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둘째 주 #청년문화예술패스 #연극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문화관람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240억 원 규모의 '청년문화예술패스' 사업을 올해 3월 28일부터 시행하고 있어.
사업 대상은 올해 성년기에 진입한 19세 청년(2005년 생)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문화예술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 감수성, 창의성을 배양하고 무엇보다! 적극적인 문화 소비 주체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지.
2022년에 진행된 조사에 의하면 이 나이의 청년들의 특징은, 문화예술행사 관람 의지는 높은데 너무 비싸서 쉽게 접근하긴 어렵다고 해. (조사 대상의 31.3%)
사실 이 제도는 우리나라가 처음이 아냐.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이 연령대 청년들에게 첫 공연 관람을 위한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어.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으로 평균 300유로, 즉 40만 원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15만 원 지원이니 액수는 적지만 아마 공연관람료의 차이도 있을 거야.
해당되는 이들은 인터파크와 예스24에 가서 연령을 인증하고 지역을 선택하면 포인트로 지급되고 공연을 예약할 때 그 포인트를 쓸 수 있어.
일단, 환영!
이 소식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들더구나. 특히 아빠와 인연이 있는 '연극'이라는 장르의 공연에 대해.
(언제나처럼, 회상모드로)
대학교 1학년 때 S여대 불문과 여학생들과 미팅을 했는데 글쎄 아빠가 소위 퀸카님과 연결된 거야. 다만 그 아이는 '1학년 때는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낯선 신념을 갖고 있어서 아빠는 아마도 다수 남사친 중 하나였을 거야. 그래도 뭐 가끔 만나긴 했는데 어느 날 아빠는 홍대로 그 아이를 초대했지.
초대라곤 했지만 사실 뭐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고 카페에 가거나 술집에 가거나. 그게 딱 그 시대, 아빠의 한계였지. 그런데 홍대 앞에 도착한 그 아이가 이렇게 말하더구나.
"<고도를 기다리며> 보고 싶었는데."
몰랐지! 이 한마디에 관련된 아무런 정보도 떠오르지 않았어. 지방에서 상경한 지 몇 개월 안 됐고 문화계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고 지금처럼 핸드폰을 꺼내 검색해 볼 수도 없는, 아니 인터넷도 없는 시대였으니... 어물쩍 화제를 돌리고 그날은 차 한잔으로 마무리를 했어.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됐지. 그저 홍대와 신촌 사이의 길을 설명하는 용도로 사용하던 산울림 소극장이 1985년에 세워졌고 그곳을 운영하는 극단 산울림이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공연을 종종 무대에 올리고 있다는 걸.
사실, 알았더라도 공연을 예매하긴 힘들었을 거야. 빠듯한 생활비로 살아가는 대학생에게 연극 관람료 몇 만 원은 그렇게 선뜻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거든.
그때 '청년문화예술패스' 같은 제도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엄마도 볼 수 있으니 이하 생략.)
"아니 문화지 기자라는 넘이 그동안 연극 한 편을 안 봤다는 거야?"
이사님의 이 한마디와 함께 함께 밥을 먹던 편집부 선배들은 일제히 숟가락을 '탁' 놓더니 아빠에게 매서운 시선을 보냈어. 막내 기자였던 아빤 그냥 어제 본 연극 공연이 재밌었다고 얘기했을 뿐인데...
아빤 20대 후반에 아빤 잘 나가는 문화지의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 문학소년도 아니었고 전공과도 거리가 멀었으며 심지어 문화생활과 꽤 거리가 먼 아빠였는데 몇 가지 기회에 대한 아빠의 결정과 실행들이 어느 순간 퍼즐처럼 딱 맞춰져 그 어려운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을 볼 생각은 못했어. 그런데 친하게 지내던 다른 잡지사 편집장님이 연극 티켓 두 장을 준 거야. 덕분에 처음 보게 된 연극 공연이 박정자 선생님이 주연한 <19 그리고 80>이란 제목의 연극이었어.
신기한 경험이었어.
손을 뻗으면 다을 수 있는 거리에서, 암묵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배우들이 연기하는 흥미로운 인생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경험한다는 건, 영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었지.
그 경험이 좋아서 얘기한 건데 그렇게 비난을 받다니! 사회생활은 할 말, 안 할 말 가려서 해야 하는 거구나 싶었어. (심지어 함께 숟가락을 놓고 비난에 동참했던 남자는 자기도 아직 제대로 연극 한 편 본 적 없다고 나중에 술자리에서 수줍게 고백하더구나.)
그리고 몇 달 뒤, 아빠는 연극 담당 기자가 되어버렸다.
다른 분야에 비해 관심도가 적은 분야인지라 담당 기자가 없었던 것도 이유지만, 그 뒤로 몇 편의 연극을 더 보면서 아빤 연극을 좋아하게 돼버렸거든.
기자로서 연극 세계를 취재하면서, 무대에 올려지는 '짜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무대 뒤편의 밀도 높은 삶도 접할 수 있었어. 이런 이야기, 그리고 장면들 말이지.
* 공연을 준비하며 창이 없는 고시원에서 지내다 어렵게 휴가를 얻어 집에 들렀을 때 자신의 방에 있는 창을 보며 울음을 터뜨렸다는 신인 배우.
* 20년을 넘에 연극 무대에 서다 TV 드라마와 영화로 진출해 성공한 뒤 자신이 속했던 극단의 연습장에 응원을 오는 중년배우와 그를 외면하는 연출가. 그래서 연습장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의 순간들.
* 뚱뚱한 역할로 인기를 끌었지만 자신의 목표는 멜로 배우라며, 하지만 현재의 캐릭터로는 캐스팅이 되지 않는다며 다이어트를 결심한 여배우.
* 일본 지방 극장에서 막을 올린 한 한국 연극을 보고 반해버려 극단을 따라 한국에 와 매표소에서 일하고 있던 일본인 여성.
이렇게 무대 안팎으로 인생의 이야기들이 빼곡한 곳이 연극판이었지.
그 당시에 연극은 뭘까 알아보려고 읽었던 <연극의 세계>라는 책의 서문에서는 연극의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
'막이 내림과 동시에 스러지는 연극의 일회성은 유한한 인생과 그 성격이 가장 가까운 예술임을 말해주며. 말과 행동을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는 연극의 형식은 우리의 삶과 가장 유사한 예술임을 입증한다.
연극을 통해 우리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나 자신의 협소한 세계를 확대시키고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가장 말을 잘하는 인물들이 등장하여 우리에게 말의 감수성을 세련되게 계발시키는 세계가 연극이다.'
네가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그 안의 교훈을 느끼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길을 세워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연극은 꽤 흥미로운 조력자가 되어줄 거야.
네가 성인이 되었을 때 청년문화예술패스와 같은 제도가 더 정착되었으면 좋겠구나.
만일 그즈음, 아빠가 좋아하는 <삼류배우>라는 연극이 막이 오른다면 함께 보러 가자. 아빠가 쏘마!
부디, 그때까지 연극이라는 장르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길 바라며.
'19세 청년에게 첫 공연 관람의 설렘을 제공할 <청년 문화 예술 패스>' 더프리뷰 : http://www.thepr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90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