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 가는 기준

by 중앙동 물방개

청첩장을 받는다고 모든 결혼식에 가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결혼식 참석 기준은 명확하다. 내가 그 사람의 결혼식에 가지 않았을 때, 내 부재를 알아채고 그 부재를 서운해할 것이란 생각이 들면 간다.


인간관계는 서로 동일한 크기의 애정을 바탕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연인 사이에도 상대적으로 더 혹은 덜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도는 분명 다르지만, 그걸 측정할 수 있는 기계나 기준이 없기 때문에 상처받기도 하고 어렵다고 느낀다. 따라서 ‘내가 안 가면 저 사람이 서운해할 거야’ 하며 간다고 해도 그 사람은 아닐 수 있다. 반대로, ‘내가 온 지 안 온 지 모르겠지’ 하며 안 갔는데 ‘그 사람 왜 안 왔지’ 하며 내심 서운해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정답은 없고 내 생각에 그럴 것 같으면 그냥 맞다. 의외로 이 기준은 명료해서 깊은 고민 없이 마음속으로 축하하고 주말을 계획대로 보낸다. 결혼 당사자한테 결혼식은 중요한 행사지만, 아닌 사람들에겐 소중한 주말의 일부를 누군가를 위해 내어주는 일이다. 사소하게는 뭘 입을지 고민부터, 결혼식 장소가 멀면 먼 데로 피곤하고, 식장에서 마주치게 될 사람들이 또 어떠한지에 따라서 쏟는 에너지도 상당하기에 초대한 사람이 결혼식에 와준다는 건 정말 귀중하다.


그래도 사전에 약속 잡고 함께 식사하며 청첩장을 건네는 사람의 결혼식은 가려 한다. 청첩장을 만들고 결혼식 전까지 시간이 촉박한 경우가 많은데, 그 짧은 기간 동안 만날 수 있는 사람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에 약속 리스트에 내가 들어가 있으면 그의 인명 기록부의 상위권에 등록돼 있다고(중요한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요즘엔 알고 싶지 않아도 결혼식을 알려주는 시스템이 많다. 카톡 프로필을 결혼식 사진으로 바꾸고 대화명에 결혼식 날짜와 장소를 기재하는 것부터 SNS포스팅, 링크 하나로 결혼 소식과 장소를 한 방에 알려주는 모바일 청첩장까지 다양하다. 그러므로 만나서 청첩장을 주는 것은 이 사람이 나를 어느 정도로 생각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결혼식은 축하해주는 사람이 아무렴 어떻든 상관없다. 식은 어차피 인생의 숱한 날의 하루 행사일 뿐이고 예고편에 불과하다. 결혼식 자체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순간이 더 중요하다. 식을 봐주는 이가 많다고 더 잘 살지도, 하객이 적다고 기쁨의 크기가 줄지도 않는다. 그보다 지인의 슬픈 순간을 함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죽음은 삶을 통째로 흔들어 놓는 사건이며 앞으로 그 사람이 오랜 시간 견뎌야 할 무엇이다. 슬픔이 최고치를 향하는 순간에 그 자릴 찾아가 벌게진 눈을 마주하며 다독이고 남은 자의 서러움을 공유하는 것. 나는 그런 순간에 찾아온 사람들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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