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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범 Jun 25. 2024

[아빠레터9] 뇌는 나무처럼 자라나는 중이야

2024년 6월 셋째 주 #뇌와나무

* 장마 시작!


"마스크를 벗고 공기의 냄새를 맡아봐."


넌 말없이 마스크를 슬쩍 내리고 촉촉한 공기를 한 움큼 흡입했지.

싱그러운 초여름의 향기를 너도 느꼈을까?


첫 학기는 어땠니?

생각대로는 잘 되지 않았는지 지난주, 많이 흔들리는 모습을 봤어. 그래서 너를 초여름 장마가 온 '동네'로 불러낸 거야. (우리 동네는 서울에서 녹지 비율이 가장 높다는구나.)

그런 마음이 가라앉는 데 자연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네가 좋아하는 파스타도 힘을 더했지.


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의 마지막 아빠레터에는 '동네'와 '자연'과 너의 '성장'을 담아 보았다.





* 머릿속 한 그루 나무



먼저 이 그림을 보렴.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신호를 전달하고 정보를 받아들이며 처리하는 뉴런들은 크고 작은 가지를 이뤄 뻗어나가는데 1988년, 스페인의 신경조직학자인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이 질산 은을 이용한 염색법으로 뇌 조직을 관찰해 처음으로 뇌의 삽화를 그렸대.


바로 이 그림이야. 나무를 닮지 않았니?

뇌는 이런 모습뿐 아니라 다양한 특성들이 식물과 유사해 과학자들은 '식물성 뇌'라 부르기도 한대.


예를 들면 뇌의 성장의 과정에 '자라나기'와 '가지치기'라는 '식물성 단어'를 사용한단다.

인간은 1천억 개의 뉴런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평생 동안 이 수를 유지한다고 해. 뇌는 주변으로부터 받는 신호에 반응해 세포가 활성화되며 성장하는데 여러 뉴런들이 여러 차례 동시에 활성화되면 그에 맞춰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키지. 즉,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키우는 가지는 단단하고 풍성해지고 신경 쓰지 않는 가지는 점점 쪼그라드는 거야. 이게 바로 뇌의 '자라나기'와 '가지치기'야.


그리고 두 번의 대대적인 '자라나기'와 '가지치기' 과정을 겪는데 먼저 유아기 때야. 그땐 걷고, 말하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과정을 겪는 시기니 당연히 그렇겠지? 이땐 누구든 한 차례 풍성한 가지를 키워내게 되는 거야.


그리고 현재의 너와 같은 청소년이 되면 또 한 번 큰 자라나기를 겪게 돼.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좋아하고 잘하는 능력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지.


네 머릿속에선 지금 두 번째 큰 가지가 자라나기 시작하고 있는 거야. 조금 늦게 공부라는 묘목을 심은 탓에 원하는 것과 결과 사이에 차이가 있고 그게 스트레스를 주겠지만 분명, 넌 자라나기의 과정을 겪고 있어.


베란다의 화초들은 오늘 꽃을 피웠지만 우리는 그 과정을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 성장의 속도는 그런 게 아닐까?   



* '소소한 일탈'이라는 거름


"선배, 전 고등학교 때 머리가 침침해지면 말이죠."


"머리가 침침?"


"안 돌아간다는 거죠. 그런 순간이 와요. 뇌가 꿈뻑꿈뻑 둔해졌다 느껴지는. 그럴 때 다시 뇌가 열심히 달리게 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해 봤는데 그게 가장 효과가 좋더라구요. 바로 일탈!"


"가출했니?"


"에이, 그것까진 아니구요. 그냥 평소와 다른 길을 가보는 거예요. 학교 가는 길도 일부러 안 가던 길로 쭉 돌아가보고, 그러면서 뭐가 있는지,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귀 기울여 보고. 담 위로도 걸어보고 길고양이한테 말도 걸어보고. 그러다 보면 뇌가 상쾌해지는 느낌이 든달까? 또 내가 이렇게 다채로운 풍경과 사건 속에 살고 있구나 하는 걸 깨닫기도 하구요."



