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dow of the Forgetfulness
"작은 것에도 뜨거울 수 있었던 그시절"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태어난 친구의 생일.
생일선물로 뭘 받고 싶냐는 물음에 친구는
얼마전 발매된 ‘김동률의 라이브 앨범’을 골랐다.
물량이 부족해 생일보다 늦게 배송된다는 선물을 주문하고
언제부턴가 늘어나지 않는 CD진열대로 가
김동률의 1집 앨범 자켓을 꺼냈다.
지금도 좋아하는 가수이지만
한때는 더할 수 없게, 열렬히도 좋아했던
동률, 나의 동률.
김동률을 생각하면
2월의 차가운 아침 공기가 머물러 있던
강남 교보문고로 가는 강남대로변 보도블럭이 떠오른다.
내가 처음이자 유일하게 가 본 연예인의 팬사인회.
무엇 때문에 그때 팬사인회가 열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대학친구들 중에는 그런(?) 곳에
함께 갈 취향의 친구가 없어 낯선
강남대로의 아침길을 혼자서 부지런히도 걷고 뛰었고,
가는 끈의 리본장식이 발등에 귀엽게 달린
3cm짜리 검정색 펌프스가 튀어 나온 보도블럭에 걸려
벗겨져 날아가는데도 달리는 관성 때문에
맨발로 몇 발자국이나 더 내딛을 수 밖에 없었던,
뒤돌아 신발을 주워 신고 다시 뛰면서
사람이 많은 대로변에서 신발이 날아간 부끄러움보다
그 주춤거림으로 또 한 장 줄어들었을지 모를
대기번호표 걱정에 후끈 열이 오른 두 볼과
검정색 코트 속 빨간색 목폴라 안으로 흐르는 식은 땀이
서늘하게 느껴지던 기억만 생생하다.
‘률님’ 앞에 서면 담담하게 좋아한다고 말할까
두 손을 덥석 잡고 열렬하게 사랑한다고 전할까
엄청난 고민을 했지만,
정작 테이블 하나를 두고 마주 섰을 때는
사인에 적을 내 이름 ‘현지’ 두 자를 간신히 알려주고
소심하게 악수 한번 청하고 맥없이 돌아섰던 그날.
영원히 기억할 듯 집으로 돌아와 노트 가득 적어내렸던
그날의 기록은 이제 창고 안 오래된 추억을 담아두는
라면박스들 중 하나에 잠들어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때만큼 뜨겁지 않다.
친구를 통해 그의 새 음반 발매 소식을 알게 될 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다.
그 시절 온 마음으로 들었던 그의 노래는
나의 생각과 감성, 일상 구석구석에 여전히 맴돈다는 것을.
어린 시절 좋아하고 동경했던 누군가는
그저 노래 잘하는 가수, 연기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온 힘을 다해 나를 쏟아붓는 법을 배우며
나로서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덕질’의 최정점을 수놓으려 달렸던
그 아침의 강남대로는 작은 것에도 뜨거울 수 있었던
‘그시절’ 전체인 듯 다가온다.
누구는 연예인에 열광하는 철없는 행동이라할지 몰라도
열렬하고 뜨겁게 빛나 지금의 나라는 열매를 맺은
이제는 다시 느낄 수 없을,
그 여리고 몰캉몰캉한 마음이 그리운
일요일 그림단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