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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범 May 28. 2024

[아빠레터 5] 너의 허전한 정수리를 훔쳐보곤 해.

2024년 5월 넷째 주 #탈모

"이런. 이리 와서 이것 좀 봐!"


어느 날, 네가 학원에서 돌아오기 전 엄마가 네 방 청소를 하다 아빠를 급히 불렀단다.

가봤더니 엄마는 네 방 한 구석을 가리키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


수북한 네 머리카락들...


아빤 '탈모는 유전'이라는 말이 떠올라 '뜨끔'하고 말았다.

 


1. 아빠의 탈모


고3 때였어. 아빠에게 '탈모'란 놈이 찾아온 건...

(슬프고 아련한 눈빛)


아빤 그때 기숙사에 있었어. '열악한 공립고등학교의 시범운영을 위한 간이 기숙사'라면 느낌이 딱 오지?

음악실이 자율학습실이었고 간이 이층침대를 놓은 도서관이 침실이었지.


그래도 감성 돋는 청춘인지라 사소하지만 꽤 낭만적인 요소들도 있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난데없이 고퀄의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는, 아빠와 이름이 같은 친구가 있었고, 아빠의 침대 곁 책장에는 세계문학전집이 꽂혀 있어서 자기 전 조금씩 읽으며 사라질뻔한 감수성을 붙들 수 있었어. 또 영화 이야기와 영화 음악을 틀어주는 새벽 라디오 방송을 매일 들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건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이레이저 헤드>라는 영화의 한 장면에 대한 묘사야.


'닭 머릴 잘랐더니 머리 없는 몸통이 뛰어다녔다.'



영화 <이레이저 헤드> 포스터. 머리 풍성한 거 봐!


왜 영어 단어는 안 외워지면서 이런 건 기억에 잘 남는지.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머리를 감다 깜짝 놀라고 말았단다. 아래 받쳐둔 세숫대야에 머리카락이 한 움큼 빠져있는 거야. '봄이 오니 내가 털갈이를 하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그걸 심각하게 고민할 정신적인 여유는 없던 시절이었지. 아직 가진 게(?) 많기도 했고. 다만, '내가 자각하진 못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건가?'라는 어렴풋한 의문이 있었을 뿐.

 

그런데... 그게 지긋지긋한 탈모의 시작이었다니!


그래서 네 방구석에 스크럼을 짜고 모여있는 머리카락들에 기시감을 느꼈다.


덕분에 요 며칠간 아빠는, 네 정수리를 종종 훔쳐보곤 했어.


그리고 네게 탈모에 대해 알려줘야겠다 싶었지.

마치 우리 가족의 숨겨진 비화를 들려주는 것처럼.




2. 머리 '털'


먼저 '털'에 대해 좀 알아볼까?


보통 '사람은 진화하면서 털이 없어졌다'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오답!'

우리 몸에는 털이 약 500만 개가 있다고 '추정' 되는데 다른 유인원들에 비해 그 '수'가 적은 게 아니야. 다만 눈에 잘 띄는 '성숙털(terminal hair)'에 비해 대부분을 차지하는 '솜털(vellus hair)'이 가늘고, 연약하며, 잘 안 보일 뿐이지.


언제 이렇게 사람의 털이 존재감을 잃었을까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어. 왜냐하면 화석에는 털과 피부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기 때문이지.


캐바라 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 뼈밖에 안 남았지? (워싱턴대학 다구미 기요치 동영상 캡처)


하지만 학자들은 사람이 검은 색소를 갖게 된 120만 년~ 170만 년 전에 사람의 털이 가늘고 약해졌다고 추정을 해. 왜냐하면 털이 수북했으면 검은 피부는 필요하지 않았을 거거든. 아마도 검은 색소는 피부에서 선팅 같은 역할을 하나 봐. 그래서인지 수북한 머리털로 덮인 정상적인 두피는 맑은 청백색이나 연한 색을 띠고 투명도가 높다는구나.


포유류들에게 털의 역할은 다양해.

추우면 털집 주위 근육을 수축시켜 털과 피부 사이에 단열 공기층을 형성해 추위를 막고, 화가 나거나 흥분하면 털을 빳빳하게 세워 감정을 표현하지.

사람도 이런 상태가 되는데 털이 왜소하니 이래도 저래도 그냥 '소름 돋는' 상태로 표현되지.


이런 와중에 유일하게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의 털은 바로 머리의 털, 즉 머리카락이야.

추운 날씨에는 단열재 역할을, 햇볕 따가운 날에는 열 반사막 역할을 해주거든. 특히 곱슬머리는 이런 기능에 최적이라고 하는데, 너도 곱슬머리니 체감할 수 있겠지?


그리고 또 하나, 머리카락의 중요한 역할이 있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유혹의 도구'로 쓰였다는 거야.





3. 탈모의 정체


머리카락의 '그 역할'은 현대에 와서도 유지되고 있지.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줌으로써 개성을 표현하는 건 여전히 현대의 남성에게도 중요한 일이야.


