.

     

* 나중에 한 보험사에서 ‘프로미라이프’라는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이 긴 메일 계정을 소개하는 게 한결 쉬워졌다. 

* 한 졸업 선배가 아빠의 메일 주소를 보고 “얘 메일 주소 봐, 프.롬.마.이.라.이.프.야!”라며 웃더구나. 어떤 점이 웃겼을까? 

     


3. 아빤 아직도 군대에서 받은 편지들이 들어있는, 꽤 묵직한 상자를 보관하고 있다.

      

군대에선 A4지를 두 번 접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틈틈이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크리스마스엔 모아놓았던 잡지 사진들로 콜라주한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여럿에게 보냈어.     

첫 직장인 잡지사에선 오랫동안 막내기자로서 독자 사연 코너에 소개할 손 편지를 1차로 고르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 일은 의미가 있었어. 사연을 읽다 때때로 '또록'하고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     


언젠가부터 편지 대신 이메일로 오는 사연이 늘었다. 그땐 왠지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군대 있을 때 이메일의 시대가 왔다면 아빠의 묵직한 편지함은 아마 없었겠지?     


그런데 이상하게 메일로 온 독자 사연을 읽으며 눈물을 흘린 기억은 없었다.     



4. 디카야? SNS 같은 데 올리는 게 아니면 괜찮아이미지 파일은 언젠간 사라져.”라고 편집장 C는 말했다.     


신촌에서 함께 탁구를 친 뒤 차 한잔을 마시던 중 카메라를 들어 그를 보자, 그가 심드렁하게 그러더라고. 사실 그는 사진 찍히기 싫어한다는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었어.


신기한 건, 그의 예언처럼, 그날 그를 찍었던 사진은 지금 남아있지 않아.      

당시 잡지사에서 일하며 6년 동안 주고받았던 메일들도 지금은 한 통도 남아있질 않지. 메일 서비스가 사라지면서 다 날려버렸지.

      

그래서 지금은 아빠의 수많은 데이터를 유지하기 위해 바다 건너 G사에 매년 돈을 내고 있다.    

G사는 매년 아빠의 돈을 구독하지, 이 200G를 대가로 말야.



5. 웹에이젼시에 이직해서 맡은 첫 업무는 항공사 뉴스레터의 콘텐츠와 디자인을 기획하는 일이었다.      


항공사 뉴스레터는 등급별로, 언어별로 각각 맞춤 콘텐츠와 디장인으로 메일을 보내야 하니, 한 달에 제작하는 뉴스레터만 20가지는 훌쩍 넘었다. 

목표는 뉴스레터의 오픈율(메일을 열어봤나?)과 클릭률(내용 중 링크를 클릭했나?)이었어. 그런데 온갖 콘텐츠를 퍼붓고 분기에 한 번씩 구조를 개선해도 좀처럼 이 두 지표는 오르질 않았지.      


결정적인 변화의 키는 고객 데이터에 있었다. 

고객 데이터에서 메일을 받는 사람의 이름을 가져와 메일 제목에 넣고, 마일리지(비행기를 타고 얻는 포인트랄까?) 정보를 가져와 메일의 상단에 배치했다. 그리고 보유한 마일리지로 살 수 있는 상품이나 이용할 수 있는 제휴 서비스의 정보를 메일 내용에 넣었지. 그랬더니 이런 메일 제목이 나왔다.     


‘아무개 님, 보유한 메일리지로 이번 달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은?’     


지금은 흔한 방식이지만 당시엔 혁신이었다. 고객들은 ‘나에게 온 메일’이라 생각하고 ‘오픈’을 했고 마일리지 세부 정보와 상품 정보를 ‘클릭’했다. 마일리지란 개인화된 데이터는 무척 자극적인 콘텐츠였다.   

  

사람들은 '나와 관련 있는 콘텐츠'에 관심을 기울인단다. 그래서 기업들은 고객의 데이터를 모으려 안간힘을 쓴다.


     

6. ‘뉴스레터’는 오래됐지만 여전히 핫하다, 기업들에겐.     


* 요즘 IT <뉴스레터는 왜 흥하는가? 뉴스레터 시장 이해하기>라는 메일에 이런 내용이 있어.


뉴스레터(Newsletter)의 의미 : 뉴스와 레터의 합성어. 소식이나 뉴스의 전달을 위해 발신자가 정기적으로 구독한 사람에게 전송하는 메일 배달의 한 형태.      


당신의 메일함을 한 번 열어보라. 오늘 하루 몇 통의 뉴스레터가 도착했나? 아마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뉴스레터들이 당신의 메일함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오픈’ 해 달라고. 이기기 위해선 자극적이어야 한다. 알고리즘을 도입해 개개인에게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오래된 이메일 뉴스레터란 방식이 여전히 기업의 고객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중요하게 활용되는 이유는 뭘까?

