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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범 May 14. 2024

[아빠레터 3] 너는 어떤 차를 몰게 될까?

2024년 4월 첫째 주 #자동차

네가 학원을 오가며 타는 그 차는 우리 집의 첫 차란다.


너와 동갑이니 차 나이로는 꽤 연로한 분(?)이지.

아빠는 사실 운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운전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거든. 그래서 '기분전환을 위한 드라이브'는 아빠와 거리가 먼 얘기야.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물끄러미 사람과 상황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 무엇보다 아빠가 운전해서 출퇴근하면 아마 지금보다 몸무게가 훨씬 더 나갈걸?


아빤 네 덕분에 면허를 땄어.

차가 먼저 생기고 엄마가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는데 아빠가 널 안고 있으면 넌 울음을 그치지 않더라고. 그런 진땀 나는 상황을 한 번 겪고 나서 다음 날 바로 운전면허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어. 바쁜 와중에 새벽반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가 한 번에 따버렸지. 다시 말하지만 아빠가 운전을 시작한 건 아빠 품에서 잠들지 않는 데 덕분이란다.


오늘은 바로 그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


네가 종일 학원에 가 있으니 너와 단둘이 마주하고(등 돌리고인가? ㅎㅎ) 얘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은, 너를 학원에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의 시간뿐이라, 차는 우리에겐 중요한 '공간'이자 '시간'이라 수도 있겠구나.


'알아두면 좋은 차 이야기', 그럼 시작할게.



1. 차는 편리해지는 만큼 효율을 잃어간다?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바츨라프 스밀 著)>란 책을 보다 적어본다.


'유상하중비'라는 단어를 들어봤니? 이 말은 '승용차 무게에 대한 승객 무게의 비율'이야. 왜 이런 걸 측정하고 있냐고? 그 비율이 차의 '에너지 효율'을 보여주기 때문이지.

만일 70킬로그램의 운전자 혹은 승객에 대해 여러 탈 것들의 유상하중비를 나열하면 이렇단다.

(외국 저자라 예를 든 게 온통 외국차들이구나.)


다양한 '탈 것'들의 유상하증비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중)


* 7킬로그램의 자전거는 0.1

* 이탈리아산 110킬로그램의 베스파 스쿠터는 1.6 (여기서 1이 넘어가기 시작!)

* 좌석에만 승객들이 다 앉은 상태의 버스라면 5 이하

* 1950년대에 제작한 프랑스산 510킬로그램 시트로엥 2CV deux chevaux 모델은 7.3

* 1908년 출시된 포드 모델 T와 1964년 10월 운행하기 시작한 일본 신칸센 초고속 열차는 7.7 (오~ 생각보다 낮네?)

* 자율주행 자동차는 12, 미니 쿠퍼는 16, 혼다 시빅 1X는 18, 도요타 캠리는 20 이상 (여기서 10을 넘어갔어! 자율주행 자동차는 여기.)

* 네가 체감할 수 있도록 한국차를 넣어보자면, 그랜져는 계산해 보니 24 정도야.

* 2013년 기준 미국의 평균적인 경량 자동차는 26

* BMW 740i는 28

* 포드 F-150은 32

*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EXT는 39


요즘 환경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얘기를 하지? 에너지 효율이 좋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돼. 그만큼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연료를 더 쓰게 될 테니까. 그래서 자동차 회사들은 자동차의 경량화를 외치며 알루미늄, 마그네슘에서 탄소섬유 강화 폴리머까지 차체에 적용하려고 하지.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차는 점점 무거워지고 있는 게 현실이야. 왜일까?

자동차 회사들은 운전자의 '안전'과 '편의'라는 마케팅 포인트로 서로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차에는 온갖 편의 장치가 들어가게 되면서 차체는 크고 무거워지고 있어.


전기차는 가볍지 않냐고? 꼭 들어가야 하는 배터리가 무지무지 무겁기 때문에 가벼워지는 데는 한계가 있지.


게다가 이런 비효율적인 차를, '나 홀로 운전'해 출퇴근하는 차가 많다는 것도 문제야.

2019년 미국 통계를 보면 통근자의 4분의 3이 나 홀로 운전자래.

한국은? 2023년 6월, 한 언론사에서 서울의 출근길 출근 차량을 조사해 봤더니 95%가 나 홀로 운전자였대.(기자가 일일이 세어봤다니 100% 신뢰하긴 힘들겠다만.) 2021년 국도교통부의 조사를 보면 1인 탑승 차량의 비중은 전국적으로 59.7%라고 하고.


'A신문사의 신입 김기자는 의욕에 가득 차 첫 임무인 광화문 앞 출근길 차량의 수를 수기로 헤아렸다고 한다.'


아... 그런데 엄마도 나 홀로 운전자구나.

아빠라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으니 그래도... 게다가 아빠는 열심히 높은 체중을 유지해 '유상하중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잖... 흑


* 참고 :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2. 너는 어떤 차를 몰게 될까?


