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다음과 같은 사람을 만나면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좋다.
첫째, 자신을 주축으로 커뮤니티를 만드는 사람이다. 사람마다 신뢰와 호감의 크기가 각기 다르다. 그러나 커뮤니티를 만드는 사람은 특정한 인물을 골라서 그들과만 시간을 보내고 더 나아가 이를 노출하기 위해 애쓴다. 이들과의 견고한 사이를 외부에 보이는 게 커뮤니티 결속력을 높이는데에 도움 된다고 믿어서다. 그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에 타인의 험담이 추가되면 동조하거나 한마디 보태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자연히 험담의 대상은 커뮤니티 밖의 사람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의 진지를 확장하기 위해 커뮤니티에 들어올 만한 사람을 찾는다. 울타리 속에서 공유된 타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소문이 퍼져나가는 건 아주 쉽다. 자신과 친하기 않기 때문에, 내 말을 따르지 않고 나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커뮤니티에 없기 때문에 등 다양한 이유를 갖지만, 대외적으로는 '저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에'로 귀결한다. 이런 사람은 대개 커뮤니티 안에서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안온함을 느끼며 자신이 하는 말이 모두 옳다는 착각에서 쉬이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를 비판하거나 바로잡는 이야기가 안에서 만들어지기 어려워서 맞지 않는 이야기라도 커뮤니티 안에선 옳은 이야기로 기정사실화 된다. 이들은 조직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배척받을 것을 끊임없이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 밥을 먹는 것보다 혼자 밥먹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두번째는 소문을 좇는 사람이다. 청소년 드라마를 보면 이런 사람이 꼭 한 명 씩 있다. 교실 밖에서 뛰어 들어오며 “야야 대박대박! 야 oo가 oo한대!!” 이런 대사를 읊는다. 이러한 사람이 그대로 크면 조직에서도 여전히 소문 수집가가 되는 걸까. 어떤 얘기를 접하면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점검해 보는 과정 없이 이 소식을 빨리 누군가에게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타인이 이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일을 ‘나만’ 가장 ‘먼저’ 알았다고 생각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때 누군가 “너는 그런 걸 어떻게 알았냐”든지 어떻게 그리 빨리 알았냐고 하면 희열은 배가 된다. 처음엔 그가 전하는 소식이 신기할지 몰라도 양치기처럼 사실이 아닌 소식을 계속 전하거나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말을 하지 않은 것일때, 그저 저 사람은 원래 소문을 좇는 사람임을 인지하면 주위 반응은 심드렁해진다.
두 유형의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타인의 시선과 판단이 곧 나라고 생각하여 외부를 지나치게 의식한다. 타인과의 비교도 잦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타인을 쳐다보며 살 필요가 없기에 대체로 자존감이 낮다. 나의 심지가 자신을 온건히 세우지 못해서 주변에 보호막 같은 지인을 만들고 그 안에서 나는 인기가 많고 사람 좋은 사람임을 자위한다. 소외 당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기에 소문을 뒤늦게 아는 것은 내가 조직이나 사람들에게서 멀어졌다는 것을 동일시해 지속적으로 소문을 수집할 수 있는 모임이나 관계형성에 집착한다.
그저 내 할 일을 잘하고 나에게 집중하며 살면 된다.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