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고향 집에 가는 일 때문에 아내와 다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내가 각자의 집에 가자고 의견을 냈고 남자는 이 얘기를 본인의 엄마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냐는 엄마에게 “아내가 그렇게 말을 해서”라고 전했다. 더 나아가 남자는 한 커뮤니티 게시판을 언급하며 아내에게 그것 좀 그만 보라고 말했다. 자, 이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는 대체 어떤 말을, 아니 어디서부터 그에게 알려줘야 할까. 남자는 ‘아내의 화를 풀어주는 방법’에 관해 물었지만, 그 질문은 애초에 잘못됐다.
나는 2018년부터 명절 당일에 반려인의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여기에서 초점은 ‘명절 당일’에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들 다 갈 때(명절) 내려가려면 감수해야 하는 게 한둘이 아니다. 기차 티켓 구하기도 어렵고 버스는 올라올 때 도로에서 다섯 시간을 버려야 한다. 어쨌든 주요한 문제는 만남이 아니라, 남들이 다 갈 때 가는 것. 따라서 1년에 두어 번 얼굴을 마주한 채 식사하는 게 주목적이라면 굳이 명절이 아닌 다른 날에 찾아뵈어도 괜찮지 않을까.
결혼하자마자 이렇게 ‘명절엔 아니올시다’ 한 건 아니다. 만 3년간, 생전 안 입던 한복을 입고 모르는 집 세 곳을 돌아다니며 세배하며 내 이름조차 모르는 분께 얼굴도장을 찍고 같은 질문에 대답하길 반복,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어색하고 차라리 일이라도 하면 괜찮은데 일할 사람은 차고 넘쳐 일거리라도 생기면 다들 득달같이 달려들어 기회를 놓치면 손이 무안해진다. 때로 어떤 말은 알아듣기 힘들어서 눈치로 문맥적 의미를 파악하고, 50여 명 되는 친척에 둘러싸여 있던 순간은 생각만으로 숨이 턱 막힌다. 그들이 내게 무얼 시킨 것도 특별한 걸 바란 것도 아니지만, 그런 자리 자체를 지키는 건 쉽지 않다. 무엇보다 그 순간을 버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끝'내'지 않는 이상 계속된다는 명절의 반복성에 스트레스는 배가 된다.
지난 3년여간 서울로 돌아오는 KTX에서, 명절을 몇 달 앞둔 시점마다 답답하고 억울한 감정이 들었고 누구도 주지 않았지만 나만은 스트레스를 잔뜩 받았다. 실컷 맞아서 대체 누구냐며 뒤돌아봤건만 아무도 없는 걸 목도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이 고통을 반려인에게 지속해서 얘기해왔다. 결혼하기 전엔 설이나 추석 때 여행계획을 짜며 돌아다녔는데 단지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기로 한 결정으로 인해, 왜 내 자유가 제한되고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가에 대해, 명절 때마다 당신은 느낄 필요 없지만 나에겐 숙제처럼 다가오는 공포와 거북함에 대해 역설했다. 반려인은 그 어려움에 다행히 공감했고 부모님께 얘기하겠노라 말했다. 본인도 굳이 명절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번번이 말할 기회를 놓쳤고 반려인 또한 자신의 부모가 어렵긴 매한가지였다. 어쨌든 3년을 기점으로 더디지만 지난해 의사를 전했고
그래서 변화를 만들 수 있었다. 2018년 설부터 명절 전에 날을 잡아 반려인의 부모님을 뵙고 식사를 한 뒤 다음날 아침밥까지 먹고 온다. (2020년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내려가지 않아서 가장 최근에 본 게 2019년 추석이다.) 이 글을 읽고 반려인이 대단하다든가, 시부모가 쿨해서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일단 둘 다 아니기도 하고, 쿨하지 않은 시부모와 (며느리의 처지를) 공감 못 하는 반려인을 곁에 둔 사람은 한 걸음 내딛기 전에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나의 의사를 끊임없이 밝히고 모두가 어느 정도 납득할만한 결론을 찾은 뒤 정착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래봤자 일 년에 두 번인데 그게 힘들어?"라는 말에는 결혼제도 속 최하층에 자리한 약자, 며느리에 대한 공감이 결여되어 있다. 반려인의 공감 능력과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면, 끊임없는 학습과 이해가 요구된다. 더불어 나의 단호함도 필요하다. 명절 대신 다른 날 내려가겠다거나 가지 않겠다고 말해야 할 대상이 반려인의 부모님이라면, 이 관계에서 최약체는 며느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임을 깨닫고 아들이 몇 년에 걸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만약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혹은 이 제안이 며느리를 해치는 무기로 날아오지 않기 위해 부부의 단호하고 단단한 마음이 필수조건이다. 그러니 좌절하지 말고 오늘부터 시작해보자. 모두가 덜 스트레스 받고 조금은 기다려지는 연휴를 위해.
아, 처음에 그 얘길 했던 사람에게
이봐요, 만약에 사랑하는 이의 신발 안에 뾰족한 돌이 있다고 상상해 봐요. 그 돌이 계속 그녀의 발을 다치게 하고 걸음을 불편하게 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신발 안에 있는 돌을 빼내려고 하겠죠. “지금은 돌멩이가 당신을 좀 아프게 하지만, 그 고통에 발이 익숙해지도록 계속 버텨보라”라고 말하는 게 정상은 아니잖아요.