오늘 미용실에서 네가 개성을 살리기 위해,


"울프컷으로 해주세요!"


라 외친 것처럼 말이지.


하지만 머리를 자르는 네 모습을 보며 아빤 '조금은 모(毛) 자람 없는 네 정수리'를 훔쳐볼 수밖에 없더구나...


늑대가 되어가는 너의 뒤에서 정수리를 훔쳐볼 수밖에 없는 아빠 (아빠 그림)


그 중요한 개성의 '도구'를 잃어가는 상실감은, 마치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에서 창밖의 담쟁이 잎이 떨어져 가는 걸 지켜보는 병약한 소녀, 존시의 심경 같겠지?


문제는 예전에는 50대 이후의 남성들에게 고민거리였던, 하지만 '뭐 나이를 먹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인가? 허허' 하며 운명처럼 받아들이던 탈모가 이젠 20대, 그리고 10대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거지. (20대~40대 청년/중년층 비중 약 64%, 10대 비중 증가 중)  

  

사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야.

인간의 털은 부위에 따라 수명이 다르지. 예를 들어 얼굴의 털은 4주면 다 컸다고 할 수 있지만 머리카락은 6년에서 7년까지 쭉 성장해. 겨드랑이 털은 6개월, 다리털은 2개월이면 성장을 마치고 새로운 털들에 자리를 내주지.

털들은 나이, 건강,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하루에 3분의 1밀리미터씩 자라. 수명이 가장 긴 머리카락은 최대 1미터까지 자라지만 그 이상 자랄 수 있는 머리카락은 없대. 그러니 지금의 네 머리카락과는 언젠가 이별을 해야 할 운명인 거지.


머리카락은 하루에도 50개에서 100개가 빠지고 있어. 그 이상이 빠지는 것, 혹은 빠진 머리카락을 대체할 새로운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 것을 탈모라 할 수 있는데 남성의 경우 이마와 정수리에 피해가 집중되지.


 


4. 탈모의 원인


탈모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건, 유전적 요인, 남성 호르몬, 잦은 염색이나 탈색, 스트레스, 잘못된 식습관, 환경오염 등이 있어.


이런 원인들이 두피를 뜨겁게 하고 내분비 장애를 일으키며 두피에 흐르는 혈액의 흐름을 정상적이지 않게 만들어, 그 결과 두피, 그리고 모근이 손상돼 결국 머리카락의 성장이 힘들어지거나 머리카락의 수명이 짧아지게 되는 거지.


그런데 여러 자료를 봐도 빠지지 않는 게 '유전적 요인'이라는 단어야.

무려 '탈모 유전자'라는 게 있어서 이걸 물려받는 경우가 많다는구나. 뭐 꼭 그런 이유는 아니겠지? 아닐 거야... 유전자는 이기적이라는데 탈모가 뭐가 좋다고 그 스트레스를, 너에게 물려주고 그러겠어? (뜨끔뜨끔)


여하튼!

어디를 봐도 (체감하기에도) 탈모의 좋은 점은 찾아볼 수가 없네. 대신 탈모의 부정적인 면을 검증한 연구들은 넘쳐나지. 그런 자료들 중 특히 MZ세대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자면 MZ세대의 탈모는 스트레스를 높이고 자아존중감을 떨어뜨린다고 하네. 스트레스 자체가 중요한 탈모의 원인이니 탈모를 인식하고 신경을 써서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면 또 그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지에 되는 최악의 악숙환이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5. 탈모를 극복하려는 인류의 노력


하지만 걱정 마. 인간의 기술은 발전 속도가 빠르고 특히 그 기술이 돈이 된다면 가속도가 붙지

탈모에 대한 연구도 매우 열띠게 진행되고 있단다! 이렇게 말이야.


- 1999년도부터 세계적으로 매년 100건 이상의 탈모 관련 논문이 발표됐고, 2020년 852건, 2021년 991건, 2022년에는 무려 1,183건의 논문이 발표됐어.


- 지역으로 보자면 미국이 논문의 37%를 발표해 가장 열띠게 연구를 하고 있고 한국도 6%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특히 연세대학교는 세계에서 8번째로 탈모 관련 논문을 많이 발표한 대학이야. 논문뿐만 아니라 특허 수도 2020년 이후 출원 건수가 상승하고 있어. 역시 한국 특허의 양이 상당히 많단다.


- 여러모로 현재 가장 탈모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야. 미국 성인 남성의 50% 이상이 탈모라니, 어때, 연구할 맛이 나겠지? (한국인은 백인에 비해 10%~20% 정도 비중이 낮아)


- 그리하여, 글로벌 탈모 치료제 시장은 2020년 8조 원에서 연평균 8%씩 성장해 2028년에는 19조 원에 이를 거라 전망되고 있어. 또 국내 탈모 인구는 현재 1,000만 명가량인데 탈모치료제 시장 규모는 1,300억 원으로 추산된대.


