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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범 Jun 11. 2024

[아빠레터7] 넌 왜 바다를 좋아할까? (4지 선다형)

2024년 6월 첫째 주 #당신이바다를좋아하는이유

시험에서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아 한동안 의기소침해 있던 너.

어느 밤, 네 방에선 이 한마디가 들렸어.


"여행 가고 싶다!"


어떻게 네 에너지를 충전해 줄까 고민하던 아빠, 엄마는 이 말에 후닥닥 네 방문을 열고 물었지.


"어디?"


"바다!"


어렸을 적 함께 바다를 꽤 자주 갔지. 동, 서, 남해에 제주도, 외삼촌이 있는 필리핀, 이모 따라 대만까지. 그런 바다를 그리워하며 그곳에서 에너지를 얻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넌 덧붙였지.


"근데 더운 바다는 싫은데, 겨울 바다가 좋은데."


아빠는 갸웃하며 물었다.


"그럼 넌 도대체 왜 바다를 가고 싶어 해?"


"몰라, 그냥!"


그래서 마련해 봤다. 이름하며 '바다여행능력평가!'

문제는 딱 하나. 잘 풀어보렴.




문제 : 당신은 왜 바다를 좋아하는 걸까요? 

다음의 보기에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적당한 답을 모두 골라보세요.



1. 바다의 짭조름한 냄새가 주는 추억


* 바다의 냄새요? 그거 정체가 뭘까요? 바로 박테리아에 의해 미역과 플랭크톤 등이 분해되면서 만들어지는 유기화합물인 디메틸설파이드(dimethyl sulfide)라는 분자의 냄새입니다. 물보라 덕분에 생긴 미세 비말을 타고 온 이 분자가 우리 콧속의 후각점막에 도달해 우리의 뇌에 바다 풍경을 펼치는 거랍니다.


이 냄새는 어떻게 바다를, 또 바다와 관련된 추억을 떠올리게 해 줄까요?

우회하여 뇌에 자극이 전달되는 시각, 청각과 달리 후각은 뇌곧장 전달됩니다. 냄새는 콧속 비강의 '후각상피'를 통해 감지되고 뇌 중계소인 '후구'를 통해 뇌에 전달되고 기억(특히 경험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일으키는 뇌의 일부분을 즉각적으로 활성화시키죠.


그래서 바다의 냄새는 바다와 관련된 아련한 '첫 경험'들을 쉽게 떠올려 줍니다.


** 아빠도 바다의 냄새를 맡으면 다양한 추억들이 떠올라요. 이런 거죠.


결혼 전 아빠는 엄마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회사에 휴가를 통보(!)한 뒤 만리포 바다로 떠난 적이 있습니다. 때는 6월 말, 해수욕장 개장을 몇 주 남긴 때였죠. 주머니가 가벼웠던 아빠는 하룻밤 2만 원인 한 민박집을 우연히 발견해 자리를 잡았습니다. 자매로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 운영하는, 아직 본격적인 영업도 시작하지 않은 곳이었죠.


3박 4일을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싸구려 낚싯대와 크릴새우를 사 낚시를 하고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됐던 근처 수목원에 잠입했다가 그곳에서 근무하는 한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탈출하기도 했어요. 해 뜰 무렵에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만리포 사랑>이란 노래를 함께 흥얼거렸고 밤이면 소주 한 병을 마시며 조용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습니다.


삼일째 되는 날 아침, <만리포 사랑>이 울려 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멀뚱멀뚱 천장을 보고 있던 아빠가 문을 열었더니 주인아주머니가 마루에 만둣국 한 그릇, 그리고 젓갈향 진한 김치 한 접시가 담긴 쟁반을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이 그렇게 축 쳐져있으면 쓰나? 그럴 땐 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좋아~"


정말 그 하룻 동안 아빠의 하루는 분주했습니다. 


민박집, 아니 만리포 전체가 '영업 준비 중'이었어요. 아빠는 엉겁결에 그 어촌의 분주함에 동참하고 말았죠. 아침에는 동네 주민들과 함께 해수욕장 개장 전 해변의 쓰레기를 줍는 공동 작업을 함께했고 낮에는 주인 자매의 민박집 오픈을 위한 청소를 거들었습니다. 해가 지기 직전에는 자매의 해변 따라 걷기 운동에 따라나섰습니다. 저녁에는 김치와 젓갈, 파전을 안주로 막걸리를 함께하며 그녀들의 '헤어짐'과 '바다'와 '일상'이 어우러진 굴곡진 사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해의 잔잔한 해수면 위로 봉긋한 달이 밝게 빛나던 밤이었죠.