'미혼의 젊은 남성은 집보다 차로 자신을 표현하려 한다'는 건 상식이라 할 수 있지. (대중교통을 좋아하는 뚜벅이 아빠는 좀 예외였다만.) 아빠도 작은 월셋집에 살면서도 고급차를 모는 젊은이들을 꽤 목격했단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라고 봐.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 또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그만큼 투자를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런데 경제 사정이 안 좋진 하나 봐.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힘들 정도로. 이 뉴스를 한 번 보자.


'수입차 살 돈이 어딨 어"... 짠내 나는 요즘 30대 '이것' 타고 다닌다' (매일경제)

 https://v.daum.net/v/20240213063900201


20대~30대의 젊은 구매자가 수입 승용차 시장에서 빠르게 이탈해 국산차를 선호한다고 한다. 고금리, 고물가 때문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현금으로 차를 사는 게 아니라 대출로 차를 사다 보니 영향을 받는 것 같아. 그럼 관련한 숫자를 볼까?


2023년 30대 이하의 수입자 신규 등록 대수는 55,639대로 2022년보다 9,511대(15.1%) 감소, 반면 국산차 신규 등록 대수는 297,931대로 2022년보다 1.3% 증가.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이들 연령대에서 국산차 구입이 늘고 수입차 구매가 줄어든 건 2023년이 무려 처음(!)이었다는구나. 참고로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차량 5대 중 1대는 수입 차래.


그런데 단순히 소득이 줄어서 수입차보다 국산차를 선호한다고 할 수도 없는 게 20대에서 30대 인구수 자체가 줄어들고 있어. 해당 인구는 2015년 약 1,437만 명에서 2023년에는 1,277만 명으로 감소했다고 해.


넌 어떤 차를 몰게 될까?

세상이 좀 나아져서 네가 원하는 차를 탈 수 있으면 좋겠다만. 궁금한 건 '네가 어떤 기준으로 차를 고르게 될까'야. 성인이 된 네 가치관이 반영될테니까 말야.



3. 우리 차는 도대체 누가 긁었을까?


마지막으로 우리 차 이야기를 해보자.


올해 2월, 네 졸업식 다음 날, 아빠는 아파트 관리실을 방문했단다. 무슨 일이냐고? 주말 점심때쯤 엄마가 외출하려고 차를 타러 왔다가 차 뒤편 오른쪽 모서리를 누군가 들이받고 간 흔적을 발견한 거야.


관리실에 방문해 조심스럽게 사정을 말하고 CCTV를 보고 싶다고 했지. 첫 경험이라 좀 두근두근했고 한편으로는 범인을 잡고야 말겠다는 책임감도 잔뜩 품고 있었지. 그런데 그게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나 봐. 여직원은 심드렁하게 아빠에게 간단한 신청 양식을 작성하라고 한 뒤 여러 대의 모니터가 마치 백남준의 작품처럼 줄지어 서있는 한쪽 벽면으로 안내했어. 그리고 우리 차가 있던 위치를 보여주는 모니터를 확인하고 요청한 시간부터 볼 수 있도록 설정을 해줬다.


그곳에서 봐야 할 시간은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11시까지. 제 속도로 본다면 무려 16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지. 밤 시간임을 감안하고 무언가 우리 차 주변에서 상황이 발생했다는 걸 인지할 수 있는 속도를 찾았다. 16배속 정도면 집중한 상태로 가능할 것 같더라. 그리고 뭔가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멈추고 돌려보고 하다 보니 확인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

범죄를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형사들이 CCTV를 보는 장면이 나오잖아? 그리고 다음 장면은 항상 피곤한 표정으로 '밤을 새웠는데 별 소득이 없다!'라 말하곤 하지. 그 상황을 아빠도 실감했다. 다른 시간대에 문제가 발생했겠다 싶었어.


그런데 집에 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 인생도 저렇게 촬영이 되어 있고 그때로 돌려볼 수 있으면 어떨까?'라는. 그리고 이 문구가 떠올랐지.


'모든 것이 지금처럼 된 이유는 이렇게 흘러왔기 때문이다.'


다시 톰프슨의 <성장과 형태에 대하여>라는 책에 나온 말이야. 다시 본다면 뭐 달라질 게 있을까? 그 시간들이 켠켠이 쌓인 게 현재의 아빠와 엄마, 그리고 너희들인데. ㅎㅎ   


혼자 16배속으로 과거를 돌이켜 보는 시간 (아파트 관리실 CCTV 앞에서)


그나저나 우리 차는 도대체 누가 긁었을까?


-fin



* [아빠레터]란?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무려 자발적으로!)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멀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B급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이번 주에는 어떤 일이 세상에 있었나?' 아들에게 전하는 뉴스레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자녀분에게도 유익한 내용이라면 맘껏 공유하고 대화의 화두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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