이 조사 결과처럼 탈모시장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고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탈모 방지와 치료를 위해 연구를 하고 있어.


현재 많이 쓰이는 탈모 치료제 성분은 이름도 어려운 '피나스테리드', '두타스테리드', '미녹시딜' 등이 있는데 탈모 치료에 효과는 있지만 남성 호르몬을 억제하거나 생성을 차단하기 때문에 성기능 저하, 간기능 이상, 우울증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대.

남성으로서 매력을 유지하고 탈모로 인한 우울증을 해결하기 위해 먹는 게 탈모약인데 부작용의 증상은 그 반대를 향하고 있으니 뭔가 아이러니하구나.


사실, 아빠도 탈모 치료를 위해 소문난 명의를 찾아 울산까지 다녀오기도 했지.

효과는 있더라. 부작용은... 몰랏.


이런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에 현재 진행되는 연구의 방향은 생명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부작용이 적은 신소재와 천연소재 개발 등에 집중되고 있다는구나.


자 조금은 안심이 되지? 네가 본격적으로 탈모와 맞서 싸워야 한다고 느낄 때면 꽤 효과적이고 부작용 적은 치료제들이 임상실험을 마치고 상용화되어 있을 거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단다.


그래, 우리,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자꾸나.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치료를 위한 돈을 버는 것,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맘을 편히 먹는 거랄까?





6. 탈모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동지로 추정되는 세계적인 셀럽 한 명을 소개하마.


바로 EPL(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팀인 리버풀 FC에서 뛰고 있는 모하메드 살라야. 지지난 시즌엔 손흥민과 득점왕 경쟁을 했던, 이집트 출신의 최고 공격수 중 한 명이지.

항상 뽀글 머리를 휘날리며 경기장을 뛰어다녔는데, 최근에 그가 삭발을 했다는 소식을 포털의 스포츠면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어.


살라의 삭발 (데일리 메일)


삭발을 한 이유를 그가 명확히 밝히지 않아 다양한 추측이 나도는데 두 가지로 압축하자면 이렇다.


(1) 새로 부임한 감독에 헤어스타일로 충성!

리버풀 FC라는 팀은 명장 클롭 감독이 2015년에 부임해 9년이나 이끌다가 이번 시즌을 마치고 떠나기로 했대. 그리고 새로 오는 감독은 슬롯이라는 사람인데 대머리란다. 


반짝이는 리버풀의 새 감독, 슬롯 (리버풀 FC 공식 사이트)


클롭과 리그 막판 갈등을 일으켰던 살라가 새 감독과 헤어스타일을 맞춤으로서 충성도를 보여주고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기 위해 잘랐다는 '썰'이 있어. 그래서 한 팬은 게시물에 이런 댓글을 남겼대지.


"이것이 아르네 슬롯 감독의 영향력이다!"


라고 말야.


(2) 탈모로 고민하다 치료를 위해 삭발

 일부 팬들은 살라가 몇 년 동안 이마 쪽에 탈모가 진행됐기 때문에 이번 휴식기 동안 모발이식을 받기 위해 머리를 밀어 버린 것이라고도 하지. 아빠가 보기엔 이 추측이 더 타당한 듯해.


M자형 탈모에 시달린 살라는 만화 <심슨 가족>에 나오는 광대 캐릭터, 크러스티와 닮았다는... (데일리 스타)


그런데 지금의 삭발 스타일도 나름 맘에 드는 팬들이 있나 봐?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는구나.


"살라는 다음 시즌에 두 배는 더 빨라질 것이다."

"다음 시즌 헤더로 15골은 넣겠다."


어쨌든, '아무리 잘 나가는 셀럽도 탈모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할게!



그럼 이번 주도 (머리 관리 잘하고) 힘차게 보내도록 하자!



** 참고

<탈모인식에 따른 두피관리행동이 자기 효능감에 미치는 영향 - 심리적 요인 매개 효과 -> 서은희, 권오혁

<20-40대 남성의 탈모 상태가 탈모 관리 행동에 미치는 영향> 김윤영, 김희숙

<MZ세대 탈모 스트레스의 매개효과와 자아존중감에 관한 연구> 이은정, 송연숙

<주목받는 탈모 산업, 2025년 211억 달러 규모 세계시장 전망> 최나은

<19조 탈모 시장에 도전장 낸 'K-치료제’... 승부수는?> 바이오타임스

<탈모 때문인가? 살라, 뽀글 머리 버리고 삭발, 팬들은 모발 이식하려는 거 같아> 엑스포츠뉴스

<바디 - 우리 몸 안내서> 빌 브라이슨


- fin.



* [아빠레터]란?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무려 자발적으로!)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멀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B급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이번 주에는 어떤 일이 세상에 있었나?' 아들에게 전하는 뉴스레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자녀분에게도 유익한 내용이라면 맘껏 공유하고 대화의 화두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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