다음 날 아침, 또다시 <만리포 사랑>을 들으며 안개 자욱한 만리포 해변에 멍하니 앉아있던 아빠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평화롭고 분주한 세상에 완전한 이별이란 결론이 있을까?'


아빠는 서울로 올라가는 차표를 끊었습니다.


바다향에 부르는 추억의 바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제주 우도, 태평양, 일본 하코다테)




2. 바다의 푸른색이 주는 시각적인 편안함.


* 바다를 대표하는 색은 '푸른색'입니다. 인간은 푸른색을 보거나 푸른빛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측정 가능한 생리학적 효과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죠.


(1) 피부의 전기 전도율이 줄어듭니다.

그래서 땀샘 작용이 감소합니다. 결과적으로 푸른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피부의 저항력이 높아지는 거죠.


(2) 집중력이 높아집니다.

푸른빛은 뇌에 빛의 존재를 느끼고 인지 기능을 자극하는 멜라놉신(melanopsin)이라는 망막 색소에 직접 영향을 끼칩니다. 멜라놉신은 특히 집중력을 향상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이 외에도 푸른색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많습니다.

그렇다면 바다의 푸른빛을 제대로 체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잠수를 하는 것입니다. 깊이 들어갈수록 태양광선의 강도가 달라져 다양한 푸른색을 관찰할 수 있거든요.


** 아빠가 엄마에게 반하게 된 아홉 번째 순간은 사귀기도 전, 어느 퇴근길이었습니다. 갑작스레 약속이 잡혔는데 늦지 않았는데도 아빠는 지하철 역에서 약속 장소까지 전력질주를 했습니다. 다행히(?) 엄마는 늦었죠. 젖은 머리를 한 채로요. 퇴근 수영장에 들렀다 왔다고 해요. 엄마는 사람 없는 수영장에서 위를 보고 물에 푸른색으로 둘러싸인 시간을 좋다 한다고 했어요.

아빠는 엄마의 느슨하고 여유로운 느낌에 또 반해버렸습니다.


지금 엄마는 프리다이빙을 하고 있죠? 전, 전, 전생에 인어였는지... 엄마는 자꾸만 물로 돌아가려 하네요. 다이빙을 시작한 지 1년 4개월 만에 이퀄라이징(Equalizing, 압력평형)에 성공해 더욱 깊이, 오래 물속에서의 유영이 가능해진 엄마는 프리다이버들이 물속으로 들어갈 때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푸른색 속으로 들어간다.'



푸른색 속으로 들어가다 (필리핀, 보홀)




3. 바다는 멍 때리기 최적인 장소


* 뇌는 위험을 감지하는 경보기를 쉼 없이 가동하고 있습니다. 바다엔 파도의 단조로운 선율과 툭 트인 푸른 풍경이 있을 뿐이죠. 그래서 바다에선 경보기인 '편도체'가 안심하고 휴식을 취하게 됩니다.


사실 편도체는 도시에 사는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자극을 받고 있어요. 도시의 소음, 진땀 나는 인간관계와 복잡한 환경은 민감한 편도체를 무척 예민하게 만들어 놓거든요. 덕분에 도시인들은 자연과 가까이 사는 이들에 비해 정서장애 발병 위험이 39%, 불안장애 위험은 21% 높다고 합니다.


이 민감한 편도체가 바다의 푸름, 그리고 반복적인 소리와 함께할 때는 무장해제가 되는 겁니다.


** 대학교 때, 그리고 사회생활을 한 뒤로도 종종, 아빠의 연례행사는 혼자 겨울바다를 가는 것이었어요. 주로 강원도 속초의 버스터미널 앞, 속초 해수욕장이 그 행선지였는데요, 오랜 시간 사람 없는 해변에 서서 바다를 마주하고 그냥 멍 때리며 서있습니다.


