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관한 생각의 단편들
일할 때 가장 괴로운 순간이 언제인지 아는가. 첫째, 지금 이 상황이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도 개선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둘째, 지금 이 상황을 나 홀로 감내한다는 생각이 들 때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통로를 어둠 속에서 오래 홀로 걷는 사람은 외로워진다. 둘 중 하나만 느끼면 그나마 다행인데, 동시에 그것도 오래 느낀다면 점점 희망을 품기 어렵다. 퇴근하면서 문득 심장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자신에게 묻는다. 둘 중 어느 쪽인지 혹은 둘 다인지.
어떤 이에겐 1인분을 다하는 게 어렵다. 물론 숙련되려면 연차도 필요하지만, 1년이 지났다고 모두 1인분을 하는 건 아니므로 그 안엔 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 혹자는 0.6인분을 하고도 1인분을 했다고 만족하고 몇몇은 드물게 1.3인분을 하고도 여전히 더하지 못해서 얼굴을 붉힌다. 그 사이에서 나는 몇 인분을 하고 있는지 되묻고 가끔은 부끄러우며 어떨 땐 별 생각 없이 0.6인분에 홀가분한 이가 부럽다.
매일 밤 11시 30분 웹툰을 보는데 이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이자 내일을 준비하는 예행연습이다. 목요일 웹툰을 수요일 밤에 보면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한 주의 능선을 넘겼다는 안도감이 든다. 한 지인은 지난 토요일에 좋아하는 영화를 예매하고 한 주를 즐겁게 견디고 있었다. 누구든 그게 무엇이든 하루, 한 주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필요하다.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전시를 보러 갔다가 마침 그날 마지막 회차 도슨트를 들었다. 꽤 인터렉티브한 도슨트여서 전시 설명도 유쾌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전시를 마무리하며 했던 큐레이터의 말이다.
"제가 이 전시의 도슨트를 다 맡지도 않고 정기적으로 오지도 않아요. 나라에 역병이 도는데 제 앞에서 여러분이 이렇게 마스크를 쓴 채로 열심히 얘길 들어주셨고, 지금 저쪽에 여전히 막강한 19세기 전시가 진행되고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작가의 전시에 오셨다는 게 우리가 진짜 인연이고 운명임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 옆 관에선 19세기 인상파 전시가 한창이었다 - 사람들은 아무래도 잘 아는 것을 보려고 하죠. 다소 생소한 작가의 전시는 발걸음하기 쉽지 않은데, 우리가 여기에 모이기까지 그 수많은 장애물을 넘고 만났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말을 마치며 인사한 큐레이터의 얼굴이 난연했다. 자기 일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그 에너지가 넘쳐서 타인도 자연스레 느낄 수 있다. 나도 저랬던 때가 있을까 혹은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