대학교 때 한 후배가 해준 이 말이 인상적이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후배도 한창 머릿속, 자신의 나무를 키우던 때였겠지?


뇌의 공부 가지를 성장시키는 과정이 단어를 외우고 새로운 공식을 적용해 문제를 풀고 낯선 명사들을 조합해 맥락화시키는 것만으로 이뤄지는 건 아닐지도 몰라. 나무도 키우는 것도 그렇지만, 가끔 거름을 주는 것도 필요하지.


너도 가끔은 이야기 속 후배처럼 산책이라는 거름을 주는 건 어떨까?

나무를 닮은 뇌는 자연과 궁합이 잘 맞는다는구나. 가끔은 시시각각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비를 머금어 검게 빛나는 나무를 보며 너의 머릿속 큰 가지의 성장을 상상해 보는 게 너의 분주한 뇌게 한 줄기 향기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도 있을 것 같구나.



* 더한 이야기: 아빠도 '자라나기'


얼마 전 아빠도 엄마와 정말 오랜만에 동네를 산책했어.


집에서 겨우 백몇 십 미터 떨어진 곳에 우거진 숲이 있더라고. 너 어렸을 때 함께 왔던 곳인데 까맣게 잊고 있었지 뭐야. 아빠와 엄마는 마치 헨젤과 그레텔처럼 그 작은 숲을 더듬어 나가다 생소한 곳을 발견했지.


'가드닝 센터? 엥 1년 전에 문을 열었다고?'


다양한 화초들이 자라고 있는 그 동네 정원에 한참을 머물던 아빤, '나만의 허브정원'이라는 프로그램을 덜컥 신청해 버렸다.



물론 너와 같이 왕성한 성장을 할 수는 없겠지만 아빠도 새로운 분야를 체험해 보고 일상적이지 않던 것을 일상으로 가져오는 게 필요한 시기 같더구나. 중년의 삶도 그래야 할 거 같았어.



화분을 고르고 흙을 채우고, 허브를 골라 배치를 한 뒤에 흙을 꼼꼼히 채워 자리를 잡아주고 돌과 자갈로 장식을 하면 끝. 이 과정이 허브라는 식물과 아빠가 함께하기로 계약을 맺는 의식 같이 느껴졌어.



인사해! 아빠가 데려온 허브야.


낯선 자극이 필요할 때는 손가락으로 잎을 비벼서 냄새를 맡아보렴.

그리고 허브는 관상용이 아니라니까, 가끔 파스타를 해 먹을 때 이 허브잎을 따서 활용해 줘. 그럼 새로운 잎이 더 열심히 성장할 거야.

네 성장이 느껴지지 않을 땐 이 화분을 종종 살펴보도록 해. 마치 네 머릿속에서 자라나는 뉴런의 나무들처럼 쑥쑥 커가는 걸 느낄 수 있을 거니까.


'직접 식물을 길러보면서 시간을 갖고 관찰하는 것이 직관을 기를 수 있는 간단한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인간의 오감 중 어떤 감각도 식물의 성장을 영화처럼 극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니 아쉽기는 하다. 식물은 인간의 감각이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역밖의 시공간에서 성장한다. 우리는 식물을 매일 관찰하고 어제의 상태를 기억해 두었다가 달라진 오늘을 머릿속으로 비교해 보아야 한다. 다정한 관심과 인내가 필요하지만 해볼 만한 가치가 있으니 믿어보길 바란다. 씨앗에서 뿌리가 자라고, 가지와 잎이 돋고, 싹이 트고, 꽃이 피기까지 일련의 식물의 세계는 인간에게 자연의 힘을 맛보게 하니까.'

- 미셀 르 방키앵 <자연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있다면> 중



- fin



* [아빠레터]란?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무려 자발적으로!) 몸의 일부 같던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멀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B급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세상에는 어떤 일이 있나?' 아들에게 전하는 뉴스레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자녀분에게도 유익한 내용이라면 맘껏 공유하고 대화의 화두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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