동해안 겨울 바다의 파도는 거대하고 어둡습니다. 그 충만한 자연의 에너지를 마주하다 보면 1년 동안 중세 성벽처럼 차곡차곡, 단단히 쌓아왔던 고민들이 하잘것없이 느껴졌습니다. 바다의 에너지는 그렇게 사람에게 전이됩니다. 편도체도 숨을 돌릴 수 있었겠죠?


멍 때리는 게 지루하면 이런 생각을 하며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좋습니다.


'바다는 올려보는 걸까, 마주 보는 걸까, 내려보는 걸까?'


한 일본 영화의 제목에서 떠올린 생각이었는데요, 바다를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는 주문으로 좋습니다. 도통 결론이 나질 않거든요.


<해변의 수도승> 카스타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1808 ~ 1810 작업)



4. 파도 소리의 반복적인 리듬이 편안해서.


* 1924년, 독일의 의학자 한스 베르거는 전류 측정기를 사용해 두피 표면에 흐르는 마이크로 볼트 수준의 미세한 전기 파동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뇌의 피질에서 발생하는 전기활동은 파도와 같이 반복적인 파동을 가지며 평온한 상태일 때도 활성화돼 진동수가 10 헤르츠(초당 10회)인 '알파파'가 생성된다고 합니다.


또한 적절한 진동수의 소리를 통해 뇌가 이완되거나 회복 상태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갓난아이를 재우기 위한 자장가, 샤머니즘 의식에서의 규칙적인 리듬, 북소리, 박수소리, 노래, 춤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죠.


베르거의 연구 이후, 시간이 지나 과학자들은 바다를 볼 때 발생하는 시각적인 자극과 파도의 청각적인 자극이 뇌파를 동기화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다를 마주했을 때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요즘은 편안히 잠을 청하기 위해 또 기분 좋게 일어나기 위해 인위적으로 '바다의 소리'를 이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18세기 이전까지 바다는 재앙을 상징했으며 두려움을 주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과학자들이 바다가 인간에게 주는 이런 치유의 혜택을 증명하면서 바다는 '휴식'과 '치유'라는 이미지와 역할을 갖게 되었고 정신적인 문제를 치유하는 시설이 바닷가에 자리를 잡는 게 일반화되었습니다.


이런 효과를 몸소 증명한 이로 미셸 자우앙(michel jaouen)이라는 '항해하는 신부'가 있습니다. 그는 1970년대부터 비행을 저지른 청소년 범죄자들과 함께 '등대'라는 이름의 범선을 타고 도심을 벗어나 먼바다를 항해했습니다. 위험천만할 법한 이 여행, 등대호는 아무 일 없이 항구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 아빠는 40세를 맞이하며 8년 간 다닌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에이전시에서의 강도 높은 업무로 인한 번아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버킷리스트에 담아놨던, 환경단체에서 운영하는 '피스보트'라는 9박 10일의 크루즈 여행을 꼭 해보고 싶은 마음도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9박 10일은 당시 회사의 휴가로는 엄두를 못 내는 일정이었으니까요.


9박 10일 동안 바다 위에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여러 인상적인 바다를 만났죠. 아빠는 그 바다의 다양한 표정 중에서도 '무표정한 바다'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해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본의 홋카이도로 향하는 바닷길에서 만난 그 바다는 과묵했어요. 수면의 일렁임은 파도의 힘찬 리듬이 아닌 류이치 사카모토의, 몇 개의 듬성하고 긴 음표로 표현한 철학적 소리와 닮아있었습니다.


'아...'


아빠는 정말, 그 잔잔한 바다와 자신의 생각, 그리고 마음이 고요하게 동기화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미셸 자우앙과 거친 소년들도 혹시 이런 바다를 만났을까요?  

    

블라디보스토크와 홋카이도 사이, 어딘가에서 만난 과묵한 바다





자~ 문제는 여기까지입니다.

아들, 몇 번을 골랐나요? 답이 없다구요?


그럼, 주관식으로 전환하겠습니다!




*** 참고

<자연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미셀르 방키앵

<색의 신비> 잉그리트 리델



- fin.



* [아빠레터]란?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무려 자발적으로!) 몸의 일부 같던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멀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B급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세상에는 어떤 일이 있나?' 아들에게 전하는 뉴스레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자녀분에게도 유익한 내용이라면 맘껏 공유하고 대화의 화두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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