* 사람들이 주로 쓰는 메일 계정을 거의 바꾸지 않는다. 

* 1:1로 얘기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

* 내가 요청, 혹은 허락해서 오는 뉴스레터이기 때문에 관용적이다. 

* 구글과 애플은 최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사용자 정보 획득을 어렵게 해 기업들은 고객에 대한 맞춤형 광고를 진행하기 힘들어졌다. 뉴스레터를 받는다는 건, 기업에게 생각보다 많은 개인 데이터 제공을 허락하는 일이다.      


기자 시절 받아오던 영화사 홍보사들의 뉴스레터는 15년 넘게 아빠의 메일함을 채우고 있다.



7. 돈을 내고 메일 콘텐츠를 구독해 본 적이 있다. 


이슬아라는 작가가 보내는 일간 이슬아’라는 콘텐츠였지. ‘과연, 이 콘텐츠 홍수의 시대에 이런 서비스가 성공할까?’라는 호기심이 생겼거든. 구독료를 내면 한 달 동안, 매일 그녀가 작성한 콘텐츠를 받아볼 수 있었는데, 메일로 매일, 그녀의 글을 받아본다는 일은 꽤 ‘사적인 느낌’이었다.      


한 달이 다 지나고 첫 결론은, ‘이 사람 글 쓰는 걸 정말 좋아하는구나!’였어.

     

그리고 사무실에서 남의 뉴스테러 기획안을 ‘재’ 컨펌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재기 발랄하고 글빨 끝내주며 트렌드를 섭렵한 아빠네 팀 팀원들을 보며 한숨과 함께 두 번째 결론을 내렸다.


‘이들이 실력과 에너지의 방향을 기업 고객이 아닌 독자들에게 돌렸으면 참 좋겠는데.’


      

8. 과연 이메일이 업무에 있어 ‘결정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는 “직접 만나야 일이 해결되는 거지 메일만으로는 안 돼!”라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듯하다.

하지만 외국계 회사에선 그게 가능했다.      

아빠는 한 외국계 PR('기업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일'이랄까?) 회사에서 일했었다. 바다 건너로도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해서인지, 신속, 정확, 적극성을 중요시하는 업종의 특성 때문인지, 그 회사에서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은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비중이 컸으며 ‘결정적’이었다. 

    

어느 날, 아빠가 속한 디지털 PR 파트 전원에게 부사장님으로부터 이런 메일이 왔단다. (너에겐 어려운 말들일테니 밑줄 친 내용만 봐도 좋아.)      


---

* 아래 내용을 살펴보시고 여러분들 각자 업무 진행에 있어 기준(working standard)으로 삼아주셨으면 합니다. 


한 가지 상황을 떠올려 보자.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던 중 급한 메일을 보내기 위해 메일함을 연 당신의 눈에 새로 도착한 메일 한 통이 들어온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선 이름이다. 업무에 쫓기던 당신은 당장 보내야 할 메일만 재빠르게 보내고 메일함을 닫는다. 그리고 낯선 발신자의 메일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다시 일에 집중한다. 어떤가? 이런 상황은 업무 속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낯선 발신자가 보내온 메일은 바쁜 업무 속에서 쉽게 묻혀 버린다. 아침에 확인하고도 늦은 오후에 회신을 보내거나 때로는 며칠씩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두기도 한다. 그 메일을 보낸 상대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회신을 기다릴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이렇게 보통 사람들은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메일에 대해서는 늦게 회신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인정받는 인재일수록 회신 속도가 현저하게 빠르다. 발신자가 누구냐에 상관없이 어떤 메일에도 빠르게 회신한다. 골드만 삭스 시절에 초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경험한 사실이다. 당시 나는 일본계 기업의 매각과 관련된 M&A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매수 후보 기업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해외 지사의 시니어 뱅커들에게 일제히 메일을 보냈다. 그들에게 롱리스트상의 매수 후보 기업이 매각에 관심을 나타낼 지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들의 회신에는 역시 베테랑 뱅커답게 간결하지만 다양한 경험과 긴밀한 관계를 근거로 한 날카로운 의견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여기에 밑줄을 쳤다.)     

메일을 주고받는 이 모든 과정은 내가 메일의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나서 채 여섯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완료되었다. 발신 시점은 도쿄시각으로 새벽 2시,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메일함을 확인했을 때 이미 80퍼센트에 가까운 회신이 도착해 있었다. 한마디로 여섯 시간 이내에 회신을 완료한 것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빨리 회신을 보낸 사람들이 전 세계를 날아다니는 최고의 성과를 내는 베테랑 뱅커라는 점에 나는 더욱 놀랐다. 솔직히 이제 막 업계에 발을 들인 도쿄 사무실의 애송이 뱅커였던 내 메일에 그렇게 빨리 답장을 해줄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출처 -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기본에 집중할까> 도쓰카 다카마사 지음. 


정말 그 인재들은 기본에 집중할까?



이 회사의 내부 규정은 ‘자신이 회신해야 하는 메일에는 10분 내 답변하라’였다. 정보를 취합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한 경우, 10분 내에, 언제까지 정리된 메일을 보낼지에 대해 회신해야 했다.

     

그곳에서 아빠의 메일함엔 하루 100여 통의 메일이 쌓였고, 그중 30%~40%가 내가 개입되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이었다. 



9. 회사마다 저마다의 문화가 있고 다양한 회사를 거치다 보면 그곳으로부터 한두 가지 습관, 혹은 태도를 이식받게 된단다. 


아래와 같이 말이야.     


* 기자였던 덕분에 - “과장님 하고 얘기하면 꼭 #인터뷰당하는 기분이 들어요.” (개발자 Z)

* 기획자였던 덕분에 - “예를 들어 거실 청소 좀 하라고 말하는 순간, 눈이 거실을 싹 한 번 스캔한 뒤에 머릿속에 청소의 우선순위와 소요 시간이 체계적으로 #계획이 세워져. (청소를 시킨 아내에게)

* 데이터 분석가였던 덕분에 - “팀장님은 #맥락쟁이!” (술 취한 팀원 A) 

* 사업부장이었던 덕분에 - “우리 가족, 내년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연말 가족여행으로 간 설악산에서) 

* 한방병원 마케터였던 덕분에 - “어무니, 그건 #디스크가 아니라 협착증이에요. 차이가 뭐냐면...” (부모님 얘기에 끼어들어)

* 스타트업에 근무한 덕분에 – “아들, 그런데 그 게임은 너와 친구들에게 어떤 #가치가 있길래 그렇게 매일 같이 하는 거야?” (게임방에 가는 아들을 붙잡고)     

*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했던 덕분에 - 팀장님아직 #메일 받은 지 20분도 안 됐어요!” (팀원 C)      



9. "100일 동안 같이 할래요?" "ㅇㅇ!" 


작년 초에 뉴스 보러 들어간 포털에서 이 배너가 눈에 띄었다. 잘 만든 카피였다.      


카카오 프로젝트 100 배너


‘카카오 프로젝트 100’ 이 프로젝트 설명은 이렇다. 


‘뇌에 습관 회로가 생기려면 100일이 걸리는데 의지박약 당신, 혼자 하면 힘들잖아? 목표가 같은 이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 함께 해봐!’


혹한 아빠는 회원가입을 하고 함께할 동료를 모으는 글들을 보다 요거에 꽂혔다. 

    

‘매일 15분 뉴스레터로 더 똑똑해질 나를 위해’

인증미션 : 매일 15분 이상 뉴스레터를 읽고 메모를 합니다.     


아빤 이 커뮤니티에 참여해 매일 내게 온 뉴스레터 중 유용한 몇 개를 골라 요약하고 의견을 달아 블로그에 올렸다. 100일 중, 선을 넘어 과음한 이틀을 빼고, 98일 동안 미션 컴플리트! 기념품으로 연필 몇 자루를 받고 감개무량했지만, 안타깝게도 뇌에 습관 회로가 형성되진 않더구나. 하지만 98일 동안 한 작업의 가치는 충분히 깨달았다.      


그 작업은, ‘관심 분야에 대한 세상의 흐름이 내 안으로도 유입되도록 물꼬를 트는 일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귀찮은 일이라, 지속하려면 꽤 강력한 동기유발이 필요했지.      



10. 별안간 네가 각성해서 얼굴 보고 얘기하기가 힘들어졌구나. 그래서!

    

중학교를 다니는 내내 게임에 빠져 세상과 담을 쌓던(코로나 탓이 컸다.) 네가 이제 게임을 접고 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난 네가 게임이 아닌 '세상'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너를 주인공으로 한 근미래를 보여주는 글을 준비하고 있었단다. ‘아들, 네가 스물일곱이 된다면’ https://brunch.co.kr/brunchbook/ficson1 하지만 완결보다 네 선언이 빨랐다.)     


(이제야? 이제라도!) 부쩍 세상에 관심이 많아진 너에게, 그리고 식탁에서 더 이상 말없이 유튜브로 게임 영상을 보지 않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아이에게 던질 유익한 화두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게다가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도 학원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 번뿐이니까 말이야.


그래서 아빠가 보는 세상을 너에게 공유할 수 있도록 '아빠표 뉴스레터'를 보내기로 했단다. 


부디 '오픈'해 주렴.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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